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추리물과 수사물...
이를테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관계와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수한 조건과 상황에 의해서만 사건이 일어난다. 반대로 일반적인 일상 가운데 일어나는 사건을 쫓는다.
새삼 '소년탐정 김전일(긴다이치 소년의 탐정수첩)'을 보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많은 추리물에서 전제하는 트릭이란 특수한 조건과 상황 아래에서만 성립하는 퍼즐과도 같다. 동일한 조건에서 결과를 통해 인과를 역추적하여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일상의 일부분이며 통상적인 상황에서 수사관들에 의해 해결된다.
설명이 길다. 꼭 한정된 특수한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오로지 사건을 위해 설정된 공간과 시간이다. 그를 위해서 다시 사건과 별개로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더불어 사건의 해결 역시 아직 현장이 유지되는 한정된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 더구나 작품안에서 일어나는 사건 가운데도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그야말로 특수사건이론인 셈이다.
그와 반대로 수사물에서는 일단 현장을 벗어난 단계에서 사건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진다. 오만 곳을 다 뒤진다. 물론 추리물에서도 그같은 과정들은 존재한다. 단, 주인공 탐정이 아닌 다른 조력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단지 탐정의 추리를 위한 보조적인 역할일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드라마는 바로 그같은 수사의 과정에서 일어난다. 추리물보다 수사물이 대세를 이루고, 추리물이 어느새 스릴러로 바뀌어 불리게 된 이유다. 추리만으로는 아무래도 드라마가 부족하다. 이야기가 빈약하다.
그러고보면 추리물 가운데 장편은 그리 드물다. 시리즈물은 있어도 하나의 사건으로 장편을 이루는 경우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추리의 한계다. 반면 수사물은 사건의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스케일과 분량을 키울 수 있다. 조건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스릴러는 양자의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분명한 건 추리물은 두 번 볼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발로 뛰는 건 역시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재미라도 있지만, 이미 답을 아는 퍼즐처럼 지루한 것은 없다. 그나마 '소년탐정 김전일'은 마지막으로 보고 거의 10년 넘게 지나서 기억마저 가물하다. 그래도 대충 기억나는 게 있어 흥미를 반감시킨다.
갈수록 추리물은 그다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더욱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가 커질수록. 그리고 다시 한 번 보았던 작품을 보면서. 그래도 그 긴장감이 스릴러라는 장르를 만든 것일 테지만.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