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네티즌의 권력과 선민주의...

까칠부 2016. 9. 7. 08:14

권력의 권자는 원래 저울 권자다. 저울이란 규준이다. 계량하고 판단하는 기준이다. 정의를 계량하고 진실을 판단하는 것이 바로 권력의 역할이었다. 법을 만들고 도덕을 강제하고 진실여부를 판단한다. 그래서 많은 시대 많은 사회에서 권력이 맡아온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재판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누구에게 더 정의가 있고 진실이 있는가.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권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때로 판관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은.


이를테면 드라마 '왕건'에서 궁예가 보여주었던 관심법과 같은 것이다. 명나라를 건국한 태조 주원장 역시 문자의 옥을 통해 진실을 꿰뚫는 자신의 혜안을 과시하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단서만으로도 자신은 모든 진실을 꿰뚫을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을 속이려 하지만 결코 자신은 그들에게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근대사회 어느 왕조에서나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진실을 만들 수도 있다.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모두 죽인 다음 사실을 조작하면 그것이 진실이 된다. 그래서 군왕이 된 자는 부끄러움도 없고 잘못도 없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을 것이다. 타블로의 학력을 가지고 거의 모든 인터넷이 들끓었을 때 보인 모습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주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서 그것을 확대하여 사실로 확정한다. 다수의 네티즌들이 자신들이 찾아낸 사실들을 공유하며 진실을 만들어간다. 어떤 전문가보다, 어떤 공인된 기관보다 자신들이 더 정확히 사실을 알고 진실을 꿰뚫고 있다. 그리고 그처럼 자신들끼리 만들어낸 진실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타블로는 물론 그 주위까지 괴롭히기 시작한다. 직접 집까지 찾아가고, 집요하게 타블로에 대한 악플을 달고, 그러면 타블로가 끝끝내 지쳐서 진실을 털어놓을 것이다. 타블로와 같은 거짓말장이 외국인이 더이상 이 사회에 발붙이고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진실이며 정의다.


그들이 자신들과 다른 주장이나 의견을 내놓는 지식인이나 전문가들에 대해 오만하다 비판하는 이유다. 오만하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주제넘는다는 뜻이다. 충분히 자겨과 실력을 갖추고 남들보다 높은 곳에서 솔직하게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것을 굳이 오만하다고까지 말하지는 않는다. 수학선생님이 학생에게 문제의 풀이와 답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주는 것을 오만하다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의라 하는 것은 실제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프로팀에서 선수로 뛰었던 사람이 사회인 야구팀에서 기술이나 전술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고 가르치려 한다면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지 건방지다며 비난하는 경우란 역시 거의 없다. 자격이 없다. 실력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들과 다른 생각이나 주장은 틀린 것이다. 틀린 것을 옳은 것처럼 고집하고 있으니 그들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의견이나 주장을 내놓고 있으니 더이상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그러면 과연 네티즌들이 주장하는 근거라는 것은 항상 옳은가. 벌써 예를 들지 않았는가. 거의 다수의 네티즌들이 타블로의 학력위조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공격에 동참하거나 최소한 침묵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네티즌들이 내놓은 근거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처럼 타당한 것들이었는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타블로의 태도나 대응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자신들이 옳았던 부분도 있지 않은가. 타블로가 잘못한 부분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다수가 그같은 주장에 동의했을 때 그것은 사실이 된다. 그것이 전부다. 다수가 자신의 주장을 인정하고 동의해준다는 것. 다수가 곧 정의다. 집단이성이라기보다는 집단의 광기다. 고장난 CPU 수만개를 모아봐야 알파고는 커녕 고철고만 될 뿐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홈그라운드니까. 인터넷이란 자신들의 공간이니까.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생각들을 공유한다. 어차피 비슷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다. 인터넷은 개방적인 듯 보이면서 의외로 폐쇄적이다.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매우 억압적이다. 오히려 외부의 강제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기에 더욱 개인의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 다수가 허용하는 폭력은 정의다. 단지 인터넷에서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폭력이기에 자각조차 없다. 악을 몰아낸 쾌감을 서로 공유하며 결속을 강화한다. 일베나 메갈리아나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생겨난 것들이 아니다. 일베니까 당연하다. 메갈리아니까 자연스럽다. 서로가 서로의 정의를 담보하고 증명해준다. 그곳에서 자신들은 전혀 아무 문제도 없다. 일베나 메갈리아나 단지 인터넷 커뮤니티에 불과한 자신들의 집단과 정체성에 대해 자부심 비슷하게 공유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외부의 공격은 단지 정의로운 자신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이다.


굳이 일베와 메갈리아를 먼저 지적했지만 다른 커뮤니티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 폐쇄성은 단지 자신들과 다른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집단적인 행동으로 곧잘 표출되고는 한다. 특정한 이슈에 대해 자신들이 얼마나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가 확인하는 계기로 삼는다. 다르다는 것은 곧 분란이며 어그로다. 악은 퇴치되어야 한다. 단지 그 극단에 일베와 메갈리아와 같은 정상을 벗어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같다. 단지 그 모든 모순이 모이며 집약된 것이 일베와 메갈리아라는 특수한 공간이었을 뿐이다. 어디에나 있지만 그러나 어디에도 없다. 일베와 메갈리아가 특별하다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인터넷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면 어느 커뮤니티든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굳이 어그로가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민감하고 폭력적인 집단의 반응에 지레 겁먹고 도망치는 사람도 넓은 인터넷에서는 적잖이 일어난다. 그래도 쫓겨난 사람이 원래 잘못한 것이다.


이미 자기들끼리 합의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이미 결론이 내려졌으니 다른 의견따위 전혀 필요치 않다. 자신들이 내린 결론을 뒷받침할 근거들이 필요한다. 항상 결론이 먼저다. 근거는 나중에 따라붙는다. 직관이 먼저고 그 다음에 논거와 논리가 뒤따라온다. 그를 거스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전문적으로 교육받고 훈련받은, 실무에서 경험까지 쌓은 전문가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틀리다 말하면 틀린 것이다. 왜냐면 자신들은 다수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근거가 된다. 소수로서 다수를 설득하려는 것은 가르치려는 오만이며 월권이다. 판단은 자신들이 한다. 결론도 자신들이 내린다. 그리고 자신들은 항상 옳다. 항상 옳을 수밖에 없도록 자신들이 근거를 찾아낸다. 완결된 세계에 다른 가능성이란 없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다. 자신들이 그렇게 만든다. 그것이 정의다. 다른 답은 필요없다.


하긴 그래서 더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폭력성을 띄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초의 이슬람이 포교를 위해 전쟁을 시작했던 이유였다. 볼셰비키가 소수파에서 이름 그래도 다수파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정의란 원래 보편적인 것이다. 그런데 아직 소수의 커뮤니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자신들은 다수라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전체만 놓고 보더라도 모든 커뮤니티든 단지 한 줌도 안되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소수로써 다수의 보편을 추구한다. 폭력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다수라는 사실만이 오로지 자신들의 정의를 담보하는 근거이기에 다수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소수를 억압하고 축출함으로써 다수를 유지한다. 누군가 뭐라도 한 마디 더하면 모두가 동의해주는 동질의 다수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언제나 옳다.


선민이란 다른 누군가가 그리 주장하거나 입증해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동의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은 무오류의 신성한 존재가 된다. 자신들은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다. 모욕할 수도 있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들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항상 확인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권력이란 폭력과 정의의 합성어인 것이다. 여기서 정의는 곧 권력의 의지다.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은 정의여야 하고, 자신들이 정의이기에 폭력까지도 모두 옳다. 바로 권력의 논리다. 대중은 권력이다.


자신들이 보는 것만을 인정한다. 정확히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인정한다. 그밖의 것들은 아예 처음부터 없는 것들이다. 있더라도 없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렇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이야 말로 정의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항상 자신들이 진실을 꿰뚫고 악을 응징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항상 옳을 수밖에 없다. 어쩐 비판도 조언도 필요치 않다. 완전무결하다. 차라리 신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