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변호사 조들호 - 모처럼의 위기를 끝낸 막무가내 연극
설마 아니기를 바랐었다. 하필 유치원 원장을 부른 곳이 극장이었다. 더구나 조들호(박신양 분)의 뒤로는 커튼이 빈틈없이 쳐져 있었다. 딸의 일기장에서 연극을 했던 내용을 읽고 난 뒤였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이렇게 어이없이 사건을 끝내려는 것인가.
중반까지는 제법 흥미로웠다. 역시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내가 머리쓰는 만큼 상대도 머리를 쓴다. 같이 머리를 쓴다면 당연히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대한민국 최고 로펌이라는 타이틀을 허투루 딴 것이 아니라면 조들호가 생각한 정도는 법무법인 금산의 변호사들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서로 생각한 것이 같다면 남은 것은 속도와 물량이다. 누가 먼저 중요한 고지를 점령하는가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인데 이미 이긴 싸움이라고 조들호가 너무 방심했다. 설마 그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당장 자기에게 화살이 날아오는데 그것을 막을 대비조차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더구나 다른 변호사들이 조들호처럼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전부 불법이다. 신분을 속이고, 자격을 속이고, 무단으로 침입하고. 뜻밖에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작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조들호가 쓰고 있는 방법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리한 것들인가를. 들키지만 않으면야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만,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상대에게 사실이 알려진다면 재판에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하물며 형사재판이다. 검사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오히려 들키지 않고 넘어가면 그것이 더 신기할 것이다. 신지욱(류수영 분)의 직무유기다. 조들호에 집착하느라 정작 제대로 수사를 지휘하지 않고 있었다.
완전히 궁지에 몰리고 만다. 확신을 가지고 확인사살을 하려 부른 증인들이 오히려 유치원 원장에게 유리한 증언만을 하고 있다. 유치원의 실상을 알아내기 위해 조들호들이 저지른 불법들이 법정에서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었다. 의뢰인인 배효진이 얼마전 같은 아동폭행으로 고소당했고 합의까지 했다는 사실을 바로 재판정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통해 비로소 처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유치원과 원장의 비리에 대해 알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던 학부모들의 신뢰마저 잃고 말았다. 학부모들은 당장이라도 유치원이 문을 열어야 아이들을 맡길 수 있다. 학무모들마저 찾아와서 유치원 원장에게 사과할 것을 강요하는 지금 상황에 어떻게하면 조들호는 유치원 원장의 비리를 밝히고 의뢰인인 배효진의 무죄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그야말로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상황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 방법이란 유치원 원장 앞에서 거짓으로 연극을 하여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었다니.
확실히 유치원 원장도 순진하다. 자백을 직접 녹음한 것도 아니고, 설사 녹음했다 하더라도 이미 그 전에 조들호가 자신을 도발하며 대답을 유도하고 있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조들호의 도발에 말려들어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내뱉은 실언이었다 말하면 결국은 자백 자체에 대한 진실공방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은 증거다.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인과 증거가 필요하다. 조들호가 검사시절 피의자들을 어떻게 다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자백만 받아내면 그것으로 범죄입증은 끝난 것이다. 그냥 어렴풋이나마 유치원 원장의 범죄를 인지하고 있던 신지욱이 끌려가는 척 뒤에서 도움을 준 것이라 이해하는 편이 더 속편하다. 유치원 원장을 체포하고 싶어도 최소한의 근거가 필요했다. 일단 체포하고 나서 수사를 시작하면 유치원 원장의 혐의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신지욱의 아버지 신영일(김갑수 분)의 말이 정답이다. 검사라면 당연히 재판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 아동학대가 없었다는 사실에 더 다행스러워해야 한다. 조들호에게 이기는 것에만 집찰할 것이 아니라 설사 재판에서 지더라도 그것을 검사로서 자신의 승리로 바꿀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재판과정에서 조들호가 폭로한 내용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유치원 교사를 대신해서 더 큰 거물인 유치원 원장을 자신의 손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결국 그 또한 검사로서 자신의 실적이다. 자신의 실력이다. 신영일의 캐릭터가 미묘하다. 조들호가 말도 안되는 연극을 하는데 그저 커튼 뒤에서 듣고 있기만 해서는 신지욱으로 당당히 홀로 설 수 없다. 드라마의 주요등장인물도 아닌 단지 조들호를 돋보이기 위한 오브제로서 등장한다.
마지막 유치원원장기 감옥에서 참회하는 장면은 실망의 끝이었다. 그토록 지독스럽게 굴던 사람이 아이들이 보낸 편지 몇 장에 그새 마음을 바꾸고 유치원마저 환원한다. 갑작스런 캐릭터의 변화가 유치할 정도로 직설적이다. 여운을 강요당한다. 허무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