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국수의 신 - 국수에마저 처절해져야 하는 이유, 설득에 실패하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라 모두가 똑같이 가난이라는 출발선 위에 서 있었다. 그나마 조금 유리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조차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해 늘어나게 될 사회전체의 부와 비교하면 아주 사소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조건에 큰 차이가 없다면 결국 남은 것은 자신의 노력과 실력 뿐이다. 얼마나 열심히 필사적으로 노력했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신분이 역전된다. 현실이 뒤바뀐다.
그래서다. 바로 어제까지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고단한 얼굴로 마주치던 흔한 이웃에 불과했다. 벌거벗은 채 부끄러움도 모르고 골목을 누비며 뛰어놀던 또래의 친구였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면서도 전혀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었다. 시장에서 함께 장사하고 공사장에서 일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무언가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는 세계가 전혀 달라져 있었다. 자기와 같은데. 자기와 전혀 다르지 않은데. 자기에게도 그런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런데 지금 자신과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크게 달라져 있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모순이 없을까?
한국사회에 언제부터인가 만연해 있는 질시와 증오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자기보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이다. 원래 자신의 것이었으니 - 아니 장차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들이니 이미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만역한 동경을 넘어선 친근감 역시 그에 비례해서 가지게 되는 당연한 감정이다. 저들은 자신과 같다. 자신은 저들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 다르다. 그래서 그같은 현실과의 괴리를 이해하기 위한 자기만의 논리를 스스로 만들게 된다. 누군가 자기의 것을 빼앗아 부당하게 가로챘다. 다른 누군가의, 혹은 세상의 잘못으로 정당하게 자신의 것이 되었어야 할 것들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 버렸다. 성공은 누군가를 속이고 빼앗는 것이고, 그러므로 부당하게 성공을 가로챈 이들에게는 자격이 없다.
그저 국수를 만드는 이야기다. 누구보다 맛있는 훌륭한 국수를 만들어 성공을 거두는 이야기다.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고아원에 있으면서 밤늦게까지 혼자서 국수를 연구하고 이제 곧 중요한 시험을 앞둔 친구를 위해 끓여 가져간다. 친구가 국수를 먹고 힘을 내서 오랜 꿈이던 경찰관 시험에 합격한다. 어려서 아버지는 자신과 어머니를 위해 손수 국수를 마셨다. 자신도 이제 친구들을 위해 스스로 국수를 말아 내간다. 세계가 넓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먹는다고 하는 행위는 인간만이 아닌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있어 근본과도 같은 것이다. 단지 생존을 위한 먹이가 자신의 존재를 위한 유희이고 의식이 된다. 그런데 결국 그마저도 복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국수로 성공한 김길도(조재현 분)는 아버지의 국수를 훔쳤고, 마침내 아버지와 어머니마저 살해했다.
어쩌면 주인공 무명(천정명 분)의 망상인지도 모른다. 부모는 병이든 사고든 그냥 어려서 돌아가신 것에 불과하다. 김길도의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어려서 우연히 아버지로부터 김길도의 이름을 들었다. 졸지에 고아가 되어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무심코 무명은 그런 꿈을 꾸게 된다. 원래 자신은 고아가 될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비참하고 비루한 신세로 전락할 것이 아니었다. 김길도가 가진 궁락원이야 말로 원래 자기가 물려받아야 할 것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자기가 물려받아 소유했어야 할 자기의 것이었다. 망상은 마침내 자신의 것을 중간에서 가로챈 김길도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이어진다. 되찾아야 한다. 실제 아직까지 무명의 복수심이라는 것도 자폐적 망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루할 정도로 자잘한 이야기들까지 충실히 따라가는 전개와는 달리 무명이 김길도에 대해 가지는 원한이나 적개심 같은 것은 그다지 제대로 묘사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원망의 대상이 필요하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불행의 원인을 돌릴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김길도는 살인을 저지른다. 몇 년을 혼자서 노력해서 일구어낸 국수의 제조법까지 빼앗는다. 그를 쓰러뜨려야 한다. 그를 몰락시켜 복수를 완성시켜야 한다. 고아원 친구인 채여경(정유미 분)까지 끝내 피를 보고 만다. 채여경에게 강요된 비참한 피의 흔적이 또다른 고아원 친구 박태하(이상엽 분)의 운명마저 끌어들이려 한다. 무엇이 자신들을 이토록 고통으로 밀어넣는가. 좌절케 하고 절망케 하는가. 악의 존재가 자신들로 하여금 원치 않는 길을 가게 만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탓을 돌려 그를 쓰러뜨린다면 잠시의 만족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차라리 본능이다. 하지만 그나마 너무 반복되면 시청자 역시 지치고 만다.
국수라는 소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목숨을 거는 데는 그 대상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얼마나 국수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여전히 복수를 하려 한다면, 국수를 통해 원한을 풀려 한다면, 악을 응징하려 한다면, 그렇다면 국수에는 그만한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어야 한다. 그만큼 더 자주 더 중요하게 국수를 만드는 장면이 나와주어야 한다. 복수만큼이나 처절하고 원한만큼이나 치열하게. 무명의 원한이 정작 김길도와 전혀 따로 노는 듯 보이는 이유였다. 원장이 나서기 전까지 무명은 시청자에게까지 김길도를 향한 자신의 원한을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 정작 원한을 가진 무명이 필사적이지 않은데 시청자가 무명보다 앞서 김길도에 대한 원망을 가질 필요는 없다. 동기가 약해진다. 무명의 편에서 응원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남의 이야기라면 굳이 지켜보는 의미가 없다.
어쩌면 조재현이라는 베테랑의 존재가 드라마에 독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균형이 한 쪽으로 일방적으로 쏠리고 만다. 마치 전혀 다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역시 여기서도 국수는 매우 중요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 국수를 통해 무명의 캐릭터를 김길도와 마주볼 수 있는 곳까지 끌어올려야만 한다. 천정명의 짐이 무겁다. 마침내 김길도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그를 쓰러뜨려야만 한다. 그런 기대를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 아직 천정명의 연기와 존재감은 그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였다. 무명의 원한은 아직 김길도에게 전혀 닿지 않고 있었다. 김길도의 악의 또한 무명을 아예 무시한 채 혼자서 내뿜어지고 있었다. 같은 무대에 서고 나서야 드라마는 비로소 시작된다. 아직은 서로 다른 무대에 서 있는 듯하다.
안타까운 것이다. 고작 국수에도 아직까지 이처럼 절박해지고 처절해져야만 한다. 독해져야만 한다. 아직 사람들의 삶이 각박하다. 원한과 증오가 습관처럼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같은 시청자의 무의식에 충실할 수 있어야 했다. 복수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국수를 이용한 복수에 개연성을 불어넣는다. 소홀했다. 허술했다. 시청자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시청률에서 고전하는 이유다. 심각한 것은 좋다. 납득되어야 한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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