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한국 외교의 난맥 - 다 한국사람같지는 않다...

까칠부 2016. 1. 30. 02:08

대화란 기술이다. 경험을 통해 숙련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대가 저런 말을 할 때면 나에게 어떤 의도나 감정을 가지는 것일까. 상대를 내면화한다. 그럼으로써 더 용의주도하게 상대를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분은 그런 경험 자체가 드물다. 자신과 대등한 상대와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어휘도 단순하다. 복잡하고 정교한 어휘나 표현을 사용하지 못한다. 지적의 문제라기보다는 경험의 문제다.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다 알아서 해주고, 굳이 자세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다 알아서 자신의 뜻을 유추해 맞춰준다. 내가 정의다. 내가 법이다.


국내에서는 그것이 통했다. 뭘 해도 지지해주는 사람이 무려 전체 국민의 40%에 이른다. 아무리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도 알아서 이해해주고 지지해준다. 어떤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저질러도 다 깊은 뜻이 있겠거니 지레 판단하고 옹호해준다. 그래서 권력까지 쥐었으면 그렇지 않은 나머지야 상관없는 것이다.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나라 밖으로 나가면 전혀 사정이 달라진다. 국제사회에서 한국보다 외교적 지위가 높은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하필 그런 나라들이 우리의 주위에서 우리의 사정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 일본이 한국 정부가 뭐라 한다고 일방적으로 따라오겠는가, 미국이 굳이 한국 정부의 의도까지 넘겨짚어 이해해가며 그에 맞춰주겠는가. 중국정부가 대화 몇 번 나눴다고 갑자기 한국정부와 친구가 될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모른다. 그런 경험 자체가 없기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무시한다. 일단 먼저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지르고 본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과 관계정상화는 없다. 그러니까 그런다고 일본이 눈이나 깜짝하겠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미국을 열렬히 짝사랑한다고 미국까지 그럴 이유는 없는 것이다. 중국과 가까이 지내도 미국이 알아서 이해해주겠거니. 미국이 시키는대로 위안부협상을 대충 끝냈어도 중국이 알아서 이해해주겠거니. 그동안 만나기도 많이 만났는데 북한핵문제에 대해 한국정부의 입장을 지지해주겠거니. 사드를 하든 5자회담을 하든 한국정부가 먼저 주장하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아주 난맥도 이런 난맥이 없다. 차라리 자기가 모르고 못하면 더 잘알고 잘하는 주위에 맡기고 물러나 있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리더의 자격이기도 하다. 자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더 뛰어난 이들을 잘 활용할 줄 아는 것이 리더의 능력이다. 그런데 아무런 상의도 없이 아무데서나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내뱉어 버린다. 상대에 대한 고려나 배려 없이 자기가 말만 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이라 여긴다. 더 웃기는 건 그런데도 외교 잘한다고 지지해주는 얼간이들이다.


얼간이는 얼간이다. 멍청이는 멍청이다. 바보는 바보다. 국민이 벼슬이 아니다. 대중이란 권력이 아니다. 시민이란 역시 같이 책임져야 할 주체인 것이다. 정치인이 욕먹는데 왜 지지자는 욕먹어서는 안되는가. 정치인이 조롱당하는데 어째서 유권자는 아닌 것인가.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 그런 주제에 오히려 더 오만하게 만드는 그 지지자들이다. 세상에 가장 큰 비극은 멍청어기 자기 멍청한 것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결과 한국을 둘러싼 국제외교환경은 날로 악화되어가고만 있다. 아예 북한문제에 일본이 주도적으로 나서겠다 설치고 있다. 중국도 대놓고 한국정부를 무시한다. 미국정부아 위안부 협상에서 그 입장을 분명히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바로 위에서 핵실험을 했는데. 당사자인데. 슬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