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과 법치의 뜻...
항상 법을 의식하고 법을 두려워하며 법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굳이 일상에서 법을 의식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없이 필요한 때 필요한 법만 지키면 된다.
전자가 테러방지법을 지지하는 이들이 말하는 법치다.
그러므로 법만 어기지 않고 잘 지키면 문제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1년 365일 24시간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것만 생각하며 살아갈까?
굳이 법같은 것 몰라도 살아가는제 전혀 지장이 없도록 최대한 시민의 자유를 보장한다.
대신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시민의 자유를 법으로 강제한다.
그래서 법치란 권력에 대해 가해지는 강제다. 오로지 법에 의해서만 시민을 강제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제국주의가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하면 사는데 문제가 없었다.
노비로 살면서도 그저 주인이 시키는대로 거스르지 않고 따르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 삶을 말하는가. 개명한 21세기다.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한국 국민에게 민주주의는 과분하다. 한국국민은 노예다. 가축이다.
시민 개인의 불법에는 엄격하면서 권력의 불법에는 관대하다.
시민 개인의 사소한 범법에는 가혹하면서 권력의 전횡과 부패에는 관대하다.
바로 노예이기 때문이다.
참 선배들이 몹쓸 짓을 했다. 민주주의같은 건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애정이 있었을 때는 화도 내고 설득도 해봤다. 모든 믿음과 기대가 사라지니 짜증만 늘어간다.
내가 유시민, 진중권, 박노자를 부러워하는 이유다.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이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저런 삶은 절대 살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기도 벅차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더욱 깨닫게 된다. 정치인을 탓하기에 국민이 너무 부족하다.
김광진, 문병호, 은수미, 박원석, 유승희, 최민희...
그리고 뒤이어 기다리는 수많은 국회의원들.
자신들을 돌아보지도 않는 가치없는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서.
법치가 무엇인지부터 배우고 왔으면.
되도 않는 것들이 떠드는 소리가 역겹다. 새벽부터 피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