리얼리티와 예능, 사회와 인간에 대한 불신과 절망
욕망은 결여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비롯된다. 부족함을 알기에 채우려 한다. 비어 있음을 알기에 그 자리를 채워 넣으려 한다. 당연한 충동이며 본능이다. 따라서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신호라 여기더라도 크게 오류는 없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이 예능프로그램에 갈수록 더 엄격한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최근 몇 년 간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과 관련하여 불거진 이슈들을 돌이켜본다면 어쩌면 의외로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원래 '슈퍼스타K'와 같은 오디션프로그램들은 아직 충분한 기회를 만나지 못한 숨은 개성과 재능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스타탄생의 현장을 시청자로 하여금 직접 지켜보게 한다는데 그 목적과 의의가 있었다. 출연자 자신의 실력 역시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불우한 환경에 있던 무명의 지망생이 마침내 기회를 얻어 스타로 거듭나는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출연자의 실력과 관련한 논란은 스타로서의 자격에 대한 시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시즌6까지 만들어지며 '슈퍼스타K'가 저조한 대중의 관심 속에 점차 잊혀져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MBC의 가수경연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방영될 당시에도 과연 저 가수가 저 프로그램에 출연할 자격이 있는가의 여부를 가지고 다시 한창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이른바 '급'논란이었다. 어떤 출연가수는 '급'이 되지만, 어떤 가수들은 그 '급'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 '급'을 나누는 기준이 바로 실력이었다. 얼마나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 그리고 그 실력에 대한 판단은 곧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다시말해 출연가수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방해하는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특정 출연자를 위한 '봐주기'와 '조작'에 대한 의혹이었다. 참 제작진이나 출연가수나, 심지어 시청자 자신까지 피곤해지는 상황이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시즌이 이어지고 있지 못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실력'이란 '사실'이다. 그렇게 믿는다. 누가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객관적으로 계량하여 판단할 수 있는 엄격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공정하게 평가받고 대우받는 것은 또한 '진실'이 된다. 하기는 이미 질문에 모든 답이 들어 있었다. 욕망은 곧 결여다. 리얼리티를 욕망하는 대중의 욕구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가. 당연히 리얼리티 자체일 것이다. 리얼Real-진실이다. 꾸미지 않은, 인위로 가공하지 않은 실제의 모습을 통해 그 진실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 사실 그것이 문제다. 단지 제작진과 출연자들에 의해 보여지는 꾸미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사실만이 아닌 그 너머의 진실마저 리얼리티프로그램을 통해 보려 한다. 어지간한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치고 조작논란 한 번 불거지지 않은 경우가 드문 이유다. 당장 눈에 보이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없기에 끝내 진실을 추적하여 그것을 밝히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 연장에서 한바탕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지나간 사건이 바로 타블로의 진실을 밝히겠다던 '타진요 소동'이었다. 소동치고는 컸었다. 여러 매체를 통해 그동안 타블로가 했던 말이나 보였던 행동들의 조각을 모아 진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사실은 곧 진실이다. 그같은 맹목적인 믿음이 인터넷 전체로 확산되며 그야말로 특정한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이 바로 사회와 개인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었다. 불공정하고 부패한 사회와 부도덕한 개인에 대한 환멸을 타블로라는 개인을 통해 투사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히려 더 강력하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실을 밝혀야만 한다. 자신들은 오로지 사회와 개인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정의를 실천하려는 투사들이다. 역시 위의 논란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 모습들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아예 출연자의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도록 한 뒤 오로지 노래실력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복면가왕'과 같은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출연자들이 모두 장막 뒤에 숨은 채 오로지 노래만 듣고 진짜 가수를 찾아내는 '히든싱어'도 벌써 4시즌째 제작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원조라 할 수 있는 MBC의 '아빠 어디가'가 후발주자인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밀려 사라지고 만 이유였다. 아이들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세상에 찌든 어른들만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시청자 자신들이 느끼는 현실이며,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인 것이다. 결여이고 그것을 대체하려는 충동이며 욕구다. 바로 사실이고 진실이다. 노래경연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것은 실력이야 말로 사실로써 객관화할 수 있는 구체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누가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누구나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다. 그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평가가 바로 올바른 진실이다.
세상에 대한 불신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이다. 세상은 온통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불공정하고 부당한 현실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다. 도피처를 찾는다. 대본이 있는 드라마도 아닌, 그렇다고 실제의 사실 그대로인 다큐멘터리도 아닌, 적당히 여지도 있고 기댈 수도 있는 예능이다. 자신의 정의가 프로그램을 통해 실현되는 것에 환호하고, 그렇지 못한 현실에 다시 분노한다. 자신의 기대를 배신당했다 여겼을 때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미 프로그램 바깥의 세상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위선과 기만들로 가득하다.
올해 MBC 예능대상을 거머쥔 김구라를 보면서도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비호감도 크고 비토도 강하지만 그럼에도 예능PD들이 김구라를 찾는 이유가 있다. 시청자들이 그런 김구라의 프로그램을 즐겨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침이 없다. 위선이 없다. 차라리 위악적이더라도 기만적인 위선은 보이지 않는다. 속시원하다. 과거 여전히 멍에처럼 김구라의 뒤를 따라다니는 인터넷방송 시절도 그래서 네티즌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었다. 대중의 기호다. 전부는 아니지만 적극적인 - 그보다는 과격한 일부의 요구다.
과연 앞으로 대한민국의 예능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 더 이상 리얼리티로 만족할 수 없다면 오히려 반동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뻔히 대본이고 기믹인 것을 알면서도 '우리 결혼했어요'나 '진짜사나이'와 같은 보고 싶은 진실을 보여주는 예능프로그램을 선호한다. 현실에 진실이 없다면 허구의 진실을 쫓는다. 물론 가능성이다. 아직 끝까지 다 가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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