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 기대이상의 결말, 삶에 대해 묻다
그래서 스스로 삶을 포기해야 하는 이들이 안타깝고 슬픈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조차 자신이 죽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죽음이라고 하는 극한의 두려움과 고통 앞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되돌려야 하는 이유를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반드시 살아야만 하고 살아서만 할 수 있는 무엇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편하다.
흔히 말한다. 죽을 만큼 힘들다. 죽는 것보다 더 아프고 괴롭다. 아니 바로 그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굳이 죽음을 삶에 비교하며 삶을 계량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삶을 죽음에 비교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고 싶고, 아무리 괴로워도 당장은 살아야만 한다. 이유같은 건 필요없다. 삶 그 자체가 이유다. 살아있으니 살고, 살고 있으니 살아간다. 다만 살면서 느끼는 기쁨이나 희열 같은 것들이 살아있는데 대한 보상처럼 여겨지기는 한다. 그러므로 살아있기를 정말 잘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만한 알량한 희망과 기대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지쳐있었다. 힘들어하고 있었대. 그래서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어했었다. 이쯤에서 다 포기하고 모두 놓아버리고 싶다. 그래서 계속해서 묻고 있었다. 모습은 홍준기(김태훈 분)였지만 결국 자신이 홍준기의 모습을 빌려 만든 이미지에 불과했다. 자신에게 묻는다. 그래도 좋은가.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는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느 물음 앞에서 그만 멈춰 버리고 만다. 더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할 수 없게 되어도 괜찮은가. 더이상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때문에 사는가. 여전히 암으로 투병중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 이소혜(김현주 분)는 웃을 수 있다.
기대를 뛰어넘은 결말이었다. 성급하게 예단하고 있었다. 죽거나, 혹은 살거나. 주인공이 죽었으니 비극이 되거나, 아니면 조금은 무리더라도 기적이 일어나 주인공이 살게 되는 해피엔딩이거나. 그러나 둘 모두 아니면서 둘 다인 선택이 또 하나 존재했었다. 죽음을 향한 삶이며 죽음과 함께하는 삶이다. 삶의 본질이다. 산다고 하는 자체의 진실이다. 여전히 그녀는 암으로 투병중이다. 매일매일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며 죽음과 싸우고 있다. 그러면서 또다시 자신에게 허락된 하루를 즐기고 있다. 자신이 살고자 마음먹은 이유,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행복하게 웃으면서.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즐기고 있었다. 오늘의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또하나 소중한 선물이다.
암으로 시작해서, 로맨스로 이어지다가, 죽음과 만나고, 마침내 죽음마저 극복한다. 슬퍼하고 분노하고 사랑하며 도피하다가 마침내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전보다 약간 더 불편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암을 계기로 찾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녀의 곁을 지켜준다. 더하고 빼니 역시 행복이 남는다. 사람은 역시 사람 속에서 행복을 얻는다. 그를 위한 과정이다. 삶이라고 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얻은 일상들은 참으로 하찮고 지지부진하다.
굳이 꾸미거나 과장되지 않은 담담한 일상의 연기에 젖어든다. 때로 소녀처럼, 삶의 지혜를 머금은 원숙함마저 연기한다. 분명 이소혜가 주인공이었다. 류해성(주상욱 분)이 극한의 감정을 넘나들며 이소혜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삶과 행복을 찾는다. 악인의 최후는 비참할수록 통쾌하다. 곁다리였다. 그래도 시원했다. 끝났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