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또 오해영 - 다시 만난 두 오해영, 웃으며 뛰어가 안기다

까칠부 2016. 5. 11. 05:24

가끔 그런 때가 있다. 때로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그것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진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나머지 그것이 마치 미리 예정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시감이란 마치 후불처럼 지나고 난 뒤에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막연한 상상과 환각이 특별한 경험과 만나며 또렷한 형상을 갖추고 기억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것이 내가 보았던 것이었다. 과연 박도경(에릭 분)이 보았던 환각은 오해영(서현진 분)과의 만만을 예견한 진짜 예지였을까?


"쓸쓸해요. 늙어서 죽기 직전에 아쉬운 순간을 회상하는 것처럼 쓸쓸해요. 내 인생은 아주 슬프게 끝날 것 같은 느낌?"


말 그대로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해영은 모르지만 박도경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놓인 시한폭탄의 존재를. 그들이 더 가까워질수록. 그들 사이의 관계가 더 깊어질수록. 둘 사이의 감정이 더 간절해질수록. 폭탄은 한순간에 그 모든 것을 부수고 휩쓸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런 오해영에게 이끌리는 자신이 있었다. 그녀에게 미안하고, 그녀를 연민하며, 그녀와 동질감을 느낀다.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매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를 의식하고 그녀를 생각하게 된다. 환각마저 볼 정도로. 리얼리스트란 때로 무척 슬프다.


이제는 차라리 체념한다. 이제는 당연하게 안다. 자기의 이름 앞으로 온 화분은 원래 이름이 같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다.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저 표정과 몸짓들은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한 것이다. 또다른 오해영을 본 순간 본능처럼 깨어난다.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가 가까이 있다. 바로 같은 건물에 있다. 서현진의 연기에 새삼 감탄하고 만다. 오만 감정이 무심한 표정 안에 다 녹아 있었다. 그저 오도카니 표정을 지우고 앉아있는데 수많은 감정이 그 안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마 오해영 자신 역시 그것이 어떤 감정이고 어떤 마음인가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유전자레벨에서 설계된 무조건반사와 같았다.


오해영(전혜빈 분)만 모른다. 하기는 모든 열등감이란 그렇다. 모든 컴플렉스라는 것이 그렇다. 상대는 모른다. 그래서 더 화나고 더 억울하다. 더 굴욕적이고 더 비참하다. 자기는 이렇게 어려운데. 자기는 이렇게 복잡한데. 그러나 상대는 너무나 쉽다. 너무나 쉽게 아는 척하고, 너무나 쉽게 친한 척한다, 그게 더 화나고 미운데 그런 자신이 또 더 비참하고 한심하다. 만나는 자체가 재앙이다. 함께있는 자체가 저주다. 예쁜오해영이 한국을 떠났기에 비로소 모두가 있는 곳에 나타날 용기가 생겼다. 그런데 이제 다시 예쁜오해영이 한국으로 돌아와 그것도 같은 직장에, 더구나 직장에서 앞으로 자신의 일과 역할을 결정할 책임자로서. 하필 동기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만 진급에서 누락된 것을 알게 된 뒤였다.


자기에게 상처주는 것에 익숙하다. 아마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파혼을 통보받았을 때 자기가 그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신을 비웃고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다. 오히려 괜찮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을 동정하고 위로하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직장을 잘못 골랐다. 맛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맛을 즐길 줄 모르는 것이다. 맛이라는 쾌락을 스스로 욕망할 줄도, 스스로에게 선물할 줄도 모른다. 과연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한태진(이재윤 분)이라는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그러고보면 결혼식 직전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을 것을 여전히 아파하면서도 정작 결혼상대였던 한태진에 대한 미련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이별을 통보받은 순간 그녀 역시 모든 마음을 정리한 것처럼.


그래서 두 오해영은 같은 직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여전히 예쁜오해영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다.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모두가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딸린 부속물처럼 여기고 있었다. 오해영과 전혀 상관없는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오해영은 오해영이었고 오해영과 함께여야 했다. 그렇게 길들여지고 익숙해졌는데 더이상 오해영과 이름이 같은 오해영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이유가 생겼다. 딱 러브코미디에 어울리는 설정이다. 하필 자기가 좋아하게 된 그 사람이 다른 오해영과의 사이에 있었다. 한때 사랑했고 결혼까지 예정되었던 사이였다. 이번에도 오해영은 또다른 오해영으로 인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물러나 숨어들고 말 것인가. 체념하고 포기하면서.


오해영만 위로받은 것이 아니다. 박도경 역시 다르지 않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웃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변명처럼. 울 수 없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스스로를 속여야 했었다. 잘 견디고 있다. 이겨내고 있다.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괜찮지 않다는 증거다. 자기와 똑같이 아파하며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억지로 부여잡고 견디며 버티는 사람이 있었다. 자기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그런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마치 자기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느끼게 되었다. 오해영이 박도경으로부터 자신의 불행을 보았던 것처럼 박도경 역시 오해영에게서 자신과 같은 불안함을 보았다. 곁에서 지켜주고 싶고 지탱해주고 싶다. 죄책감인 줄 알았지만 지독한 자기애의 표현이었다. 아마 그것 역시 예지와도 같은 기시감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 편으로 구원이었다.


사람은 때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으로 구원받기도 한다. 오래전 떠났던 사랑이 돌아온다. 배신과 원망만을 남기고 미움과 함께 떠났던 사람이 다시 돌아와 자기 앞에 나타난다. 그동안 그녀를 향한 모든 감정이 향하던 그곳에 하필 같은 이름을 가진 또 한 사람의 여자가 있었다. 자기로 인해 불행해진 여자였다. 그녀로 인해 잠시 자신의 불행을 위로받고 있었다. 떠나간 사랑에 대한 위로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죄책감과 책임감, 무엇보다 지독한 자기애다. 아직 떠나간 오해영에게 미련이 남아 있다면. 러브코미디의 공식이다. 그래도 그것은 아마도 박도경과 또 한 사람의 오해영의 예언을 뒤엎는, 오해영 자신의 관성마저 부정하는 결과이지 않을까. 드라마는 결말이 아닌 과정이 궁금해서 본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위해 사랑할까?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은 당연한 본능이다. 우연히 엿듣는다. 우연찮게 듣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당연하게 서로의 일상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알리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하필 이웃한 두 사람의 방이 방음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소리가 남김없이 들린다. 알몸이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이유다. 자신도 모르게 이미 가까워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무심코 내뱉는 말들은 미처 자신도 알지 못하던 진심이다. 함께 국수를 먹으며 흘러나온 한 마디가 과연 말처럼 그녀를 위로하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녀를 유혹하려는 무의식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냥 순수한 감상이었는지. 혼란스럽지만 나쁘지 않다.


부모의 마음마저 낯설지 않다. 밉다고 쫓아내고도 바로 찾아와서 싫은 잔소리부터 늘어놓는다. 부모라는 자신는 위치를 이용해 자신을 협박한다. 그런 사소한 일들까지 모두 서로에게 알려진다. 웃는 일들이 늘었다. 박도경은 아직 웃지 않는다. 박도경이 보이는 순간 오해영은 달려가 몸을 날린다. 예정에 없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비로소 오해영은 깨닫는다.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피할 수 있는 운명이 아니다. 또다른 오해영이 앞에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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