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시작이 반, 사실 없이 진실을 확신할 때

까칠부 2016. 10. 30. 05:53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대상이 바로 의심이다. 일단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이미 반쯤은 사실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벌써 절반쯤 사실로 확신한 상태에서 나머지 진실을 확인하려 시도한다. 그래서 의심이 무서운 것이다. 원래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이미 절반이 있는 상태에서 그 절반까지 원래 없었음을 입증해야만 한다.


어쩌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일들까지도 마치 사실을 증명하는 단서처럼 여겨진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고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미 그곳에 버티고 있는 절반을 완전히 피해가지 못한 탓에 어떻게든 엮이며 아예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의심에는 진실이란 필요 없다. 의심에 대한 확신은 이미 진실 그 자체다. 그럼에도 여전히 완전한 사실로 여기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의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더 확실한, 자신의 의심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들이 필요하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의심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안다. 자신의 의심이 단순한 오해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스스로 충분히 깨닫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번 시작된 의심은 멈출 줄 모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 안에서 멋대로 자라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의심은 사실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의심은 타당한 근거들에 대한 정당한 추론이 되어야만 한다. 사실이어도 문제지만 사실이 아니어도 문제가 된다. 도현우(이선균 분)가 정면으로 아내에게 묻지 못하고 뒤만을 쫓아다니는 이유다. 어떻게든 도망갈 구멍을 만든다.


아내를 의심하면서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기보다 사실이기만을 확인하려 한다.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의 부정은 사실이 아니어야 한다. 아내가 남편인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다는 것은 감히 상상으로라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심이란 한 편으로 지독하게 비틀릴대로 비틀린 자기애의 하나일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의심을 사실로 만들려, 그래서 자신의 의심을 사실로 전제하여 모든 사고와 행동을 이어나간다. 이미 이 단계에 이르면 아내의 부정은 그리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아내 정수연(송지효 분)의 무심할 정도로 태연한 표정과 일상적인 행동들이 그래서 극적으로 대비를 이루게 된다.


과연 아내는 진짜 바람을 핀 것인가. 아니면 단지 남편 도현우의 혼자만의 오해인 것인가. 그것만으로는 재미가 없으니 약간의 양념을 더한다. 아내가 바람피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도현우의 옆에 역시 아내로부터 바람피고 있다고 의심받고 있으면서도 절묘하게 의심을 피해 바람을 피우는 친구 최윤기(김희원 분)가 있다. 도현우의 의심을 최윤기가 사실로 만든다. 최윤기가 보여주는 사실들이 도현우의 의심을 뒷받침해준다. 최윤기는 불륜을 저지르고 아내 은아라(예지원 분)가 그를 의심하면서도 번번히 놓치고 만다. 불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불륜의 동기나 유형, 방법, 정도, 혹은 그에 대한 남녀간에 서로 다른 판단과 이해까지. 사방이 불륜이다. 도현우가 아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뜻밖에 아내 정수연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너무나 한결같다. 그래서 혹시나 더 큰 반전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가 짓궂은 상상도 해본다. 시청자가 보기에는 너무나 아무일 없을 것 같은 한결같은 모습이 처절할 정도로 한심한 남편 도현우의 의심과 대비된다. 아내는 여전히 가정에 충실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있지만 작은 의심의 불씨를 다스리지 못해 여전히 그런 아내를 의심하고 불신하고 확인하려 한다.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면서도 그것은 단지 아내의 부정을 지금이라도 멈추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인간은 어디까지 한심해질 수 있을까. 역시나 기대한대로 이선균의 원맨드라마였다.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한 남자의 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내 정수연이 실제 바람을 폈는가는 지금으로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내가 실제 바람을 피게 될 것인가도 역시 지금에 와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도현우가 올린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글에 달린 댓글들과 같다. 진지하게 도현우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조언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그저 남의 일로 잠시의 흥미거리로만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과연 아내의 부정에 대한 자신의 의심에 대해 남편 도현우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아내의 부정을 확신케 하는 여러 근거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남편 도현우가 시작이며 끝이다. 드라마가 이선균의 드라마인 이유다.


과연 불륜의 기준은 어디까지인가. 어디서부터는 불륜이고 어디까지는 아닌 것인가. 안준영(이상엽 분)과 권보영(보아 분)의 미묘한 관계를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아직까지 권보영은 안준영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다. 권보영에게 거의 노골적으로 접근하면서 안준영은 도현우의 아내 정수연의 불륜에 분노하여 눈물까지 흘린다. 인간은 원래 모순된 존재다. 이제 고작 하루 도현우가 마침내 확인하게 되는 아내의 진실은 무엇인가.


대책없이 떠들어대는 수다와 같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인터넷 댓글들과 같다.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다. 오다가다 스치며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단지 말들이다. 그러나 넘치는 말들이 어느새 사실로 바뀐다. 사실 없이도 일단 믿으면 진실이 된다. 혼자서 떠들고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결론까지 내린다. 묘하게 부조리한데 사실적이다. 인간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