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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 관람 포인트...

까칠부 2016. 9. 27. 10:17

첫장면, 아버지 석우가 부하직원에게 딸의 선물을 물어보고 이미 있는 가정용게임기를 선물로 사온다.


다음 장면, ktx에서 딸이 있는 13호차 화장실까지 뚫고 가기로 결정하고 상화가 위로하듯 이야기한다.


"나중에 자라면 당신 마음 딸도 알아줄 거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좀비가 된 상무에게 물리고 기관차에서 뛰어내리기 전 회상.


그래서 아저씨들이 영화 보다 말고 주책없이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였을 테니까.


문제가 된 회상장면을 보면서도 나같은 경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 연상호 감독이 자기 딸에 대해 저렇게 떠올리고 있구나."


나야 아이가 없으니까 기르는 고양이들 처음 올 때 떠올리면 진짜 녀석들 담겨 있던 박스가 전부다.


아무것도 없이 박스에서 냥냥거리던 조그맣던 녀석들과 녀석들을 보던 나만 떠오른다.


소중한 기억이란 원래 그렇다. 누군가와 사랑하고 첫만남을 떠올려도 거의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마지막 장면.


아빠에게 들려주지 못한 노래를 울며 부르던 수안을 군인들이 알아보고 구하려 달려간다.


아, 다행이다. 드디어 구해졌구나.


아버지의 이야기였거든. 전에 쓴 대로 이 영화는 아버지 석우의 이야기였다.


바빠서 항상 챙겨주지는 못하지만 아버지로서 딸 수안을 석우는 무척 사랑하고 있었다.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것도 결국 아버지로서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니 그런 것이었다.


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많은 아버지들은 밖에서 열심히 일해 돈버는 것이 가족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러니지만 딸을 위해 너무 열심히 노력한 탓에 딸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 한국의 아버지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알기에 상화도 탐탁치 않아 했으면서도 아버지 입장에서 석우를 위로했던 것이었다.


결코 이타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어느 외국인 평론가도 그런 말 하더라. 이기적인 부성이라고.


단지 딸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었다. 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딸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면 그 순간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마지막에 딸 수안은 구출되어야 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딸 수안은 구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의 숙원이 그렇게 군인아저씨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군인아저씨만이 아니다. 관객 모두가 아버지 석우의 바람을 이어받는다.


이 과정을 이해했다면 두 장면이 신파가 아닌 것이고,


이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두 장면은 그저 신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이 영화는 단순한 호러영화가 아니라 좀비라는 극한상황에 놓인 부정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다.


모성이 아니다. 정유미의 비중이 적었던 이유다. 남자의 이야기다. 아, 이 이야기는 했었다.


비로소 영화를 보고 리뷰들을 찾아본다. 그리고 많이 다르게 보았구나 깨닫는다.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석우도 상화도 영웅조차 아니었다.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다.


영화 '부산행'이 천만을 넘는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바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딸에게도, 아내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어쩌면 우리들 자신이 잃어가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어쩌면 자신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되는 영화. 한국영화가 여기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