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 - 법과 정의와 진실과 현실, 서재혁 사형수로 죽다!

까칠부 2016. 1. 15. 05:33

하마트면 보다 말고 TV를 끌 뻔했다. 드라마이고 픽션인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억울하고 화가 난다. 정의란 이렇게 무력한가. 진실이란 이렇게 가치없는 것인가. 법마저 정의의 편에 있지 않다. 법은 정의로울 것이라는 믿음마저 철저히 부정당한다. 모르고 속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속거나. 그래서 더 화가 난다. 단지 드라마이고 픽션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너무 쉽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이래서야 세상에 어렵고 힘들 일이 어디 있겠나 생각했었다. 너무나 허술하게 안수범(이시언 분)의 뒤를 밟아 석주일(이원종 분)과 곽한수(김영웅 분)를 제거하려는 모의를 하는 것을 엿듣고 있었다. 무려 수십명이나 되는 조직원이 곽한수 한 사람을 죽이려 모여 있는데 그마저도 너무나 간단하게 흩어버리고 곽한수를 구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곽한수로부터 강압으로 자술서를 받아냈노라 증언하겠다는 동의를 얻어냈다. 하기는 원래 드라마란 것이 그런 것 아니던가.


하지만 아니었다. 당연하다.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술술 풀리거나 할 리 없는 것이다. 더구나 무려 일호그룹이었다. 국내굴지의 대기업과 그와 결탁한 사법부를 상대해야 하는 싸움이었다. 검사 뿐만 아니라 판사까지 저들의 편에 있었다. 너무 쉽다면 오히려 의심해야 하는 것이었다. 판사가 바뀌고 이전 재판에서 인정되었던 증거마저 모두 부정되는 것을 보면서 벌써 의심이 들었었다. 박동호(박성웅 분)마저 서진우(유승호 분)를 돋기 위해 재판정으로 향하다가 석주일에게 중요한 증거를 빼앗기고 있었다. 하기는 벌써 싸움이 끝나기에는 이제 겨우 10회가 지났을 뿐이었다. 바로 직전 일호그룹 회장 남일호(한진희 분)가 담당검사 채진경(오나라 분)의 부탁을 받고 무언가 손을 써두고 있었다.


곽한수가 법정에서 오히려 입장을 바꾸어 서진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순간부터 이미 모든 것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허술했다.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서진우 자신이 가진 힘만으로 일호그룹이라는 거대한 자본과 맞서 싸울 수는 없었다. 사법부와 경찰마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일호그룹을 상대로 이 이상 준비를 갖추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예정된 결과였다. 단지 꿈을 꾸었을 뿐이었다.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 환상을 가졌을 뿐이었다.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배신당한 순간 제작진을 향한 분노마저 느끼고 말았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마는 것인가. 서진우에게는 이제 자신의 말대로라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박동호가 방황한다. 이인아(박민영 분)가 검사복을 벗고 서진우의 변두리로펌에 합류한다. 재판은 끝났지만 무고한 아버지를 살인자로 만들고 사형수로 죽어가게 만든 자들에 대한 심판이 남았다. 물론 재판도 이기지 못했는데 불가능한 싸움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곽한수를 구해내는 장면에서 느꼈던 그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인 것이다. 꺾이고 부서지고 넘어지고 쓰러져도 결국 마지막에는 일이나서 끝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 같은 것이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할지라도 드라마에서나마 선과 정의가 이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로부터 피해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서진우는 어찌되었든 마지막에 승리해야만 한다. 


석주일과 박동호 사이에 균열이 일어난다. 박동호를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분명 석주일이 동원한 조직원들은 박동호로부터 증거인 동영상을 빼앗은 뒤에도 계속해서 린치를 가하고 있었다. 그것을 석주일은 보면서도 굳이 말리거나 하지 않는다. 서진우와 자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석주일의 제안을 박동호가 거부한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 아는 것이 없느냐는 박동호의 물음에 석주일은 아무것도 모른다 대답한다. 슬플 정도로 효율적인 드라마란 굳이 필요도 없는데 보여주는 장면이란 거의 드문 법이다. 일호그룹과 홍무석(엄효섭 분)과의 인연도 상당히 오래되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어떤 비밀이 박동호를 비로소 움직이게 만들 것이다. 아직까지는 석주일과의 인연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아직도 그래서 망설이고 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싹싹 빌고 물러달라 사정하라. 그깟 신념이나 양심따위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당장의 현직검사라는 지위가 주는 명예와 권력과 그에 뒤따르는 현실의 이익이야 말로 실제이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선택을 한 딸 이인아를 어머니는 용서하지 못한다. 악의가 없다. 오히려 오로지 딸의 장래만을 생각하는 지극한 모정의 표현이었다. 어째서 그토록 정의롭고 의욕넘치던 검사지망생이 법의 이름으로 돈과 권력의 죄악을 가리는 일에 직접 몸을 담그게 되었는가. 영리한 것이다. 현명한 것이다.


비로소 젊은 판사 강석규(김진우 분) 역시 자신이 그토록 믿고 있던 법의 추악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항상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 온 젊은 판사가 어쩔 수 없는 회의와 마주치고 만다. 그래도 자신을 찾아와 억지로라도 이해해지주고 응원해주는 아버지 덕에 이인아는 힘을 낼 수 있었다. 결심은 했지만 누군가 든든히 자신의 뒤에서 지켜봐주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어준다. 과연 누가 사람을, 세상을 이토록 타락케 만드는가. 자신은 아니라 믿는다. 현실과 마주친다.


악이 승리한다. 불의가 승리한다. 배덕과 타락이 오히려 더 큰 힘을 가지고 더 높은 곳에서 진실과 정의를 굽어보려 한다. 진실이란 없다. 정의란 어디에도 없다. 암울하다. 답답해서 마냥 고함을 지르고 싶다. 서진우와 함께 목놓아 울고 싶다. 진실은 승리한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차라리 그 지독한 기만에 원망을 돌리고 싶어진다. 현실에 그런 것은 없다. 지독한 절망감이다. 아무라도 붙잡고 풀어버리고 싶은 분노다. 그래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아마도 드라마에서라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지 않겠는가. 부질없는 기대다. 막연한 바람이다.


또 한 번 꺾이고 말았다. 지고 말았다. 좌절하고 말았다. 분노할 수밖에 없다. 울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분노도 우는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긴 프롤로그다. 진짜 싸움을 시작한다. 시작해야 한다. 악을 꺾고 불의에 이긴다. 타락과 배덕을 응징한다. 드라마는 정의롭다. 상상속에서 진실도 정의도 실재하며 가치도 있다. 무겁다. 보기가 두렵다.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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