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 아무 생각 없이 마주보고 있자

까칠부 2016. 10. 12. 05:48

한 마디로 아버지 홍경래(정해균 분)와 사랑하는 세자 이영(박보검 분)의 명예와 안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않고 가만히 있다가 누군가 도우려 뛰어들자 화들짝 놀라는 홍라온(김유정 분)의 모습이야 말로 이 드라마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김헌(천호진 분) 일파에게 잡힐 때조차 아무 경계도 않고 있다가 잡히고 있었겠는가.


전혀 불쌍하지 않았다.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차피 모두 자기가 자초한 것이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잡혀갔다고 그렇지 않아도 역적의 딸이라고 쫓기는 신세이면서 어떻게 감히 그것도 궁궐로 숨어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무술이 뛰어나거나 해서 설사 누군가에게 들키더라도 충분하 혼자서 빠져나올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정체를 감추기 위한 최소한의 변장조차 없이 그저 김병연(곽동연 분)의 뒤에 숨어 궁궐 안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용모파기까지 여기저기 나붙은데다 더구나 동궁전 내관으로 있으면서 얼굴이 익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아무도 몰라볼 것이라 생각한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다. 그래서 만에 하나 자신의 정체를 들키면 그때는 어쩌려는 것이었을까? 그때도 김병연의 뒤에 숨어 그에게 위험을 떠맡긴 채 도망치려는 것이었을까?


어떻게 아버지를 만나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반드시 형옥에 갇힌 아버지를 찾아가 만나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딸이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태어나서 한 번 얼굴도 보지 못한 아버지였다. 불과 얼마전까지 아버지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해 알고 나서도 관군에게 끌려갔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아버지와 만나 얼굴이라도 보고 다만 몇 마디라도 나누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그리고 만나고 난 다음은? 최소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이라도 하는 성의를 보였어야 했다. 아직 궁궐을 빠져나가지 못했다면 긴장하며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었어야 했다. 아무 긴장없이 맨얼굴로 궁궐 안을 돌아다니다 김헌 일파의 김의교(박철민 분)에게 정체를 들키고 끝내는 저항없이 사로잡히고 만다. 아무 수단도 계획도 없이 경계도 삼엄한 궁궐로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지능마저 없었던 것일까?


그야말로 세자가 말하는 백성의 모습 그대로다. 오로지 왕의 백성으로써 왕에게 충성을 바치며 왕의 선정만을 바란다. 스스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든 왕을 위해서는 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걱정도 근심도 궁리도 노력도 오로지 왕만이 한다. 그저 그런 왕만을 바라보며 한결같은 마음만 가지면 된다. 세자와 자신을 엮어 세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는데 눈치없이 애절한 눈으로 세자만을 바라보는 모습은 그 절정이다. 


누가 보더라도 세자와 홍라온의 사이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세자가 마음 독하게 먹고 왕조와 백성들을 위해 홍라온을 버리고자 마음먹으려 해도 당장 그 애절한 눈이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자신을 살리여 악을 쓰고, 김헌이 자신을 미끼로 세자를 위협하고 있는데, 세자마저 자신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혼자서만 속으로 세자에 대한 진심을 읊어대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하는 것이다. 세자를 구한 것은 때마침 나타난 백운회의 사람들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홍라온이 아니었다.


민폐라는 말을 싫어한다. 단지 결과가 그렇게 나왔을 뿐이었다. 좋은 의도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다른 이유들로 인해 결과만 안좋게 나왔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한 사람에게 몰아 물으려 한다. 물론 대부분의 잘못은 김헌 일파가 저지른다. 세자와 홍라온을 궁지로 내모는 것도 김헌 일파와 중전의 탐욕과 악의였다. 그들이 있기에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분명 홍라온만의 잘못은 아니다. 홍라온의 책임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보여주어야 했다. 어떻게든 그들의 악의로부터 자신과 서로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최선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이 그저 김병연에 기대고, 김윤성(진영 분)의 선의에 도움받으며, 오로지 세자의 헌신적인 사랑에만 지켜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아무 생각도 없다. 세자의 말처럼 아무것도 생각 않고 그저 세자만 바라본다. 아버지만 바라본다. 18살이라면 물론 많은 나이라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자기 하나쯤 책임질 수 있는 나이라 할 수 있다.


행동에 절박함이 없다. 처절한 궁리와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때로 어쩔 수 없이 잃어야 하고 포기해야 하는 좌절과 절망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 진짜 어린아이같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그러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사람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각자의 그늘이 있다. 그림자가 있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당위와 필연이 있다. 드라마가 없다. 순백하다. 심지어 홍라온이 잡혀오고 그녀가 잡혀온 사실을 김헌이 말하기까지 시청자만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존재조차 사라진다.


과연 홍경래가 갑자기 홍라온의 엄마(김여진 분) 앞에 나타나는 장면도 어지간히 뜬금없었다. 반전이고 뭐고 그냥 마른 하늘에 날벼락 수준이었다. 아무 단서도 없이 불과 얼마전까지 홍경래가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면서 변장도 않고 나타난 홍경래를 쫓아 바로 관군들이 홍라온의 집을 덮치고 있었다. 일단 홍라온의 용모파기까지 가지고도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던 홍라온의 집으로 홍경래를 잡기 위해 밀어닥쳐 홍경래만 잡아가고 있었다. 홍경래의 가족 역시 역적의 가족이라며 벌써 오래전부터 쫓고 있었을 터였다.


백운회와 그동안 딱히 연락을 주고받거나 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왕(김승수 분)만큼이나 홍경래의 지기이자 백운회의 수장인 상선마저 홍경래가 살아있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도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알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숨어지내던 홍경래가 마침 홍라온의 집을 찾고 그때를 맞춰 관군까지 홍라온의 집으로 밀어닥친다. 


하필 관군들이 홍라온의 집으로 홍경래를 잡으려 몰려온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냥 홍경래가 집으로 찾아왔고 관군이 그를 잡아갔으며 홍라온이 그를 만나러 궁궐로 들어갔다. 의도가 느껴진다. 철저히 목적을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홍라온이 궁궐로 돌아가며 그곳에서 남은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어쩌면 참 저렴한 드라마다. 배경이 한정되어 있다. 궁궐과 시장, 그리고 지금까지 홍라온이 숨어 있던 외딴집 정도가 고작이다. 새로운 배경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기보다 다시 익숙한 배경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남은 분량도 얼마 되지 않기에 이야기의 당사자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야 할 필요도 있었다. 


홍경래가 잡히며 추국장이 열리고 그곳으로 홍라온까지 김헌 일파에 잡혀 온다. 장차 보위를 물려받을 왕의 아들로서 세자가 국문을 함께 하고 있으면 그곳으로 백운회가 밀어닥친다. 물론 여기서도 홍라온은 궁궐로 돌아가서 김헌 일파에 잡히는 역할 이상은 하지 않는다. 이제 여기서 모두가 모인 가운데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클라이막스일 터다. 모두가 모였을 때 풀어야 할 중심이야기가 반드시 있다.


확실히 어디서 주워듣고 온 선비의 말투다. 자기가 직접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겪었고 그에 분노하고 있다면 결코 그런 식으로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무지렁이 백성이라기보다 그래도 제법 배운 선비의 티도 난다. 무엇보다 오가는 이야기를 시대를 뛰어넘는다. 백성에 의한 정치라. 최초의 민주주의도 결코 국민에 의한 정치는 아니었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치는 아주 최근에야 비로소 그를 추구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자기들만 심각했지 전혀 오가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었다. 


하긴 어차피 드라마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지 장식에 불과한 대화의 한계일지 모른다. 이런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대화가 실제 이루어졌다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세자는 역모로 몰려야 한다. 아마 작가 자신도 정작 그들의 대화 자체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쯤에서 한 번은 이런 장면도 있어 주어야 하기에 단지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집어넣는다. 의미도 없고 내용도 없는 공허한 단어의 나열에 불과하다. 멋진 단어들만 그냥 보기좋게 늘어놓는다. 당사자들의 표정에도 진심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과연 세자를 인질로 삼으면 무사히 추국장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니 가히 왕까지 있는 자리에서 고작 세자의 목숨 하나를 잡고 모두 무기를 버리라 황당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일 모두가 무기를 버렸는데 백운회의 무리들이 왕을 공격해 왕을 죽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는가? 세자야 죽으면 다른 사람으로 다시 바꾸면 그만이다. 더구나 중전이 아들까지 낳았는데 세자 하나 살리겠다고 왕까지 위험으로 내몰 수는 없다. 왕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모두가 무기를 버리지 않는다면 다시 처음의 원점으로 돌아간다. 소수의 무리로 다수의 무기를 든 무사와 병사을 뚫고 홍경래와 홍라온을 대피시켜야 한다.


결국 갈등은 끝냈다. 아니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상황이 그를 그렇게 몰아가고 있었다. 오랜 친구이기도 한 세자를 결코 배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은인이기도 한 백운회를 배신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동안 함께 꿈꿔온 이상이 있었다. 홍라온을 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약간의 타산적인 계산이 더해진다. 세자와의 의리도 무겁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무엇이 저쪽에 있었다. 김병연의 검이 세자의 목울 겨눈다. 성공할지의 여부는 이제 작가에게 맡긴다. 어떻게든 모두를 살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김병연은 절박하다.

 

과연 주인공이 박보검이 아니고 김유정이 아니었다면 드라마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드라마는 드라마의 캐릭터가 배우의 매력까지 함께 끌어올리기도 한다. 배우가 가진 본연의 매력에 더해 드라마의 캐릭터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신드롬을 몰고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경우 아예 방치하다시피 배우들의 매력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린다. 아무 내용도 없는데 그저 두 사람의 보기 좋은 모습이 드라마마저 보기 좋게 만든다.


처음부터 개연성같은 것은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 것을 신경쓰며 보는 드라마가 아니다. 로맨스 드라마이고 단지 배경만 허구의 역사를 차용했을 뿐이다. 조선과 비슷하지만 조선이 아니다. 조선이라 불리지만 실제의 조선이 아니다. 오로지 그들은 작가의 의식 속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조금 선을 넘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너무 멀리 간다. 감당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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