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아직 살아있다면
삶이란 가능성이다. 아직 살아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아직 살아있기에 아무거라도 할 수 있다. 그것을 몰랐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자기가 보고 듣는 그것들만이 전부라 여겼었다. 그래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었다. 마침내 벽을 깨고 나니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운가.
이소혜(김현주 분)는 죽음이다. 백설(박시연 분)은 삶이다. 죽음은 공포다. 삶이란 억압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 죽음으로 인해 삶이 더욱 간절해졌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에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은 얼마 안되지만 그러나 어느때보다 자유롭다. 자유롭게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즐긴다.
숙명이라 생각했다.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여겨왔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단지 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필연처럼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섬광현상이 이소혜의 감춰둔 진심을 백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이소혜 역시 외롭고 힘들었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간절하게 친구인 자신들을 찾고 있었다. 대단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껏 울 수라도 있게 곁을 지켜줄 수만 있었다면. 자신의 불행을 알리기 싫어 정작 이소혜의 불운도 위로하지 못했다.
증오스런 남편과 시집식구들의 도움 없이도 친구들의 도움만으로 어떻게든 엄마의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엄마가 수술받고 새로운 시설에서 요양받는데 이소혜의 지인인 류해성(주상욱 분)과 홍준기(김태훈 분)로부터 크게 도움도 받았다. 잠시 류해성의 집에서 머물며 집안일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차라리 지금까지 받은 모든 것이 빚이라며 일을 해서 갚아나가라는 말이 고맙기조차 하다. 아직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남자같지도 않은 남편이 아니라도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가 벌써 둘이나 있다.
미처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는다. 헤어지기 전 류해성이 자신에게 하려 했던 이야기를 몇 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만일 그때 류해성의 이야기를 거부하지 않고 들었더라면 그들의 관계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후회하는 일들이 생겨난다. 그때 왜 류해성을 믿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을까? 그러면 지금은 후회할 시간도 얼마 없는데 류해성을 위해 아주 작은 양보조차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법적인 보호자라는 단어 하나였다. 그러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법적인 보호자로서 함께 할 수 있다. 언제 어떤 경우라도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해야 하는 일들도 많다. 친구의 불행을 함께 위로해주고, 친구의 용기도 함께 응원해주며, 친구의 행복을 간절하게 옆에서 빌어준다. 자신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이소혜와 류해성, 그들의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쓰려 하는 의사 홍준기처럼. 할 수 있는데 다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후회다. 해야만 하는데 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후회로 남게 된다. 살아있다면 아직 살아있는 한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살아있다는 의무이며 사명이다. 사랑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어차피 남은 시간도 얼마 없다.
하나씩 이미 예감하고 있던 비극의 전조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임상실험중인 약의 부작용으로 피부에 발진이 나더니 이제는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다. 바로 조금전 함께한 시간들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소중한 사람을 보는 마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백설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한결같다. 자신과 사랑하던 기억마저 잃어버린 이소혜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며 류해성이 그 뒤를 쫓는다. 아직 살아있다면 아무거라도 해야 한다. 죽지 않는 한 끝이 아니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 희망이란 살아있다는 자체다. 류해성이 믿는 것도 자기가 지금 이소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일 것이다.
예정된 비극이 한 걸음씩 그들의 곁으로 다가서고 있다. 홍준기가 류해성을 기다리던 차안에서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는다. 언제 어떻게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야말로 죽음을 벗삼아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견디고 버틴다. 하루의 가치가 일생의 무게다. 느린 듯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가운데 어느새 그들은 결혼까지 하고 있다. 그들이 절망을 이기는 방식이다. 사람이 숱한 좌절과 절망을 이기고 사는 이유다. 지금 자신들의 결혼이 손에 쥔 쌈처럼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하나이기를. 별 것 아닌 소소한 일상이 무척이나 소중한 그들이다.
우연처럼 김상욱(지수 분)과 다시 만난다. 무모할 정도로 솔직한 김상욱의 고백에 백설은 억지로 그를 밀어내려 한다. 그에게 다음 사랑이 있기를 바라며. 자신에게도 다음의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삶이 가져다주는 기적이다. 남편 최진태(김영민 분)의 외도를 의심한다. 자기들이 아닌 백설의 주위에 있는 불순한 누군가가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억지지만 대충은 비슷하게 맞았다. 혼자서는 누구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전혀 어둡거나 우울한 느낌이 없다. 오히려 그보다는 한바탕 축제와도 같다. 어차피 다가올 시간들을 대비하며 하나씩 정리해 나간다. 떠나갈 사람도. 떠나보내는 사람들도. 슬픔마저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시간들을 꽉꽉 채워 써나간다.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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