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굿 와이프 - 변호사로서의 성장, 인간으로서의 독립, 굿와이프의 의미

까칠부 2016. 8. 21. 05:16

도덕적으로 과감해질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는 각오와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행위라 할지라도 의뢰인에게 이익이 된다면 그것은 무조건 옳다. 변호사로서 의뢰인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면 어떤 도덕적인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변호사란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신의 양심이나 명예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변호사로서 더 높은 자긍심이다. 손동호(유재명 분)이 어떤 비난에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다.


김혜경(전도연 분)의 변호사로서의 성장과 발전이 인간으로서 개인과 존엄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김혜경이 처음 신입변호사로서 MJ로펌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주위의 의견을 쫓기에 바빴다. 변호사로서 자신의 생각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었다. 어쩌다 주장하는 것들도 변호사로서가 아닌 김혜경이라는 개인으로서였다. 


개인으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변호사로서는 아직 불안하고 미숙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김혜경도 변호사로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주도하여 재판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도덕적으로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한 사람의 변호사로서 이제는 당당히 자신의 의뢰인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 노회한 손동호와의 대화에서도 그래서 전과는 다르게 주눅들거나 끌려다니는 느낌이 전혀 없다.


자신감이다. 이태준의 아내가 아닌 인간 김혜경이다. 아이들의 엄마이지만 인간 김혜경이기도 하다. 아내로서 이태준을 이해하려 했다. 아내로서 이태준을 용서하려 했다. 인간으로서 이태준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보려 한다. 자신에게 이태준이란 어떤 의미인가. 단순히 자신이 낳은 아이들의 엄마라서가 아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아이들 역시 엄마인 자신을 사랑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의 아빠인 남편과의 관계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들이기에 결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불행까지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아닌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으니 이제는 아이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믿어줄 차례다. 엄마와 자식들이지만 한 편으로 대등한 인간의 관계다. 이태준의 실수다. 이태준은 끝까지 김혜경을 자신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로서만 대하고 있었다.


아내기이게 당연히 남편 이태준을 사랑하고 믿어야 했던 시간은 이미 지났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굳이 남자 이태준을 끝까지 사랑하고 믿어주어야 할 의무도 책임도 가지지 않는 인간 김혜경 뿐이다. 만일 이태준이 진정으로 자신의 사랑과 이해를 구하려 한다면 먼저 찾아와서 자신을 설득해야만 한다. 납득시켜야만 한다. 인간 대 인간이어야 했다. 자신의 말처럼 진심으로 김혜경을 사랑했다면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가 되었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모할 정도로 진심으로 부딪히던 그 시절로 돌아갔어야 했다. 하긴 과연 이태준에게 그런 순수하던 시절이 있기는 했을까.


마지막이었다. 그 순간만은 다시 아이들의 엄마였고 이태준의 아내였다. 정확히 아이들의 부모였다. 설사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되더라도 생물학적으로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의 부모라는 사실 만큼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착각했다. 자신들은 아직 부부다. 자신은 아직 김혜경의 남편이고, 김혜경은 아직 자신의 아내다. 


하지만 한 번 우리를 벗어난 동물은 다시 우리로 들어가지 않는다. 얼마든지 우리 밖에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을 알게 된 짐승은 우리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이태준이 서중원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비로소 김혜꼉도 깨닫게 된다. 이태준은 자신을 사랑해서 자신의 마음을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내인 자신을 자신의 곁에 붙잡아두려는 것 뿐이다. 이태준에게 인간 김혜경은 어디에도 없다.


설사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많은 일들이 생기더라도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한 자신의 선택이고 자신의 책임이다. 인간으로서 자신을 위한 최선을 선택했다. 개인으로서 자신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그 후회조차 결국 자신이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감당하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자신의 몫이다. 그렇다면 기꺼이 자신이 책임지겠다.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겠다.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당장 아이들과도, 가까운 주변사람들과도, 무엇보다 누구의 도움도 보호도 없이 혼자서 세상과 부딪히며 싸워가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문앞에서 망설이다 주저앉고 만다. 차라리 인내하며 견디기를 선택한다. 자신이 있다. 자신감을 확인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다. 여성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진정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태준과의 결혼생활은 이태준 자신이 말한 것처럼 김혜경이라는 재능을 가두는 족쇄였다.


'굿 와이프'라는 제목이 원작인 미국드라마와는 그 의미를 전혀 달리한다.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굿 와이프'라는 의미는 미국의 그것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순종적인 현모양처에서 독립적인 한 사람의 여성으로 바뀐다. 과연 서중원과 재혼하게 될까? 그리고 또 한 번 서중원에게 좋은 아내(굿 와이프)가 되려 할까? 서중원이 결혼을 고민한다. 과연 결혼만이 정답인가? 사랑한다고 모두 결혼해야만 하는가? 결혼이 결국 이태준도 김혜경도 구속하지 못했음을 결과로서 보여준다. 분명 설사 결혼하더라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좋은 아내'가 될 것이다.


가족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다시 아버지가 되었고, 어머니가 되었고, 부모가 되었다. 부부라 착각했다. 그 모습을 보고 새삼 서중원은 열패감을 느낀다. 그곳에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 자신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었고 여성이었다. 김혜경의 과감한 선택은 반전과도 같다. 달콤한 관습적 환상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차가운 얼음의 칼을 던진다. 부부란 것이 그렇게 절대적이고 소중한 가치인가. 역설처럼 '굿 와이프'라는 제목이 굵은 볼드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뜻밖에 마지막 재판은 서중원의 재판이 될 듯 하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찰과 의뢰인을 위해 역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만난다. 부부였던 이태준과 김혜경이 정면으로 부딪힌다. 물론 예고편을 보며 해보는 상상이다. 의외로 로펌의 대표로서 냉정하면서 대범한 여장부 서명희(김서형 분)의 일면을 본다. 재미보다는 짜릿한 여운이 더 즐거운 드라마였다. 생각하는 것이 많다.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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