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실패와 중도라는 함정...
대선때마다 바람이 불었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박찬종, 그리고 정주영, 이인제, 결국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었고, 다시 문국현과 안철수로 이어진다.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 항상 정치에서 한 걸음 떨어진 새로운 인물들에 기대하게 된다. 노무현도 그렇게 대통령후보가 되었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노무현의 정치적 성향이나 지향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소수의 노빠들 뿐이었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과 그의 정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역시 노무현이 대통령후보가 되기 전부터 그를 지지했던 노사모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단지 이미지로서 그를 지지했다. 자신의 욕망과 바람을 투영한 것이다. 내가 바란 새정치를 노무현이 해 줄 것이다.
노무현이 무엇을 하든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오른쪽에서 지지했던 사람들은 노무현의 왼쪽에 실망하고 지지를 철회한다. 마찬가지로 왼쪽에서 지지했던 사람들은 노무현의 오른쪽을 보고는 실망하고 지지를 철회한다. 대통령으로서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정책적 판단과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뢰의 결여다. 그렇더라도 결국 대통령은 왼쪽으로 돌아온다. 대통령은 오른쪽을 대변한다. 단지 전술적으로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더 넓혀갈 뿐이다.
가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이 떨어진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이유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문재인에 대한 기대도 신뢰도 그다지 크지 않았었다.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저 박근혜만 아니면 된다. 그래도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정도면 참을 수 있지 않을까. 문재인이라는 정치인 개인이 아닌 박근혜의 반대편에 선 노무현을 대신할 정치인으로서 그는 존재했던 것이었다. 아마 문재인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같은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이후 세월호 등을 통해 문재인이라는 인간에 대해, 정치인으로서 문재인이라는 개인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부터였다. 특히 그동안 오히려 새누리당보다 더 낡았던 제 1야당의 체질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과 인내가 나를 설득시켰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중심을 가지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 하려는 정치는 이런 정치로구나. 그렇다면 어떻든 인내를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몇 번이나 실망하고 분노도 했었지만 그래도 다시 문재인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바로 그런 것이 확장성인 것이다.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확신에 의한 지지다. 새누리당과 연정한다. 지지율이 떨어진다. 제 1야당과 합당한다. 지지율이 바닥을 긴다. 무엇을 해도 지지율은 요동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오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두 거대정당만을 비판했을 때 최고의 지지율을 보인다. 언제나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시련은 무언가를 하려 하고 그로 인해 논란이 불거지는 순간 시작된다. 그때 얼마나 고정지지층을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둘 수 있을 것인가.
이명박조차 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이념적 성향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기에 대선후보가 되고 나서 이념적인 문제로 요동이 있었다. 이명박이 오히려 이념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유였다. 새누리당 대선후보들은 역시 한결같을 것이다. 정동영 역시 정작 참여정부의 요직에 있었으면서 참여정부를 부정한 결과 지지층이 이반하고 말았었다. 중도층도 기억한다. 정동영이 그동안 무엇을 했었는지. 신뢰가 없는데 지지가 있을까.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인 이유였다. 박근혜보다 정체성이 뚜렷한 정치인은 없었다. 박정희는 곧 박근혜 자신이었다. 따라서 박근혜는 무엇을 해도 되었다. 어떤 것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한 확실한 정체성이 없다면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결국 자신의 정체성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결국은 아주 오랜 시간 대중으로부터 검증된 이미지 아닌 정체만이 확고한 고정지지와 확장의 여유를 가능케 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중도와 확장성의 함정이다. 무엇을 하든 문제가 된다. 어떻게 하든 이슈가 된다. 그때마다 지지는 요동치고 정체를 시험받는다. 그것을 모두 견디고 넘어섰을 때 그것은 자기 자리가 된다. 비로소 그로부터 확장도 가능해진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하루아침에는 되지 않는다.
노무현은 싫어한다. 노빠도 싫어한다. 문재인은 그다지 신뢰가 없었다. 그냥 차라리 다른 사람보다는 낫겠거니. 이제는 확신이 생긴다.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내가 기대한 정치를 해줄지 모른다. 문재인이 그동안 보여준 실천들의 결과다. 그것이 정치의 힘이다.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