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스널 - 하나의 끝, 15년의 기다림, 끝나지 않다

까칠부 2016. 3. 13. 05:52

도고일척마고일장(道高一尺魔高一丈)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명나라 때 소설 '초각박안경기'에 나오는 말이다. 선하기란 너무 어렵다. 정의롭기도 너무 힘들다. 그에 비하면 악하기도 죄짓기도 너무 쉽고 간단하기만 하다. 그냥 욕망이 시키는대로 따르면 된다. 본능이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더 쉽고 더 편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간은 악에 이르게 된다. 지옥은 항상 가깝고 천국은 그래서 너무 멀기만 하다.


인간의 역사는 어쩌면 악과 죄의 역사다. 악을 깨닫고 죄를 인식하며 그것들과 더불어 싸우며 지나온 시간들이다. 악이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죄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 악이 선이 되고, 죄가 정의가 된다. 악과 죄가 세상을 지배하며 도리어 선과 정의를 비웃고 조롱한다. 심판하고 단죄한다. 지금 사람들이 악이라, 죄라 여기고 있는 많은 행위들이 사실은 불과 얼마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선으로, 정의로 여겨지던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사실은 악이고 죄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희생되어야 했던가.


그런 절박함이다. 그런 간절함이다. 그래도 미래에는 조금은 바뀌겠거니. 10년 뒤, 아니 100년 뒤,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겠거니. 그래서 실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내일의 선과 내일의 정의를 위해 오늘의 악과 죄를 기꺼이 감수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진보다. 어떤 가치나 사상이 아니다. 낙관이고 긍정이다. 인간을 믿고 인간의 역사를 믿는다. 마침내 인간 스스로 만들어갈 내일을 믿는다. 영원한 시간에 자신들의 희망과 기대를, 어쩌면 절망과 체념을 맡기는 것이다. 언젠가 아무때라도 아무라도 진실을 알고 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들의 바람도 역시 이루어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미래는 낙천이다.


아마 이재한(조진웅 분)이 심지어 사랑하는 사이가 된 차수현(김혜수 분)마저 속이고 무려 15년간이나 요양병원에서 정체를 감추고 숨어있었던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타임캡슐이다. 무전이 아닌 현실의 박해영(이제훈 분)과 만나 그와 행동을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15년 전 박해영에게 보냈던 편지에서도 그렇게 밝히고 있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동시대의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단 두 사람, 무전기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차수현과 박해영 뿐이었다. 그만큼 인주여고생성폭행사건이 일어난 것이 벌써 16년 전이었으니 그동안 줄곧 국회의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장영철(손현주 분)은 일개 말단형사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가능성을 높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 순간 이재한의 무전기에 어디선가 무전이 오기 시작한다.


역사가 바뀌었다. 시간이 바뀌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형사기동대 형사들과 함께였었다. 죽지 않았다. 최소한 안치수(정해균 분)에게 살해당했던 그 장소에서만큼은 살아날 수 있었다. 역사가 바뀌며 현재가 바뀐다. 시간이 바뀌면서 전혀 다른 시간이 지금에 이른다. 마치 다른 시간으로 내던져진 것 같다. 기억에 있던 시간들이 전혀 낯선 새로운 시간들로 바뀐다. 기억에 있던 사람과 장소들이 전혀 다른 무엇이 되어 자신을 맞는다. 지금 사라진 옛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은 단 셋, 무전의 비밀을 공유했던 그 셋이다. 새로운 과제가 시작된다. 15년 전 끝내지 못한 국회의원 장영철에 대한 단죄가 시작되려 한다. 끝이 아니다. 단지 새로운 시작이다.


과거로부터 무전이 걸려온다. 미래로부터 더 먼 과거로 무전이 걸려온다. 15년 전 과거에서 시작된 무전은 15년 뒤 다시 26년 전 과거로 이어진다. 시간이 윤회한다. 인간이 윤회한다. 인간의 악과 죄가, 그리고 그것을 이기고자 하는 선과 정의가 인간의 의지와 함께 윤회한다. 아무것도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 김범주(장현성 분)의 비참한 최후조차 그보다 더 큰 더 지독한 악의로 덧칠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 죽지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사람이 있고 의지가 있는 한 다시 진실을 쫓게 된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인간의 의지는 무한하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던 이들이 하나로 모인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죄를 벌해야 한다.


시즌2를 기대한다. 기대라기보다는 확신이다. 이재한이 살아있다. 장영철이 이재한을 쫓고 있다. 차수현과 박해영이 이재한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보다 더 먼 미래에 이재한으로부터 무전을 받는 누군가가 있을까. 차수현에게도 박해영에게도 여전히 무전기는 없다. 하기는 무전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신뢰였다. 공감이었다. 정의를 믿고 진실을 쫓는다. 그 마음이 시간을 넘어 그들을 이어준다. 그들이 함께 만난다. 너무 이른 기대다. 마음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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