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과 부채, 부채의식...
까놓고 말해 내가 광주에서 학살을 지시하고 직접 행동에 옮겼던 것이 아니다. 굳이 지역 따져가며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으니 지역차별과도 상관없다. 그러면 내가 호남에 어떤 빚을 지고 있는가.
그래서 부채'의식'인 것이다. 직접 빚을 졌다는 것이 아니다. 빚을 졌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인간이니까.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전혀 몰랐고, 전혀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먼저 손을 내밀거나, 혹은 내민 손을 기꺼이 잡아준다. 지금이라도 무어라도 해주고 싶다.
당연히 당사자인 호남과는 다르다. 그것은 분명히 하고 싶다. 사는 곳이 다르고, 주변의 환경이나 조건도 모두 다른데, 같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그저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막연하게 공감하고 싶은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양심이기도 하고, 연민이며 동정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것이 그렇게 잘못되었는가. 그냥 같은 인간이면 안되는 것인가.
광주를 방문한 문재인에게 어느 광주 시민은 호남이 아니지 않느냐 물었다. 선거결과에 당혹해하는 비호남의 야권지지자들에게 호남의 야권지지자들은 지역차별주의자라 비난을 퍼부었다. 어째서 그토록 비호남의 야권지지자들이 당혹해하고 심지어 배신감마저 느끼는지 전혀 이해하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너희들이 호남을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면 너희들도 똑같은 놈들이다.
새삼 깨닫는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오만에 대해서. 어차피 자신은 호남사람이 될 수 없고, 호남사람과 같아질 수 없다. 그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므로 당신과 우리는 결코 섞일 수 없는 타인일 수밖에 없다. 바로 비호남의 많은 야권지지자들이 부채의식에 대해 말하는 이유다. 어쩌면 자신의 일방적인 감정에 대해 호남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거부당했다. 굳이 먼저 손을 내밀 필요도, 내민 손을 잡을 이유도 없다. 어떻게 해도 자신들은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 불과하다.
국민의당의 존재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호남은 비호남의 많은 야권지지자들에게 마음의 빚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국민의당이 새로 생겨났다. 비호남의 야권지지자 상당수가 그토록 혐오하고 비토하는 정당이 호남의 선택으로 호남의 다수당이 되었다. 이제는 어지간한 일들은 그냥 국민의당에 맡겨도 되지 않을까. 일단 내민 손은 거부당했고, 그 손은 다른 손을 잡았다. 실제 빚이 있어도 그 쯤 되면 굳이 갚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선거 이후 특히 호남 야권지지자들이 하는 말들을 가만히 들어본다. 선거 전부터 호남홀대론을 앞세워 다른 지역에 배타적이던 그들의 진실한 속내를 들여다본다. 호남 이외의 지역에 대한 본능적 혐오와 증오, 무엇보다 같은 야권 안에서의 우월감과 배타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그동안 야권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을 뿐 저들에게 비호남은 동지조차 아니었다. 우리가 아니었다.
어째서 비호남의 야권지지자들이 부채의식을 말하며 호남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가. 그냥 짝사랑하다가 차인 한심한 놈팽이들의 넋두리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부채의식이 사라졌을 때 진정 호남과 남남이 될 수 있다. 바라는대로 호남을 다른 지역과 똑같이 대한다.
서로 너무 민낯을 보고 만다. 감정은 더욱 식어간다. 괜히 호남은 다르다며 열을 내던 시절들을 후회하게 된다. 차라리 남보다 더 안 좋다. 막연한 호감이 실망으로 다가온다. 선거결과가 문제가 아니다. 이후 쏟아지는 말들이 문제다. 전부터 쏟아졌던 말들이 문제다. 결코 저들과는 '우리'가 될 수 없다. 확인이다.
자기들만 상처받았다 착각하면 안된다. 자기들이 상처받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상처받는다. 아무렇지 않게 날선 말들을 내뱉으며 그래도 호남이니까. 참 잘들나셨다. 야권에서 호남은 갑이다.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