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중드 '랑야방' 보면서 흥미로운 것 하나...

까칠부 2016. 10. 23. 01:48

확실히 일본문화는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정확히는 한반도가 송원명청을 이어가며 꾸준히 중국의 영향을 받아왔다면 일본은 당나라 이후 사실상 대륙과의 통교가 단절되다시피 하면 마치 화석처럼 그 순간에 고정되어 버린 것이었다. 참고로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국조차 주변 이민족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 시대마다 각각 다른 양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튼 원래 중국문명 역시 당나라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좌식문화였다. 의자를 가리키는 또다른 말이 호상(胡床)이다. 한 마디로 오랑캐의 상이라는 뜻이다. 아무래도 더 춥고 더구나 이동이 잦은 북방의 환경이 중국과는 다른 생활방식을 낳았고, 그리고 그것이 5호 16국시대를 거쳐 대거 중국인들의 일상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역시 중국의 전통가옥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캉'구조 역시 동북부에서 시작된 것으로 고구려의 온돌과 유사성이 있다. 중국이 동아시아의 중심인 이유는 그만큼 많은 것들을 만들어낸 만큼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모든 문명을 일굴 수는 없다.


드라마 '랑야방'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분명 실제 역사시대는 아니다. 황제의 성이 소씨이고 나라 이름이 양(梁)이면 남조의 소량이어야 하는데 - 하긴 황궁이 있는 도읍의 이름도 금릉이었다. - 이 소량이라는 나라는 55년 정도 겨우 이어진 당시의 수많은 단명왕조 가운데 하나였다. 초대황제 소연만 해도 남제의 신하였다가 군사를 일으켜 선양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이었는데 드라마에서는 황제가 황자의 신분으로 권력투쟁 끝에 황위를 물려받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초대황제 소연도 후경의 반란으로 병사했고, 그 아들인 간문제도 결국 살해당했으니 역사와 한참 거리가 멀다. 당장 드라마의 주된 배경이 되고 있는 금릉만 하더라도 당시 정식 명칭은 건강이었고, 조정의 관리 가운데 이호형공예병의 육부는 당나라 때나 되어서 겨우 제도화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 전체에 깔린 문화적 배경은 책으로도 보기 힘든 남북조시대의 그것들이었다. 어떻게 아는가면 역시 그나마 익숙한 당나라의 문화와 일본의 문화, 그리고 그 이전 삼국시대의 문화등을 통해 유추하는 것이다.


중국드라마에서는 낯선 좌식 및 마루문화와 당나라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의상들, 그리고 장수들이 입고 있는 일본의 오요로이나 동래부성에서 발굴된 조선의 찰갑과 유사한 형태의 찰갑들. 아직 경번갑은 만들어지기 전이다. 쇄자갑 역시 기물로 여겨지는 것으로 보아 아직 일반화되기 전이다. 의상부터 세트, 소품까지 진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 만들었는가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철저히 고증에 공을 들인 가상역사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으면.


남북조시대를 거쳐 아마 당나라 때부터 중국에서도 입식문화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입식과 좌식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황궁이나 녕군후 등의 집을 보면 거의 입식이다. 그런데 주인공의 집은 거의 완벽한 좌식이다. 다만 일부 입식도 혼용하고 있다. 복식과 화장은 당을 거쳐 일본으로 간 것이 분명하다. 다른 문화를 즐기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푹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