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 - 승리의 이유, 약자들이 강자에게 이기기 위해서

까칠부 2016. 1. 28. 05:33

상대적으로 약한 다수가 믿고 기대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누구인가? 석주일(이원종 분)은 남일호(한진희 분)의 약속을 믿고 기꺼이 그를 위해 희생하기로 한다. 자식과도 같던 박동호(박성웅 분)와도 갈라선다. 일호그룹 회장 남일호가 가진 부와 권력만이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더 높은 곳까지 끌어줄 수 있다. 오로지 그를 따르는 것만이 자신을 위한 최선이다.


석주일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 왔었다. 부장검사 홍무석(엄효섭 분)이 검사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양심마저 저버려가며 일찍부터 남일호와 일호그룹을 위해 일해온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설사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 검찰에서 쫓겨나게 되더라도 남일호와 일호그룹이 자신을 책임져 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큰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지게 될 것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전혀 두려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었다.


실제 탁영진(송영규 분)에 의해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이 드러나며 내사가 시작되자 홍무석은 먼저 검찰을 박차고 나와 남일호로부터 약속한 대가를 받아내고 있었다. 남일호와 남규만 부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밀착해서 그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부와 권력을 가장 먼저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섰다는 뜻이다. 벌써부터 남일호와 남규만을 직접 만나 박동호를 견제하고 석주일을 희생양으로 세울 계획을 말하고 실제 행동에 옮기고 있었다. 남일호와 남규만이라는 배경을 가진 이상 이제 자신의 앞날에는 영광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홍무석과 남규만의 지시로 서진우(유승호 분)의 아버지 서재혁을 살인자로 만들고 법정에서 위증까지 했던 형사 곽한수(김영웅 분)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철저히 그들로부터 버려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서재혁을 살인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위증을 했던 아주머니 또한 청부업자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었다. 17년 전 서광그룹 가스폭발사고의 관련자 역시 박동호가 찾아온 것을 남일호에게 말한 순간 그가 보낸 사람들에게 쫓기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수십년 동안 남일호를 위해 일하며 일호그룹의 비자금까지 관리했던 일호생명 부사장은 남규만의 장래를 위해 파렴치범으로 몰려야만 했었다.


차이는 무엇인가? 고작 강력계 형사 하나 아무나 골라 대신하도록 시키면 된다. 실제 홍무석은 남규만의 지시를 받아 그를 대신할 사람을 고르고 있었다.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아주머니 하나 죽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17년 전 사건이지만 아예 침묵한다면 더 이상 성가시거나 번거로울 일도 없다. 아들 남규만을 위해 방해가 된다. 쓸모가 없거나, 쓸모가 다했거나, 아니면 오히려 방해가 되거나. 아직 전직 부장검사인 홍무석에게는 남일호와 남규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사람은 단지 도구로만 쓰라. 홍무석이라고 예외일 것 같지는 않다.


비로소 깨닫는다. 남규만에게 자신이란 어떤 존재였는지. 어느 정도의 가치와 의미로 여겨졌는지. 자존심이다. 인간은 존엄하기에 인간이다. 알량하지만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곽한수는 기꺼이 스스로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가는 것을 선택한다. 남규만에게 반드시 한 방 먹여주고야 말겠다. 남규만에게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각인시키고야 말겠다. 자존심이라기보다는 오기다. 그를 위해서 서진우와 손잡으려 한다. 자기 혼자서는, 그리고 서진우 혼자의 힘만으로는 결코 남규만을 상대해서 이길 수 없다.


이인아(박민영 분)가 서진우의 곁을 지키는 이유다. 서진우가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곁에서 돕고 싶다. 서진우의 아버지 서재혁의 억울함을 밝히고 진짜 살인자에게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 혼자가 안된다면 둘이서. 둘로도 안된다면 셋이서 넷이서. 송재익(김형범 분)도 연보미(이정은 분)도 서진우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박동호도 서진우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박동호 자신 또한 그동안 남일호가 저지른 악행들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인아와 박동호의 뒤에서 검사 탁영진과 판사 강석규(김진우 분)가 손을 내밀고 있다. 순수한 인간의 정의와 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명이다.


전과 똑같이 증인을 매수하여 거짓증언을 하게 만드는 박동호의 방식에 대해 서진우는 철저히 정석으로 대응한다. 자신들이 확보한 증인과 박동호가 만나는 사진마저 증거로 내놓지 않는다. 거짓증언을 하는 증인을 상대로 추가심문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고작 사람의 말을 가지고 거짓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진실을 가리는 것은 오로지 사실이다. 사실이 진실을 속이는 것은 그 사실이 바로 사람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나 자신의 사정에 의해 휘둘릴 수 있는 개인의 이름이 아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검찰이라는 공공의 권위에 기대려 한다. 이들이 존재이유와 목적에 맞게 중립적으로 객관적으로 오로지 사실만을 판단할 수 있다면 그로써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박동호의 말대로였다. 서진우가 마지막에 믿고 의지할 곳은 오로지 법 뿐이다. 법에 의지해서 싸워야 한다. 단순히 법전에 씌여진 문구로써만 법이 아니다. 그 법이 쓰여지기까지의 인간의 의지다. 인간이 법을 만드는 이유다. 그 법이 바르게 집행되도록 검찰을 만들고 법원을 만드는 이유다. 남일호와 일호그룹에 매수되어 그들을 위해 일하는 부패한 검사도 있지만 검사로서의 사명에 충실하려는 탁영진과 같은 검사도 있다. 


아직 남일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탓인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또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검사자료를 증거로써 내놓고 있었다. 무엇보다 오로지 사실에만 충실하여 심지어 일호그룹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판사가 있었다. 고작 중소기업인 미소전구와 젊은 변호사 서진우가 일호그룹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비로소 박동호를 이기고 남규만과 직접 싸울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된다. 남규만과도 싸워 이길 수 있다.


정의란 인간을 위하는 것이다. 인간을 돕고 인간을 살리는 것이다.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인간을 지키고 스스로 구할 수 없는 인간을 구한다. 그래서 법을 만든다. 기구를 만든다. 역할을 부여한다. 시작은 모두의 의지였다. 그리고 모두가 그것을 잊는 순간 그것들은 몇몇 개인들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서진우의 아버지 서재혁이 무고하게 살인자로 몰려 감옥에서 죽어가야 했던 이유였다. 살인자인 남규만이 오히려 당당하게 큰소리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였다. 잊고 있는 것을 되돌린다. 하다못해 곽한수와 같은 비열하고 추악한 인간과도 목적이 같으면 손을 잡는다. 약하기에. 그래서 인간은 사회를 만들고 살아간다.


잊고 있었다. 남일호는 한 사람이다. 남규만까지 더해야 두 사람이다. 홍무석까지 더하면 세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고도 세상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만일 그때 위증을 했던 아주머니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진실을 말했더라면. 정신과의사 역시 법정에서 진실을 말했더라면. 그 근본으로 돌아가려 한다. 오로지 법에 의해, 오로지 인간의 정의에 의해, 인간의 죄를 묻고 심판한다. 전쟁의 의미다. 기억이 남아 있는 동안. 안수범(이시언 분)의 선택은 그래서 중요하다. 마지막에 남일호와 남규만을 파멸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서진우의 병이 벌써부터 이인아에게 알려진다. 증세가 갑자기 악화된다. 박동호의 아버지가 17년 전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를 죽게 만든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사고트럭에 박동호도 함께 타고 있었다. 충격이 컸던 것은 그만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박동호에게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인정할 수 없는 사실에 두뇌가 혼란에 빠진다. 4년 전 아버지가 재판받던 그때로 돌아가고 만다. 아직 박동호를 원망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때로 도망치고 만다. 그 모습을 이인아가 본다.


오랜만에 남여경이 비중을 가지고 등장하고 있었다. 아예 잊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남여경이라는 인물 자체가 드라마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름만이 겨우 남아 아주 가끔 얼굴이나 보는 정도였었다. 덕분에 과연 검사로서 남여경이란 어떤 인물인가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어떤 식으로 그려져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여경이 아버지 남일호와 이복오빠 남규만의 죄에 대해 눈치채기 시작했다. 현직 검사로서 아버지와 이복오빠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서진우와의 로맨스는 이미 잊혀졌다. 중요한 주제가 그 안에 담긴다.


석주일이라고 완전히 남일호와 남규만 부자를 믿고 있지는 않다. 박동호에게서 빼앗았던 남규만의 자백동영상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만일의 경우 박동호에게 돌려줄 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남일호와 남규만의 선택이야 너무 뻔하기에 이후의 과정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서진우의 악화된 증상이 비장감을 더한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 통쾌하지 않은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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