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 권력의 참혹함 앞에서, 방석이 정도전 죽여야겠다!
권력이란 참혹한 것이다. 추악하고 불길하다. 그래서 역사상 많은 지혜롭고 현명한 이들이 하나같이 권력을 경계하고 멀리할 것을 주장해 왔던 것이었다.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그리고 이미 가진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또 양보한다. 자신의 정의도, 양심도, 도덕도, 윤리도,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정마저도. 혈육마저 안중에 없다. 그렇게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권력을 가져야 하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
자신의 바닥을 본다. 거짓과 기만으로 감춰온 자신의 원래 모습을 확인한다.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자신의 본질이며 진실이었다. 오로지 권력을 위해 정도전(김명민 분) 한 사람을 궁지에 몰고자 자칫 나라에 해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명을 이용해서 계략을 꾸몄었다. 한 나라의 왕자로서 자신이 그랬는데 오히려 정도전은 그마저도 나라를 위한 더 큰 꿈으로 이상으로 바꾸려 한다. 한 사람은 고작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대국인 명나라를 등에 업으려 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그 성패여부를 떠나 장차 명나라의 위기를 이용하여 요동을 정벌하고 경영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패배감마저 든다. 자신은 이것밖에 안되는 인간이었는가.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런 인간이더라도 권력은 자신이 가져야 한다. 오로지 자신이 권력을 가져야만 한다. 망설임같은 것이 아니다. 조영규(민성욱 분)의 표현 그대로 단지 확인에 지나지 않았다. 남은 선택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안다. 아니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대로 정도전이 의도한대로 손놓고 지켜만 본다면 이제 더이상 자신에게 기회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버지 이성계(천호진 분)의 전적인 신뢰와 지지 아래 조정의 전권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던 터였다. 이제 사병마저 혁파하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그나마 무력조차 관군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지휘 아래 들어가고 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혀 다른 아무런 수단도 자신에게는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것을 그대로 참고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방법은 하나다. 명분도 없다. 힘도 부족하다. 시간도, 쓸 수 있는 수단도 모두 제한되어 있었다. 차근히 계획을 꾸며 일을 진행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부족하고 불리하기만 한 상황이다. 방심조차 않고 있었다. 역사에서와는 달리 이방원(유아인 분) 자신에 대한 경계와 감시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기회란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폭두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미 여러차례 직접 보았고 경험도 했었다. 행동으로 옮긴 적도 있었다. 사람이란 어쩌면 너무나 나약한 존재다. 어떤 대단한 명분도, 거창한 수단이나 노력도 전혀 필요치 않다. 그저 짧은 한 순간에도 사람은 너무나 쉽게 목숨을 잃고 만다. 사람이 죽고 나면 살아서 가졌던 모든 것들 또한 함께 사라진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한 번 죽고 나면 더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자신들이 열세인 것이 정도전과 세자 이방석이 가진 명분과 힘 때문이라면 그들을 죽여 그것을 흩어 놓으면 되는 것이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그래야 하는가. 그래도 좋은 것인가. 아직 확신이 없다. 자신은 과연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직접 찾아가 확인한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가장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 그들을 대한다. 그럼에도 자신은 진정 그들을 죽이고자 하는가. 그들을 죽여서라도 권력을 가지고자 하는가. 아니 필요없는 물음이었다. 그래서 확인이었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자신의 안에서 이미 모든 결론은 내려져 있었다. 단지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의식이고 절차였다. 이렇게까지 자신은 권력을 가지고자 한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 조영규의 죽음 앞에서 이방원을 솔직해진다. 이제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길을 확인한다. 이제 자신은 진정 어떻게해서든 권력을 가지고야 말겠다.
무심코 이방원이 반촌에 숨겨놓은 무기창고로 들어선 공양왕의 어린 아들을 향하는 조영규의 칼과도 닮았을 것이다. 고작 왕이 되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아닌 이방원이 왕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숨겨놓은 무기들이었다. 그 무기들의 존재가 알려질까 두려워 조영규는 아직 어린 아이를 향해 칼을 치켜든다. 그리고 어린아이 앞에서 칼을 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연히 그 모습을 본 척사광(한예리 분)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유가 된다. 멈추려 해도 더이상 멈출 수 없다. 멈추더라도 이미 자신이 하고자 했던 행위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관성처럼 척사광과의 충돌 과정에서 공양왕의 어린 아들이 조영규의 칼에 살해당한다. 조영규 또한 척사광의 칼에 숨이 끊어진다. 잔혹한 운명의 소용돌이다. 죽고, 죽이고, 죽임을 당한다. 조영규는 잠시 그 사실을 잊었고, 무휼(윤균상 분)은 애써 그 사실을 무시했다. 이미 모든 것은 그들의 의지를 떠나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기에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모든 것은 이성계 자신의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전제왕조였다. 모든 권력은 오로지 왕으로부터만 나왔다. 이성계 자신의 신뢰와 지지가 있었기에 정도전 역시 왕자와 종친들을 상대로 과감하게 사병혁파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잠시 그것을 잊었다. 아무리 조정이 전권을 쥐고 있어도 단지 임금의 신하에 불과하다는 것까지만 생각했지 그 권력이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가는 지나치고 말았다. 명분을 잃는다. 동시에 힘도 잃는다. 정도전은 몰라도 아버지이자 왕인 이성계마저 거스를 수는 없다. 그 순간에마저 이방원은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내할 수 있을 것인가.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을 향한 시험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조차 자신은 거역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도전과 이방석을 치려 한다면 아버지마저 정면으로 거역해야만 한다. 각오의 과정은 참으로 길고 어렵기만 하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한 나라의 왕이라는 자리는.
조준(이명행 분)과 정도전의 갈등과 대립이 잠시 스쳐지나가는 정도로 다루어진 것에는 아쉬움이 있다. 하륜(조희봉 분)의 이간책에 잠시 균열을 보이는 듯했지만 바로 정도전이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조준과의 갈등은 일단 봉합된다. 무리한 요동정벌의 계획과 추진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고립되어가는 정도전이었는데 아무튼 당장은 문제없이 조정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는 듯 보인다. 더 큰 반전을 위한 띄우기다. 하필 이방지(변요한 분)와 연희(정유미 분)의 사이 또한 전에없이 다정하다. 정도전은 심지어 두 사람을 혼인시키겠다 말하고 있었다. 요동정벌이 원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병혁파였다. 그런 와중에 역사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 것이 작가의 탁월함이다. 상실에 대한 분노보다 더 크고 격렬한 것은 아마 없다.
선택은 이미 했다. 결정도 했다. 이제 행동해야 할 시간이다. 척사광이 조영규를 죽였다. 정도전의 곁에는 이방지와 연희가 있다. 분이(신세경 분)는 이방지의 여동생이다. 마치 예언처럼 조영규는 자신의 죽음으로 이방원의 갈등과 방황을 끝낸다. 그 죽음과 결정을 무휼은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 어차피 가야만 하는 길이다. 망설이더라도 결국 가게 될 길이다. 비극은 차라리 무심하게 다가온다. 예정된 길을 가는 것 뿐이다. 잔혹한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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