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강성여성주의자들의 남혐이 위험한 이유...
증오의 동기는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경멸, 다른 하나는 공포다.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상대를 업수이여기거나, 아니면 존재를 용남할 수 없을 정도로 상대를 두려워하거나.
남성의 여성에 대한 증오는 이 가운데 전자에 속한다. 여성을 두려워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수틀리면 주먹부터 나간다. 굳이 여성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길가다가 단지 입에 담배를 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뜸 따귀부터 올려붙이는 인간들도 있었다. 그런 걸 또 자랑까지 했었다.
여성으로부터 무시당했다. 심지어 여성에게까지 무시당했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이 말한 동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감히 자신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존재가 자신을 무시했다. 가난한 유대인은 경멸의 대상이지만 부유한 유대인은 질시와 증오의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이다. 남성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여성들에게 주입한다.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도록 분위기를 몰아간다. 실제 현실에서 여성의 피해망상에 의한 범죄도 아주 적지 않다. 성폭행을 당했다 여기거나, 혹은 그로 인해 더 큰 범죄가 저질러지기도 한다.
혐오를 해결하는 것은 또다른 혐오가 아니다. 증오는 그냥 증오일 뿐 또다른 증오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으니까. 그나마 내가 메갈이니 워메드니 하는 극성여성주의자들을 이해하는 부분이다. 무력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차라리 미워하기라도 하려 한다.
혐오는 문명이 아니다. 증오도 문명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을 대등하게 만드는 것은 야만이 아닌 문명이다. 조금만 냉정해지면 되는데. 그러나 그럴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도 있으므로. 그래서 인간은 항상 슬프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여성주의자들과는 사실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하다. 굳이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겠거니 여긴다. 선만 넘지 않는다면. 결국 자신 역시 타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