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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이 정도전을 살해한 이유...

까칠부 2016. 3. 28. 02:41

어떤 사람들은 정도전이 주장한 '재상총재제'가 이방원이 추구하던 왕권중심주의와 충돌하여 그리 되었다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상총재제란 정도나 형태만 다를 뿐 원래 유학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해오던 왕도정치의 중심사상이었다. 덕을 갖춘 임금이 있어 명망과 실력을 갖춘 인재들을 등용하여 조정의 요직에 앉히면 이들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고조 유방을 중국역사에서 손꼽히는 황제로 떠받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는 같은 이유로 자신이 이룬 군공마저 모두 제갈량에게 양보해야만 했었다. 군주에게 실력의 뛰어남은 그다지 필요없었다. 그보다 명망과 실력을 갖춘 인재들을 아우를 수 있는 그릇만 있으면 되었다. 그것이 덕이었다. 유방은 자신의 실력은 보잘것 없었지만 장량과 한신, 소하, 진평 등 뛰어난 신하들을 고루 잘 활용함으로써 압도적이던 항우를 마침내 꺾을 수 있었다. 실력에서는 조조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유비였지만 오로지 덕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마침내 촉한에서 한실의 중흥을 이룰 수 있었다. 어쩌면 정도전이 주장했던 '재상총재제'의 가장 확실한 모델이 유비의 아들 유선과 제갈량, 장완, 비의로 이어지는 재상들과의 관계였을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것은 왕인 자신이 결정할 텐데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였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정도전이 죽기 전 아들 정담과 나눈 대화가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다. 내가 이미 고려를 배신했는데 이제 다시 저들에게 붙는다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미 이전에 정안군 이방원으로부터 회유를 받은 정황을 보여준다. 조준 역시 이방원에게 회유되어 그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방원이 정도전의 실정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을 규합하여 난을 일으켜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정도전이었던 것이었다. 회유만 되었다면 어떻게든 그와 손을 잡았을 테지만 회유가 안되었기에 죽여야만 했다. 정도전을 죽여야만 세자도 죽일 수 있고 아버지 이성계마저 굴복시킬 수 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처럼 정도전이 무슨 대단한 이상을 품고서 이방원과 대립한 것이 아니라 그냥 왕이 시키니까 막내인 이방석을 세자로 세우고 그를 지키기 위해 왕자들을 견제하며 무리수를 두었을 뿐이었다. 여기에 여러 실정들까지 더해지며 조야의 원망이 정도전에게 쏠리기도 했었다.


말하자면 정치적인 선택이었다. 이를테면 중국 명나라에서도 정통과 천순 두 개의 다른 연호를 가지는 영종의 경우 탈문의 변으로 황제의 자리에 다시 오르며 충신이던 우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경우가 있었다. 어차피 경태제의 아들이 황제도 되기 전에 일찍 죽어버린 이상 오늘내일하던 경태제가 죽으면 황제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정통제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느 그 사이를 못 견디고 공신이 되어 권세를 누리기 위해 일단의 무리들이 난을 일으켜 경태제를 폐하고 정통제를 다시 천순제로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탈문의 변이다. 그런데 아무리 정변에 성공해서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는데 성공했어도 이미 황제가 있는데 다시 난을 일으켜 새로운 황제를 세우는 것은 어떻게 해도 반역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명분이 필요했다.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대의를 위해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탈문의 변을 주도한 세력들과 사적으로 앙금도 있었던 만고의 충신 우겸이 그렇게 선택되었다. 우겸이 불의한 황제를 세우고 탐학하여 많은 죄를 저질렀기에 정통을 바로세우기 위해 자신들이 난을 일으켰다. 터무니없는 모함이었다.


영락제가 즉위한 정강의 변에서도 황제인 건문제가 아닌 그를 잘못 보필하고 있는 황자징 제태 등의 신하들만을 겨냥하고 있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면서도 명분으로 삼은 것은 어디까지나 단종을 잘못 보필하고 있는 김종서 등의 권신들을 처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방원 역시 왕자의 난을 일으키면서 정도전이 왕자들을 살해하려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고 있었다. 정도전이 복권되는 순간 이방원이 일으킨 정변의 정당성은 사라져 버린다. 정도전은 끝까지 역적으로 남아있어야 이방원이 일으킨 정변의 정당성도 남아있게 된다. 정도전이 죽고 이방원이 왕위에 올라 아들인 정진을 사면하고 벼슬까지 주었음에도 끝내 정도전만은 신원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무덤조차 없었다. 그만큼 조선건국과 이방원 자신의 정변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도전은 모든 죄를 끌어안은 채 철저히 역사속에 묻혀야만 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방원은 정도전이 구상한 많은 정책들을 그대로 이어받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인가. 유학자였으니까. 성리학의 이념에 의해 세워진 나라였으니까. 조선의 건국이념은 정도전 개인의 것만은 아니었다. 사대부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던 이른바 시대정신이었다. 그렇다고 조선의 모든 제도와 정책들을 정도전이 다 만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있는 것들 가운데 문제없는 것들은 그대로 물려받고 문제가 있으면 그대로 폐기한다. 그 가운데 남은 것들이 조선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이하다. 하기는 그래서 더욱 드라마는 그렇게 꾸며졌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왕이 되고자 가장 위협이 되는 상대를 살해했고, 정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모든 책임을 특정인에게 몰아 지웠다. 의외로 남은은 나중에 종묘에 태조의 공신으로 함께 배향되고 있었다. 정도전 하나만 잡으면 나머지는 얼마든지 살려두고 용서할 수 있다. 무섭도록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