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으면 쓰다 마는 이유...
사실 이건 너무 당연한데, 재미없는데 끝까지 드라마를 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하기는 일이다. 개미꼬리지만 일단 대가를 받고 써주기로 했으니 그러기로 한 동안에는 어떻게든 일정량은 써주어야 한다.
아무튼 나름대로 제법 유명해진 탓인지 어디서든 우연히 내 글 퍼나른 거 보면 거의 따라붙는 말이 재미있으면 그냥 바로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사실 좋지 않을까? 재미없는데도 끝까지 보면서 욕하는 것보다 더이상 봐주지 못하겠다 싶은 순간 과감하게 끊고 관심을 주지 않는 쪽이 서로에게 편하다.
사실 나도 예전에는 아주 가끔이지만 재미없다면서도 끝까지 따라다니며 보고 욕한 적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러면서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거 진짜 보통일이 아니구나. 무엇보다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특정한 대상을 대한다는 자체가 굉장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었다. 싫은데 봐야 하고, 싫은데도 보고서 써야만 한다. 그 찌꺼기가 다 쓰고 나서도 한참을 남는다.
좋은 것만 보고 살기도 바쁘다. 좋은 말만 하며 살기도 삶이란 매우 촘촘하다. 물론 그렇다고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좋은 말만 하며 살 수는 없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그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차라리 너무 하찮아서 말할 것도 없는 것이 낫지 싫은 건 죽어도 끝까지 보지 못하겠다. 바로 내일이 마지막회라 할지라도.
더구나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아티스트를 존경한다. 드라마작가, 감독, 연기자, 스태프까지. 나는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리고 모든 드라마는 재미있다 생각한다. 영화도 연극도 만화도 소설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다고 여겼으니 쓰고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모두가 재미있어할 것이라 여기니 기껏 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 만들어 모두에게 내보이는 것이다. 다만 그 의도와 결과가 항상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노력까지도 폄하할 필요가 있겠는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실 드라마든 뭐든 리뷰를 쓸 때 가장 우선하는 것이 나 자신이 재미있게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별별 사소한 것들까지 들먹여가며 재미있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재미있다. 무엇보다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거기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더이상 보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내가 재미없을 뿐. 남들 재미없다는 드라마도 나는 혼자 재미있다며 보곤 한다. 남들 다 형편없다는데 나 혼자서만 평가가 높다. 원래 재미란 그런 것이다.
일단 체력이 예전만 못하고, 감정도 예전만 못하고, 그리고 굳이 욕하면서 드라마를 보고 써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재미없으면 보지 않는 것으로 그 평가를 다하는 것이다. 볼 만한 가치가 없다면 그만 보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평가를 다하는 것이다. 그 뿐. 사실 가장 솔직한 것이다.
지금도 생각난다. 어느 드라마였는데, 그 드라마의 팬과 출연자들의 팬이 내가 쓴 리뷰를 책으로 만들어 선물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나는 그 드라마에 대한 가혹한 비판들을 쏟아냈다. 미안한데... 어쩔 수 없다. 그런 것 고려하며 쓰는 것은 어차피 기만이다.
그나저나 이제 꼼짝없이 들켜버렸네. 그래서 더 편하기도 하다. 내가 드라마를 쓰다 만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두가 알게 되었으니까. 알든 모르든 내 평가는 같다. 재미없는 드라마는 더이상 보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 이상의 평가는 없다.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