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핵무장론...
천승지후만승지존이라는 말이 있다. 춘추시대 이전 주나라에서 천자는 만 대의 수레를, 제후는 천 대의 수레를 각각 거느릴 수 있도록 규정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수레란 곧 전차, 아직 기병이 등장하기 전 전장을 지배하던 전략병기다. 전차도 전차려니와 한 대의 전차가 움직이면 그를 따라 움직이던 보병들도 있었기에 얼마나 많은 전차를 보유했는가는 즉 군사력을 가는하는 척도로 쓰일 수 있었다. 백 대의 수레를 보유할 수 있는 대부는 결코 천 대의 수레를 보유할 수 있는 제후를 이길 수 없다.
20세기 중반까지 해군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함대 - 그 가운데서도 특히 다른 함선들을 압도하는 가장 강력한 전함의 보유여부는 바다에서 그 나라의 지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실제 1차세계대전 당시도 유트란트에서의 애매한 무승부 이후 독일함대는 영국합대를 두려워하여 아예 바다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에도 독일군 전함 비스마르크가 항구를 나와 항해를 시작하자 거의 영국해군 전부가 동원되다시피 비스마르크의 격침에 나서고 있었다. 심지어 비스마르크의 자매함인 티르피츠는 폭력을 맞아 도크에서 수리중이었음에도 집요할 정도로 격침을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바다에서 전함 한 척이 가지는 가치를 영국해군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미영일프이 5강국이 모여 전함의 보유수량과 총톤수를 제한하는 협정까지 맺고 있었다.
핵무기란 바로 그같은 현대의 전차이며 전함이라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최악최강의 무기이며 결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었다.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가능성만으로도 해당국가만이 아닌 세계와 인류 전체가 두려워해야만 한다. 설사 여러가지 이유로 실전에서 실제 쓰이기에 제약이 있다 하더라도 단지 그것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선택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고 만다. 반대로 만일 누군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한 상대에 대해 그만큼 우위에서 자신의 입장과 요구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은 나라가 몇 없는 것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나라와 제 3세계에서 인도, 파키스탄 정도만이 여러가지 이유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고 있을 뿐이었다. 그밖에도 핵무기 보유가 의심되거나 실제 한 때 보유했거나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지만 그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한 시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면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지위와 지분 또한 인정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핵무기란 그런 의미다. 아무리 북한이 몇 차례나 핵실험에 성공하더라도 결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이유다.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해다. 아무리 그래도 북한은 결코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핵무기를 만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원료가 없어서도 아니다. 당연히 돈이 없지도 않다. 북한도 만든다. 그런데도 왜 다른 나라들은 핵무기를 만들거나 보유하지 않는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보유한다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쓰고 나면 그때부터는 돌이킬 수 없다. 실제 쓸 수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강대국으로부터 인정도 받지 못한다. 자칫 제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결코 자신들에 대한 도전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괜히 강대국의 심기만 건드릴 수 있다.
과연 한국이 이제와서 핵무기를 개발해서 배치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이 허락해줄까? 러시아와 중국이 용납해줄까? 프랑스와 영국은 어떨까? 일본은 좋아할지 모르겠다. 핑계김에 일본도 핵무기를 만든다. 자치 미국과 강대국이 앞장서서 포기를 강요한다면 아무 실익도 없이 그냥 돈과 시간과 수고만 낭비한 셈이다. 고집이라도 피우면 그때부터는 제제다. 딱 북한꼴 난다는 소리다. 핵무기 개발한다고 북한을 제제하면서 자신들은 괜찮다고 핵무기 만들자 주장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다. 그것도 국회에서 교섭단체대표로 연설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다. 하기는 그 당 국회의원이나 지지자 사이에서도 비슷한 소리들이 넘쳐난다. 그런 수준으로 다음 총선에서도 다시 다수당이 될 것이라 말한다. 한심한 수준이다. 대북정책마저 결국은 전문적이지 못한 대중의 감정에 맞춰 집행한다.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고민이나 노력 없이 그저 되는대로 던지고 본다. 그리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상식마저 결여되었다. 한심한 것이다. 절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