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 그린 달빛 - 예정된 이별, 홍라온의 정체를 알다!
카타르시스란 이를테면 감정의 예방주사와 같은 것이다. 백신처럼 미리 허구지만 더 강렬한 감정을 경험함으로써 실제의 보다 약한 감정에 대해 무디게 만든다. 한바탕 울고 났더니 어쩐지 후련해진다. 그만큼 슬픔이라는 감정을 쏟아냈더니 슬픔에 대해 무덤덤해진다. 원래 사람이 한 가지 감정을 계속 느끼며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시작할 때부터 세자 이영(박보검 분)과 홍라온(김유정 분)이 이제 곧 헤어지게 될 것을 알았다. 아니 벌써 몇 회 전부터 두 사람이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함께 있을 수 없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기도 했었다. 아무리 역적으로 죽은 홍경래의 자식인 것을 알았는데 당장 정체가 밝혀지면 자기가 위험하고, 더구나 자칫 사랑하는 세자마저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에 더이상 세자의 곁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실제 헤어질 것을 전제로 어머니(김여진 분)에게 부탁하여 제대로 작별하고 떠나려 잠시 궁으로 돌아갔던 것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드라마가 거의 끝날 때 쯤 되어서야 두 사람은 비로소 헤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거의 동어반복에 가까운 뻔한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절반도 다 보지 못하고 그만 지쳐서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저 간절히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의 애절하면서도 달콤한 모습들 사이로 어쩌면 더 중심에 가까운 주변의 사정들을 배치한다. 세자 이영과 맞서고 있는 권신 김헌(천호진 분)이 오히려 세자가 머무는 동궁전에 침입하여 감히 세자를 해치려 한 범인들을 이용해서 음모를 꾸미고, 그 과정에서 홍라온의 이름까지 드러나며 그녀를 찾으려는 그들의 의도가 조금씩 두 사람을 좁혀오기 시작한다. 바로 날이 밝으면 김헌들은 왕(김승수 분)의 허락을 얻어 궁녀와 내시들을 조사할 것이고 어쩌면 홍라온의 정체까지 밝혀지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홍라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선 한상익(장광 분)의 지시에 의해 김병연(곽동연 분)이 홍라온을 백운회로 납치해 데려갈지도 모른다. 가장 답답하면서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홍라온은 김헌들에 정체가 들키거나 백운회에 납치되어 그들에 이용당하고 마는 것인가.
역시나 지난주 지적한대로 홍라온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정작 드라마에서 중요한 대부분의 사건들은 주인공인 세자와 홍라온이 아닌 그들의 주변에서 일어난다. 주인공답게 중심에서 주도하여 사건을 일으키거나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영향을 받는 구조다. 아마 가만 내버려두면 두 사람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냥 사랑만 할 것이다. 하긴 한 나라의 세자다. 일개 내시다. 내시 이전에 역적의 딸이 아니더라도 비천한 신분의 여인이다. 대등하게 밀고 당기며 줄다리기 하는 이야기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궁정연애물의 한계다. 신분의 차이가 주요인물들의 행동을 제약한다. 그래서 궁정연애물은 역사의 서사에 많은 빚을 진다. 두 사람이 헤어지는 과정조차 정작 두 사람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주변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어쩌면 그런 것이 옳을 수도 있다. 현실에서도 아마 많은 연인들이 아무일 없으면 그저 헤어지는 순간까지 사랑만 하며 살아가려 할 것이다. 아무것도 않고 그저 사랑만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운명적으로 만난 두 사람의 순수한 열정을 방해하는 것은 오로지 외부의 불순하고 불온한 의도여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는 더욱 두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두 주인공의 매력에 빠져들어 두 사람의 사랑을 실제로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거의 매번 반복하다시피 변주하며 보여주는 러브씬이나 지루할 정도로 잘게 쪼개어 보여주는 과정들을 전혀 흐트러짐없이 감정에 공감하며 보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바로 지루함으로 지겨움으로 바뀔 수 있다. 다행히 두 주인공 모두 젊고 매력적인데다 연기력까지 뛰어나서 큰 어려움은 없다. 높은 시청률의 이유다. 오히려 그것이 더 큰 장점이 된다. 아름다운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을 조금 더 자세히 보다 더 오래 지켜보고 싶다.
말 그대로 그래서 러브스토리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이 사랑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정작 보면 그래서 세자 이영 역시 권신 김헌에 맞서 바른 정치를 해보겠다 하면서 대부분의 과정은 생략되고 그저 김헌과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장면들만 몇 번 보이고 만다. 누가 두 사람을 위기로 곤란으로 내몰 것인지 명확하다. 중전(한수연 분)이 임신한 궁녀를 가두고 몰래 아이를 낳도록 하고 있었다. 태어난 아이는 남자아이였다. 하필 그 모습을 김윤성이 본다. 다는 아니지만 들려서는 안되는 아기울음소리를 들은 것이 어떤 반전을 보여주게 될까?
이미 김병연에 대한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최소한 백운회의 일원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다만 백운회가 자신을 해치려 동궁전 담을 넘었던 자객들과는 관계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알아야 했다. 백운회보다도 세자보다도 김병연은 옛친구인 김윤성에게 도움을 청한다. 차마 세자에게까지 진실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러고보면 불쌍하기도 하다. 가장 가깝다 여긴 두 사람이 하나같이 자신의 앞에서 진심을 숨기고 있었다. 과연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세자의 다음 행동은 무엇일지. 홍라온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다시 물었어도 돌아온 대답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이름 세 글자였다. 무작정 그녀를 찾아 나선다.
홍라온은 어디로 간 것일까? 떠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기 발로 떠난 것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의지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물론 어차피 자기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떠날 수밖에 없었기는 했었다. 하루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언나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일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이다.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급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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