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양의 후예 - 충격의 3분, 피투성이 유시진과 만나다

까칠부 2016. 4. 7. 05:59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중요한 경호업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남북회담이라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에 경호지원을 나와 있는 중이었다. 사전에 통보된 인물이라 할지라도 일단 경호구역 안으로 들어서면 무조건 멈춰세우고 신분확인부터 하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이다. 하물며 확인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인물이 접근하고 있는데도 실전경험도 풍부한 두 사람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일방적으로 총격을 당하고 쓰러진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정체불명이 아니었다.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북한에서 보낸 특사와 중요한 회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북한군 장교(지현승 분)를 만나게 되었다. 북한에서 특사를 보내 회담을 하는데 그 자리에 북한군 장교가 함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지난번 북한에서 열린 1차회담에서 상대편 경호원으로 다시 만났을 때는 자신이 남한에 올 일은 없을 것이라 말한 바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절대 만나서는 안되는, 그러나 한 편으로 너무나 당연한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다. 최악의 가능성까지 항상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하지만 때로 너무 많은 정보가 생각을 부풀려 판단까지 느려지게 만들기도 한다. 미처 결론을 내리고 행동을 정하기도 전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상대의 권총이 먼저 불을 뿜는다. 정확성만 전제된다면 총은 항상 먼저 쏜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그 잠깐의 시간이 하염없이 그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물론 복선은 있었다. 강모연(송혜교 분)과 아직 만나기 전 휴전선의 어느 초소에서 우연히 한 차례 칼솜씨를 겨루기도 했던 북한군 특수군 장교와 상대편 경호원으로 다시 만나 나란히 섰을 때 북한군 장교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같은 전사들은 이렇게 한 방향을 보고 섰을 때가 휴전이고 평화 아니오?"


그리고 한국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나란히 한 방향을 보고 서 있는 것이 휴전이고 평화라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더구나 냉면집에서 자기는 남한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며 휴가라 말하는 장면도 어쩐지 섬뜩했다. 유시진(송중기 분)이 우르크로 파병되었을 때도 휴가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하기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특수부대원 유시진을 위험에 빠뜨릴 현실적인 위협이란 북한 말고는 달리 없다. 오히려 특사회담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어색했다. 그들은 다시 대한민국 서울에서 다시 만나고야 말았다.


결국 13회 전체가 마지막 3분을 위한 복선이었을 것이다. 더 큰 고통과 절망을 느끼도록. 더 큰 충격과 공황에 빠져들도록. 한껏 평화로운 일상의 여유와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순간들을 누리게끔 해준다. 지루할 정도로 이어지는 질투가 나도록 다정하고 행복한 모습들에 시청자 역시 어느새 긴장을 내려놓게 된다. 시청자도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을 향해 외친다.


"여기 너희 둘만 있냐?"


마치 음모처럼 시청자가 마음놓고 있는 사이 하나하나 치밀하게 파국을 준비해간다. 등장인물들이 누리는 일상과 행복에 동화되어 느슨해진 시청자의 틈을 비짖고 모두가 놀랄 한순간을 완성해간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특사회담의 경호를 위해 나란히 서있는 유시진과 서대영(진구 분) 두 사람을 향해 사복을 입은 북한군 특수부대 장교가 천천히 다가올 때 그가 무심히 내뱉었던 말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처럼 처참하게 피투성이가 되어 누운 모습이라니. 항상 여유롭고 당당하던 강한 남자 유시진은 그곳에 없었다. 입을 가리고 유시진을 바라보는 강모연의 놀란 눈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강모연의 전장으로 유시진이 발을 내딛고 있었다. 우르크는 정확히 유시진의 전장이었다. 유시진의 전장에서 강모연은 유시진과 함께였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강모연이 겪은 혼란과 수모들은 자신의 전장에서 그녀가 치러야 하는 대가들이었다. 마음처럼 병원을 그만두고 개업하기도 쉽지 않고, 이미 병원을 그만두겠다고 사표까지 던졌는데 남아있는 것도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의사로서 흔들림없이 자신의 삶을 지켜나간다. 사회적으로 빈사상태에서 강모연이 우르크로 가서 자신을 다잡았듯 생사의 경계에서 유시진은 강모연의 앞에 나타나 자신을 내맡긴다. 유시진을 살려야 한다. 강모연이 살려야 한다. 가혹하지만 시련이다. 바로 직전 서대영과 윤명주(김지원 분)는 서로에게 주어진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사랑에 실패하는 두 가지 경우다. 너무 멋있으려 하거나, 아니면 너무 멋있으려 하지 않거나. 서대영이나 윤명주 모두 사랑하는 방법은 알지만 사랑받는 방법은 모른다. 서로 만나서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술만 마시다 헤어졌다는 말을 이해한다. 자신을 위한 윤명주의 배려와 노력에도 서대영은 오로지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려 한다. 자신의 방식대로 유명주의 선의와 호의를 거부한다. 윤명주로서는 비집고 들어갈 조금의 틈조차 보여주지 않는 지독한 자기애다. 서대영 안에 윤명주를 사랑하는 서대영은 있어도 윤명주로부터 사랑받는 서대영은 없다.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는다. 이 남자와의 사랑은 이렇게 앞으로도 계속 일방적일 것이다. 모멸감과 함께 절망감마저 느낀다.


한가롭고 평화롭기만 하던 일상은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지고 피투성이의 절망만이 그들 앞에 놓이고 만다. 사느냐 죽느냐는 절박한 숙제가 그들에게 주어진다. 우르크에서와 같다. 아니 우르크에서보다 더 지독하다. 대한민국이 아니다. 서울도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시 만난다. 함께 보기로 했던 영화를 여전히 끝까지 다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강모연이 유시진을 살려야 한다. 유시진을 구해야 한다. 알면서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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