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판타스틱 - 행복한 죽음, 행복한 삶, 진짜 죽음과 마주하며

까칠부 2016. 10. 16. 05:18

어쩌면 잠시 유예하고 있었을 뿐인지 모른다. 당장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애써 부정하며 거부하다가 이유없는 분노를 쏟아내고 그리고 마침내 타협을 시도하던 순간에 멈춰 버리고 말았다.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마음껏 사랑하고 넘치도록 사랑받고 있다면 그러면 괜찮지 않을까. 지금 죽더라도 괜찮은 것 아닐까.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바로 얼마전까지 함께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왁자하게 노래까지 같이 부르고 있었다. 아무 근거도 없었다. 그저 막연한 기대였다. 그래도 자기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까지는 홍준기(김태훈 분) 역시 살아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주치의로서 최선을 다하다가 자기가 죽고 난 뒤에도 한참을 더 살아있을 것이다. 바람이기도 했다. 마치 홍준기가 건강한 것이 자기가 건강한 것처럼 기쁘게 느껴진다. 그래서 동병상련이라 하는 것이다. 같은 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처지이기에 홍준기에게 희망이 곧 자신에게도 희망이 된다. 절망이 같은 절망이 된다.


홍준기가 죽는다면 자신도 죽는다. 바로 얼마전까지 멀쩡하던 홍준기가 갑지가 죽음을 앞두게 된 것처럼 자신 역시 언제 죽음을 앞두게 될 지 모른다. 그동안 억지로 눌러났던 부정과 분노의 감정들이 봇물터지듯 밀려들기 시작한다. 필사적으로 현실을 부정하며 홍준기의 죽음마저 외면하려 한다. 단지 자신을 걱정할 뿐인 류해성에게 애꿎은 화를 쏟아내기도 한다. 아직 살아있고 글을 쓸 수 있는 동안 드라마 대본을 완성한다면 그 동안은 죽음에 대해 잠시라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기적은 바라지 않는다. 홍준기의 죽음은 너무나 선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사랑이 이소혜(김현주 분)를 붙잡아 세운다.


홍준기가 그동안 자신을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가를 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오로지 자신만을 걱정하며 많은 것들을 남기고 있었다. 죽어가는 홍준기와 마주하는 것은 곧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다. 홍준기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곧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류해성이 걱정하는 것을 한다. 자신만큼 아파하는 것도 안다. 그러나 자신 앞에서는 항상 괜찮은 척 허세를 부린다. 그 허세가 자신을 향한 사랑인 것도 안다. 세상사람이 무어라 말하는 단 한 사람의 한 마디면 되었다.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 마지막 순간에도 언제나처럼 한결같은 모습 그대로이기를. 그저 편안히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기대려 한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넘치는 것들은 나누고 모자른 것들은 더한다. 힘들고 괴로운 일들은 서로가 나누어 덜고, 기쁘고 행복한 일들은 서로가 함께 더하여 키운다. 홍준기가 남긴 사진들은 그동안 그가 자신에게 기대어 견뎌온 시간들에 대한 보고다.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고 또 걱정하며 살아있는 동안 시간들에 의미를 찾았다. 그래도 모두와 행복할 수 있었기에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었다. 그동안 이소혜 자신 역시 류해성과 홍준기 두 사람에게 기대어 무섭고 힘든 시간들을 버텨 올 수 있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류해성에게도 위로가 된다면. 그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떠나는 이와 떠나보내는 이가 손을 마주잡는다. 비로소 떠나는 이도 떠나보내는 이도 온전히 떠나고 떠나보낼 수 있다.


그래도 한 사람이 더 옆에 있어주니 없던 용기도 생기고 힘도 난다. 무조건 자신의 편만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함께 화내고 슬퍼해주는 사람이다. 함께 웃고 함께 응원해준다. 혹시나 미안하고 부담스럽지만 마음놓고 그에게 기대려 한다. 사랑하는 백설(박시연 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기대 오니 김상욱(지수 분)도 부쩍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기대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신을 상대에게 허락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는 허락하지 않으면서 마냥 기대려고만 하는 것을 흔히 '이용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 최진태(김영민 분)는 사랑한다면서도 아내 백설을 위해 자신의 진심을 보이지 않는다. 가족이면서도 부모자식, 형제자매조차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겨우 일어났다. 겨우 일깨웠다. 자신이 살아있는 이유를. 자신이 지금을 살고 있는 이유를. 앞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려는 이유를. 완전한 답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사랑하는 자신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우울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 아프고 힘든 기억만을 남기고 싶지 않다. 마지막에 자신이 가져갈 유일한 한 가지가 바로 기억이다. 이소혜가 겨우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일어설 수 있게 되자 그녀에게 마지막 짐을 떠넘기듯 홍준기의 심장이 멎는다. 살아달라. 최소한 살아있는 동안은 행복할 수 있도록.


당연히 아프지 않을 리 없다. 힘들지 않을 리 없다. 하긴 류해성(주상욱 분) 또한 당사자다.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상실의 고통과 공포는 비례해서 커진다. 하지만 참는다. 꾹꾹 눌러 잊는다. 애써 자신마저 속인다.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웃을 수 있다. 끝내 눈물이 쏟아져내린다. 하지만 결국 다시 눈물을 거두고 이소혜의 곁을 지켜준다. 자신의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자신의 역할이다. 이곳이 자신의 자리다.


행복한 죽음이란 과연 가능할까? 죽음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삶이 행복한 것이다. 지금 자신의 삶이 너무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서 죽음의 두려움마저 잠시 잊게 만든다. 죽음을 앞두고 어떤 후회도 미련도 생기지 않는다. 오지 않을 내일이 아닌 오늘을, 오로지 지금을 살아간다. 죽어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다. 살아있는 동안 사람은 살아간다. 아직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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