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 - "말도 안돼!" 김빠진 기적, 예정된 해피엔딩을 위해"
원래 주인공은 총알도 피해간다. 총에 맞는다고 죽지도 않는다. 만일 우연히 눈 먼 총알에 맞아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총상마저 뛰어넘어 더 극적인 활약을 보여주기 위한 복선에 불과하다. 모두는 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것이라는 것을. 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다.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주인공이란 관객 자신이다. 관객 자신이 작품속 주인공에 자신을 투사하며 주인공 자신이 된다.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현실은 어떨 지 몰라도 허구의 작품 속에서라면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하다. 작품속 주인공들이 항상 잘나고 멋지게 그려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아니 설사 못나고 한심하더라도 그것을 충분히 상쇄할만한 무언가를 갖는다. 관객 자신이 그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비극조차 가장 지독한 이기라 할 수 있는 자기연민을 위한 수단으로써 소비된다. 나는 불쌍하다. 나는 불행하다. 다름아닌 세상이 나를 불쌍하게 불행하게 만든다. 자기를 위로한다.
유시진(송중기 분)이 총에 맞는 순간 아직 한 회가 더 넘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것도 채 시작하고 절반도 지나기 전이라 나머지 시간들을 모두 유시진 없이 채워넣어야 한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의미없다. 그것이 유시진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유다. 시체를 찾지 못했다면 아직 죽은 것이 아니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는 것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단지 언제쯤 유시진이 살아서 돌아올까. 강모연(송혜교 분)이 알바니아로 봉사를 떠나고 방송시간이 다 끝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고민도 사라졌다. 딱 예상한 순간 딱 기대한 방법으로 유시진은 돌아왔다. 감동도 무엇도 없는 드라마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떤 환희마저 느꼈다. 이번에는 시청자를 속이거나 농락하지 않는구나.
평범한 연애를 한다. 평범하게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 통의 전화를 부대원들과 함께 받는다. 불안이 현실이 된다. 두려움이 실제가 된다. 그날따라 무장을 하고 헬기에 오르며 유시진은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이 마침내 불길한 상상으로 돌아온다. 겨우 드라마가 거의 끝나가는 시간에서야 강모연은 유시진의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만큼 아주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하염없이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 지루하기까지 했다. 아마 강모연이 유시진과 겨우 다시 만난 순간 그들과 같이 감격해하지 못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다시 만날 것을 안다. 결말을 아는 이야기처럼 지루한 것은 없다. 기대한대로 그들은 결국 다시 만난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드라마에 깊이 빠져들지 못했다.
어쩌면 드라마 촬영 도중 유시진을 연기한 배우 송중기가 크게 부상을 입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작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병원을 몰래 빠져나가 사격까지 했었던 유시진은 휠체어에 타고 있었다. 그것을 다시 강모연이 당연하다는 듯 뒤에서 밀고 있었다. 부상으로 인한 액션의 제약은 군인인 유시진의 캐릭터 역시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연인의 사랑보다 차라리 유시진이 사라진 공간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시 유시진이 돌아오기까지 그것만을 기대하며 지켜볼 수 있었다. 유시진을 잃고 난 뒤 강모연이 혼자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을 함께 곁에서 지켜본다.
드라마가 끝나감을 받아들인다. 마침내 윤명주(김지원 분)의 아버지 윤장군(강신일 분)도 부사관인 서대영(진구 분)을 딸의 남자로 받아들였다.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면 그들 사이를 막고 있던 모든 문제는 이미 해결된 뒤다. 마지막 긴장을 조인다. 안타깝게 그 시도는 실패했다. 그래도 그들은 긴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났다. 이제 겨우 한 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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