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엄숙근엄진지 - 지식권력의 오만...

까칠부 2016. 5. 25. 01:28

표현의 자유란 반드시 그 내용이 옳아서 지켜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말이 안되는 헛소리라도, 도저히 듣고 있을 수 없는 저질스런 내용이더라도, 그러나 그마저도 존엄한 개인의 배타적인 권리이며 자유이기에 권력이 함부로 그것을 제한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기는 전근대사회인 조선왕조에서조차 그 부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비석이 땀을 흘리니 환란이 있을 조짐이다. 허황된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허황된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마저도 말하지 못하도록 벌주어 막는다면 정작 필요한 일들마저 말하기를 꺼려하게 될 것이다. 아마 효종연간이었던가 숙종연간이었던가. 오만 헛소리 가운데 진정 형식과 격식을 갖추어서는 하지 못할 진실하고 요긴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옳고 똑바른 말들만을 거르다가는 정작 들어야 할 말을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필요의 문제이기도 하다.


원래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대중의 정치란 바로 그런 것이다. 정치인들이야 불특정한 다수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표를 얻어야 한다. 그런 만큼 가려야 할 것도 많고 따져야 할 것도 많다. 다른 정치인이나 권력과의 관계 역시 고려해야만 한다. 엄슥하고 진지해야 한다.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유권자란 자유로운 개인들이다. 그저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할 뿐이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근엄하게 한 마디 충고한다. 좀 더 닥치고 있으라고!


정치인에게 도움이 되는 말만을 해야 한다. 정당이나 정파에 이익이 되는 행동들만을 해야 한다. 다른 정당이나 정파에 속한 정치인이나 지지자들 역시 고려하고 배려해야만 한다. 다른 정치인이나 정당, 정파에 해가 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것인가? 자기들처럼 장황하고 휘황한 수사들로 그럴싸한 격식과 형식을 갖춰서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만 할까? 내가 내 감정과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물어 거스르지 않는 것들만을 이야기해야 할까?


자신도 모르게 통제해야 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검열하려 한다. 자격을 갖춘 글만을 써야 한다. 격식을 갖춘 말들만을 해야만 한다. 무의식이다. 지식인의 오만이다. 나는 많이 배웠다. 남들보다 지식에 있어서나 기술에 있어서나 훨씬 우월하다. 심판자가 된다. 채점자가 된다. 대중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까지 점수를 매기려 한다.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러므로 말하지 말라. 그러므로 가만히 있으라. 같은 입으로 민주주의를 말한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자격을 갖춘 이들만이 말할 수 있는 민주주의이고, 언론의 자유이고, 표현의 자유다. 개인이고 존엄이다.


어차피 말 뿐이다. 기껏해야 인터넷 댓글에 불과하다. 이런 블로그에서 아무리 떠든다고 정치인들의 귀에 들어갈까? 눈에 보이기나 할까?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 국민의 여론이다. 국민 가운데 최소한 한 개인의 주장이고 감정이다. 생각이다. 그것을 단지 듣기 싫다고 무시한다. 보기 싫다고 오히려 거부한다. 등을 떠민다. 그런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잘못이다.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대단하고 훌륭한 말과 글을 못하는 자신의 저열함이 문제다. 그런데도 개인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란 자체가 그래서 원래 시끄러운 것이다. 강성이 있다면 강성이 있다. 극성이 있다면 극성이 있다. 그래서 한 바탕 싸운다. 치열하게 부딪히며 서로의 논리와 주장을 연마해간다. 정치도 그래서 경쟁이 이루어진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책이나 주장이 있기에. 자신이 믿고 있는 이념이나 지향이 있을 것이기에. 그런 다수가 공전하며 다양함을 만든다. 그것을 부정한다. 한 가지, 오로지 온건하고 얌전하고 우호적인 말과 글들만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대단한 말이나 글을 쓰지 못한다.


정말 같잖다. 그래도 기자라는 인간이. 배웠다는 인간이. 생각 좀 한다는 인간이. 여전히 한국사회는 신분사회다. 지식인이란 신분이다. 19세기 부르주아들이 그랬듯 자신들이 획득한 지식이 자신의 권력이 된다. 굳이 그 권력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개인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미천하고 무지한, 한심하고 시시한 개인들을 다스리고 싶어한다. 무의식이 드러난다. 참 어이없는 글이다.


진보논객이라 불리는 인간들을 싫어한다. 언론이라는 부류도 같잖게 여긴다. 자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굳이 확인하고 싶어한다. 대중은 자신들이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는 타율적 존재다. 하기는 그렇게 가르친다. 성적이 좋으니 너는 남들과 다른 존재다. 그래야 한다. 웃기지도 않는다.


시사인 기자가 쓴 글을 보았다. 늘 그래왔었다. 하기는 지지자들끼리도 그런다. 하지만 그런 것이야 서로 툭탁거리며 다투는 일상의 연장이다. 머리위에 있지 않다. 지식인이라고 대중의 위에 있지 않다.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근본을 묻는다. 대중이란 무엇인가. 유권자란. 개인이란.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