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공포라는 괴물...

까칠부 2016. 5. 19. 16:39

로베스 피에르의 말처럼 공포야 말로 가장 순수한 감정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 공포라는 감정 하나만 있으면 모든 이유와 논리와 과정과 결과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공포에는 어떤 이유도 동기도 근거도 논리도 과정도 결과도 판단도 필요치 않다. 그냥 공포만 있으면 된다.


그냥 밤이다. 불빛도 아무것도 없다. 하기는 그런 싫엄도 있었다. 창도 무엇도 없는 좁은 방에 사람을 가두었을 때 어떻게 되는가.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망상과 환각이 만들어진다. 그 망상과 환각들이 이유가 되어 더욱 자신을 공포로 몰아간다.


저기 문 뒤에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 굳이 문 뒤에 사람이 있을 필요도 없다. 그냥 그런 말을 듣는 것만으로 문 뒤에 있는 누군가의 구체적인 모습이 그려진다. 분명 몸을 웅크리고 있을 것이고, 손에는 칼을 들고 있을 것이고, 얼굴은 침착하고 냉정할 것이다. 반드시 누군가 있어서가 아니다.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것이 지나치면 이른바 공황장애가 된다. 실재하지 않는 공포를 실재하는 것처럼 여기고 습관적으로 반응한다. 자다 말고 엉엉 눈물을 흘리며 깨어나던 때가 있었다.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뒤채며 숨막히는 절망에 가슴을 움켜쥐어야 했었다. 물론 실체는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이 있다고 여겨진다.


누군가 여성을 타겟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아무나 걸리라고 무려 한 시간이나 기다려 처음 본 여성을 살해하고 있었다. 그 날 그 시각 그 자리에 자기가 있었다면 자기 역시 살인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여성들이 집단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그래서 납득이 간다. 그 범인과 똑같은 미친 인간이 이 사회 어디선가 자신을 노릴 수 있다. 남성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더라도 그것은 미워서라기보다 무서워서일 것이다.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에 뒤따라가면 싫어서가 아니라 단지 무서워서 걸음을 재촉하는 것과 같다.


어째서 여혐인가. 어째서 남성인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 아니, 이미 많은 남성들이 그러고 있다. 징병제라고 하는 현실의 부조리를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대신하고 있다. 징병제라고 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기에 여성을 가해자로 놓고 그들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고 있다.


보다 직접적이다. 내가 죽을 수 있다. 내가 다칠 수 있다. 그런데도 이성적이 되어라. 냉정해져라. 전형적으로 상대를 타자화 객관화하는 인간들의 습성이다.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에 맞추려고만 한다. 오만과 독선이다. 그것을 정의라 착각한다. 내가 똑똑한 놈들 싫어하는 이유다. 정확히 똑똑한 척 하는 놈들이다.


아마 메갈이니 뭐니 여성주의 극단론자들이 보면 화가 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들을 좀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확히 증오라기보다는 공포라 할 수 있다. 남성을 이길 수 없으니 독한 말로 자기를 지키려 한다. 차라리 미움받는 쪽이 더 편하다. 설득이나 공존의 대상이 아닌 거부의 대상으로 여긴다. 누구 말처럼 슬픈 것이다. 진짜 자존감 있는 여성주의자라면 저런 식으로 촌스럽게 증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부정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미친 놈은 맞다. 제정신이 아닌 것도 맞다. 그러나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겠는가. 그리고 미친놈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 미친놈들이 여성을 타겟으로 증오범죄를 저질렀다. 혐오범죄를 저질렀다.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이해는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렵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