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굿와이프 - 진실보다 사실, 밝혀지는 추악한 진실들

까칠부 2016. 8. 7. 05:23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을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과거 누구를 좋아했는가는 전혀 상관없다.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도 전혀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의 아내이고, 내 아이들의 아빠가 누구이며, 지금 누구와 살고 있는가다. 그를 위해 결심하고 노력한다. 때로 사실은 진실이 되기도 한다.


이태준(유지태 분)이 진짜 부정을 저질렀는가는 지금에 와서 전혀 의미가 없다. 이태준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진실로 만드려면 그를 위한 증거와 증인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모두의 앞에 그를 위한 타당한 근거들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태준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주장은 사실로 인정받을 수 없다. 다시말해 설사 진짜 부정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를 입증할 근거만 남겨놓지 않는다면 부정을 저지른 사실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검사의 일이고, 변호사의 일이다. 어느새 김혜경(전도연 분)도 변호사의 방식에 익숙해진다. 굳이 필요도 없는 진실을 알려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거나, 혹은 통제할 수 없는 실재하는 사실들이다. 그래서 서명희(김서형 분)도 변호사로서 이태준의 변호를 맡으며 정작 이태준이 진짜 혐의대로 부정을 저질렀는가를 묻지 않았던 것이었다. 서명희가 오로지 이태준에게 물었던 것은 만에 하나 자신이 알지 못해서 미리 대비하지 못한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었다. 상대가 제시한 근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변호사로서 자신의 의뢰인을 변호할 수 없게 된다. 미리 알고만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진실을 알려 하지 않는다. 당장 필요치 않은 사실들을 알아서 걸러 들으려 한다. 김혜경이 이태준의 변호를 거부한 이유였다. 이태준을 변호하면서 몰라도 되는 사실까지 알게 되는 것이 두렵다. 그로인해 더이상 지금의 관계마저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차라리 몰라도 되는 것이면 모른 채 지나가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차라리 미움이나 원망보다 더 지독하다. 더이상 남편 이태준을 믿지 않는다. 아무런 기대도 남아있지 않다. 단지 남편 이태준과의 지금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만이 남았다. 당장 김혜경에게 필요한 것도 그를 위한 사실이고, 오로지 그를 위한 진실이다.


실제 김혜경이 재판정으로 들어가는 이태준을 불러세워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자신이 계속해서 이태준을 남편으로 여기고 믿을 수 있도록 증거를 보여달라. 아내인 자신에게 숨기거나 혹시라도 속이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 이야기해달라. 물론 그런다고 이태준이 자신에게 털어놓은 사실들이 이태준이 감추고 있는 모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모르면 되는 것이다. 모른 척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사실이라 여기면 사실이 되는 것이다. 진실이라 여기면 진실이 되는 것이다. 거짓인 것을 알기 전까지 그것은 진실이 된다.


까도 까도 끝이 없다. 파도 파도 한계가 없다. 그동안 앞정서서 김혜경을 도우면서 좋은 이해자이자 조언자가 되어주었던 로펌조사원 김단(나나 분)이 사실은 검찰수사관 시절 이태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사이였다. 그것도 검찰수사관으로서 업무와 관계하여 알게 된 정보들을 개인적으로 유통하여 이익을 챙긴 사실을 감춰주는 대가로 이태준이 요구하여 성관계를 맺었던 것이었다. 남편으로서도, 그리고 검사로서도 이태준은 김단을 상대로 결코 해서는 안되는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증거였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더해 그동안 든든한 이해자이자 좋은 친구로서 믿고 기대왔었던 김단에 대한 분노가 무엇보다 크다. 인간으로서 이태준의 바닥은 어디이며, 이태준이 감추고 있는 진짜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김단이 그동안 김혜경의 주위에 머물며 그녀를 도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까지 김혜경은 무심하게 넘어가려 한다. 굳이 보려 하지 않고, 굳이 들으려 하지 않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현명했다. 마침내 귀를 열어 듣게 된 진실을 차라리 거짓된 사실보다 더 참혹하다. 다시 한 번 남편을 잃고, 겨우 마음을 기댈 수 있었던 친구를 잃게 되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그동안 변호사로서 그녀는 단련되어 왔던 것일 게다. 진실은 필요치 않다. 사실은 얼마든지 자신의 노력과 실력 여하에 따라 만들고 바꿀 수 있다. 그녀가 견뎌야 하는 시련이다. 서중원(윤계상 분)도 비로소 김혜경과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다만 그 의도가 이루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역시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겨우 세상에 발을 딛은 사회초년생은 티가 난다. 당장 MJ로펌에 정규직으로 채용되기 위해 김혜경을 경쟁자로 여기며 필사적이었던 이준호(이원근 분)만 하더라도 서명희로부터 채용하지 않겠다는 말을 전해듣고 바로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어떻게든 MJ에 남고 싶었다. 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싶었다. 번듯한 로펌변호사로서 한 번 열심히 자신의 능력을 펼쳐보고 싶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좌절하고 말았다. 그런데 정작 이준호를 대신해서 경쟁에서 살아남아 로펌에 남게 된 김혜경은 자신의 양심과 자존심을 이유로 그런 자리를 내던질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승리가 너무 간절하다면 반칙이라도 무릅쓰는 것이다. 패배만은 어떻게든 피하려 한다면 부정한 수단이라도 서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사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아직 김혜경은 전직검사 이태준의 아내였다. 모두가 알아주던 전도유망한 검사 이태준의 아내였다. 돌아갈 곳이 있다. 이제 곧 이태준이 무죄로 풀려나고 검사로 복직하면 다시 돌아갈 곳이 생긴다. 무의식이다. 필사적으로 MJ로펌이 자신이 돌아갈 곳이라 여기도록 만든다. 남편 이태준에 대한 실망이고 분노다. 남편과는 상관없이 이곳에서 새로운 자신의 삶을 시작하고 싶다. 간절함이 이유가 되고, 절박함이 근거가 된다. 결국 받아들인다. 과정은 그다지 깨끗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결과를 결과로서 받아들인다.


그다지 썩 통쾌한 드라마는 아니다. 마지막 죽은 줄 알았던 조국형(고준 분)이 등장해서 최상일(김태우 분)에게 한 방 먹이고 이태준을 무죄로 풀려나게 할 때도 반전은 놀라웠지만 시원한 느낌은 없었다. 마치 부정한 범죄자가 부정한 수단으로 무죄로 풀려나게 된 듯한 찝찝함이었다. 전반적으로 그렇다. 현실이 그럴 것이다. 시원한 것은 없다. 불편하다. 시간은 빨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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