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테러방지법 - 한국인에게 민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 이유...

까칠부 2016. 2. 24. 01:57

19세기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나고 모든 노예가 해방되었을 떠 어떤 노예들은 자신들의 주인을 찾아가 제발 쫓아내지 말아달라 사정했다고 한다.


노예로 있는 동안에는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한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저 일을 재촉하는 채찍질만 피하고 견디면 어떻게든 사는 것은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노예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으로 살아가려면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만 한다. 당장 직장을 구해야 하고, 혹시라도 잘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하고, 그래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굶어야만 한다. 그것이 너무 두렵다.


테러방지법의 요체는 간단하다. 국민 너희놈들의 안전을 책임질 테니 너희들의 자유를 내놓으라. 너희들의 존엄을 내놓으라. 테러의 위험이 있다 여겨지면 임의로 개인에 대한 정보를 무제한으로 열람하고 심지어 그 내용에 대해서마저 강제할 수 있다. 아니 아예 국정원장의 판단에 의해 시위진압에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다. 정부에 대해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모두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통제하고 감시하며 강제한다. 무력까지 동원한다. 그런데도 지지한다. 왜? 자신이 안전해질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돼지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이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것이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구애되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의 양심과 이성에 비추어 독립적으로 판단한다. 그에 대해 누구도 개입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안전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누군가에 양도할 수 있다. 그런 인간이 대한민국에 과반이 넘어간다. 알면서 지지하면 진짜 개돼지인 거고, 몰라서 지지하는 거라면 역시 스스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니 개돼지와 같다. 그래서 기분나쁘다고? 기분나쁘라고 하는 말이다. 너희들이 하는 짓거리가 딱 그런 의미다.


사실 상관없다. 혼자서만 당하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어차피 다 똑같이 당하는 거라면 나 역시 참아 줄 수 있다. 성격이 나쁘다. 남 못되는 것 보면 어지간히 나 못되는 것도 견딜 수 있다. 그저 그런 인간들과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숨쉬고 살아간다는 것이 혐오스러울 뿐. 존엄을 잃은 개돼지들이다. 그저 먹고 살게 하고 지켜주겠다 하면 돼지우리라도 상관엇다. 개줄로 묶어도 그저 감사하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한다. 민주주의란 시민 개인이 주권자가 되어 정치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다시 한 번 80년대 그 개고생해가며 목숨까지 걸여야 했던 선배들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을 전한다. 헛수고였다.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이미 국민들 스스로가 느끼고 있다. 민주화란 곳 열화와 악화의 동의어다. 운동권은 사라져야 한다. 운동권은 청산되어야 한다. 운동권은 종북이다. 자신들을 우리에서 꺼내준 것에 대한 반발이다. 개돼지는 그저 개줄에 묶여 돼지우리에 살면 그만이다.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맞지 않는다. 어르신들의 말에서 지혜를 얻는다. 한국놈들은 그저 패야 말을 듣는다. 독재를 해야 한다.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이제는 괜한 짓을 한다는 생각만 든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누군가가 대신 다 해주는 개돼지의 삶이다. 국민 스스로가 개돼지가 되려 한다. 그런데 인간이 되기를 강요한다.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다. 국민은 개돼지가 되어야 한다.


어차피 기분 나쁘라 하는 말이니 뭐라 반발하든 상관없는다. 늬들의 선택이다. 늬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늬들의 책임이다. 그래서 그것까지 비난한다. 엄한 나라에서 국회의원 하느라 고생들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되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게 된다면 무엇이 남게 될까. 북한만 적대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인간의 이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 토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