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맥도날드 동영상과 젊은이들의 눈높이...

까칠부 2016. 5. 14. 02:44

맥도날드 배달원 동영상을 이제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젊은이들더러 눈높이를 낮추라. 젊은이들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눈높이를 낮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한국사회에서 직업은 곧 신분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가가 곧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지위를 결정하게 된다.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돈도 많이 번다면 그는 귀족이다. 하찮은 직업을 가지고 돈도 많이 벌지 못한다면 그는 천민이다. 번듯한 중견기업의 정직원과 일개 패스트푸드 배달원과의 격차는 20년이라는 나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크다. 감히 고객에게 덤빈 대가로 패스트푸드 배달원은 바로 해고되고 말았다. 물론 회사의 입장에서도 그 직원은 언제든지 자를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눈높이를 낮춰서 더 열악하고 더 수입이 적은 직업을 찾으라는 말은 스스로 자존감이라고는 없는 비천한 신분으로 전락하라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어차피 성매매여성을 멸시하고 경멸하면서 자신의 성욕을 위해 멸시와 경멸의 대상인 여성의 성매매를 합법화하자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무시하고 비웃을 거지만 너는 무시당하고 비웃음당하는 그것을 해야만 한다. 누가 그렇게 되는가. 당연히 나 아닌 다른 누군가다. 어째서 그래야 하는가.


눈높이를 낮추라 말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특히 늙다리 꼰대들. 학교 가지고 줄세우고, 직업 가지고 줄세우고, 수입 가지고 줄세우고, 그래서 태연히 다른 사람을 비웃고 무시하는 자신들에게 과연 다른 사람더러 눈높이를 낮추라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최소한 다른 사람의 직업에 대해 어떤 직업이고 수입이 얼마든 존중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기는 그렇다면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눈높이라는 말 자체가 차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한다. 자기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한다.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수입이 얼마더라도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안되니까. 기성세대가 만든 이 사회의 룰이다. 그런데도 알아서 비천한 신분으로 떨어지라 말한다. 한 번 계약직이면 영원히 정규직으로 올라올 수 없는 엄격한 계층을 넘은 신분사회에서.


어떻게 배우고 자랐을까. 무엇을 보고 듣고 자랐던 것일까. 50이 넘어서 패스트푸드 배달을 한다. 고작 얼마 안되는 수입을 바라고 이같은 수모와 굴욕마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얼마나 한심한가. 그동안 얼마나 가치없는 삶을 살아왔는가. 비웃어도 된다. 놀려도 된다. 그것은 당연한 징벌이다.


그냥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어딘들 안그럴까? 진상을 진상으로 부르지도 못한다. 오만 진상질에도 돌아오는 것은 손님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 노예들에 대한 질책이다. 매출을 위한 수단이며 도구들이다.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니다. 당연하게 그렇게 여기게 된다. 


괜히 헬조선이 아니다. 밧줄 하나 부여잡겠다고 서로가 짓밟고 밀어 떨어뜨리며 아귀다툼을 벌인다. 승자만이 모든 것을 가진다. 패자는 버려진다. 버려지지 않기에 위해 더 발버둥이다. 희망이 없다. 어쩌면 벌써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무너져간다.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