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는 의식 - 재미있게 창작물을 즐기기!
대부분 허구인 창작물을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한 가지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바로 자발적인 동의라 하는 것이다. 허구인 창작물 안의 모든 설정과 상황들을 실제라 인정하고 그 안에 자신을 옮겨 놓는다.
우주에는 그냥 제국이 있는 것이다. 포스라는 특별한 힘을 가진 제다이 역시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먼 우주 어딘가에서 실제 공화국과 제국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재미있는 것이다. 실제 존재하는 제국이고, 포스이고, 제다이며, 실제 진행중인 제국군과 공화군과의 전쟁이다. 만일 이 모든 것들이 단지 거짓이고 가짜라면 무엇 때문에 그리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하며 영화을 보거나 하겠는가. 사실이 아닌데 누가 죽거나 사는 일에 그리 안달하며 눈물까지 흘리겠는가.
좀비란 무엇인가. 좀비는 과연 어떻게 생겨나는가. 하지만 그냥 좀비는 있는 것이다. 좀비는 어떻게든 생겨나는 것이다. 좀비가 발생한 상황 자체가 중요하다. 좀비라는 존재만 인정한다면 좀비가 나타난 급박한 상황에서의 이야기에도 동참할 수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좀비에 쫓겨야만 하고, 그리고 좀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런 행동들을 보여야 하는가. 그런데 사실 좀비물의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굳이 좀비영화나 드라마르 보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래 영화나 드라마란 그런 것이다.
어차피 허구다. 어차피 가짜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같은 가짜들은 허구로써 실재하게 된다. 당연히 영화니까 드라마니까 영화와 드라마 안에서 그것들을 실제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렇게 인정해 버린다. 그 상태에서 나머지 개연성이나 재미등을 추구하게 된다. 가끔 제법 영화 좀 본다고 하는 사람들의 비평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째서 그런 것들이 궁금하지? 대부분의 관객들은 어차피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을 사소한 부분들일 텐데.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필요없을 또 한 가지 동의가 바로 재미에 대한 동의다. 스스로 작품을 재미있다고 여기고 재미있는 이유들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필요없다 말하는 것은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작품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좀비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좀비와 관련한 사소한 부분들에서 충분한 만족과 재미를 누리는 것이 그런 대표적인 예다. 좀비가 나오니까 재미있다. 총싸움이 나오니까 재미있다. 지능적인 머리싸움이 재미있다. 재미있는 이유가 있으면 작품은 재미있는 것이다.
일단 드라마를 보려 TV앞에 앉은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은 지금부터 자신이 보게 될 드라마가 재미있을 것을 전제로 설레며 기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홍보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기대를 키우는 장치이며 과정이다. 이러이러한 부분들이 관객을 재미있게 만들 것이다. 동의한다면 그런 장면이나 내용이 있다는 것만으로 작품은 재미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까지의 과정이나 그 뒤의 내용들도 분명히 재미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이유에서 대중적인 작품들은 통속성을 띄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것에 기대를 가지기란 거의 쉽지 않다.
원래 취향에 맞는 작품이라면야 사실 이런 과정들은 그다지 필요가 없다. 이미 모든 동의가 사전에 완료되어 있다. 문제는 미처 그같은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취향 밖의 작품들이다. 물론 보지 않으면 된다. 그냥 단순히 감상하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그러면 된다. 실제 굳이 리뷰를 쓰지 않는 만화나 소설, 영화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주 편협한 기준을 적용하며 제한된 작품들만을 즐긴다. 문제는 원래 취향대로라면 그다지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작품들에 대해서다. 그래서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 다른 사람의 리뷰를 보면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는 하는 이유다. 단순한 감상과 리뷰는 다르다. 더구나 반복해서 리뷰를 올리며 어느새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대를 받고 있는 입장이라면 그 기대를 충족할 책임이 자연스럽게 지워지게 된다. 최대한 작품이 가지는 재미를, 가능성과 기대를 찾아내어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인간이 절대 완벽할 수 없다. 다만 그렇더라도 이 작품에는 어떤 장점이 있고 무엇이 이 작품을 재미있게 만들고 어찌되었든 간에 그래서 작품은 재미있다. 재미없으면 쓰지 않는 이유가 그래서다. 일단 재미없다 여기기 시작하면 리뷰같은 건 쓸 수 없다.
리뷰를 위해서는 그래서 많은 사전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어떻게든 재미있으려. 무조건 재미있으려.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한다. 그래서 상당한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한다. 그래서 컨디션에 따라 때로 그런 과정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때가 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나기 시작한다. 일종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을 텐데 평소 재미있는 이유만을 찾으며 보던 반동으로 가장 재미없는 부분들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 상태에서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모든 작품은 재미있다. 모든 작품에는 그 작품만의 개성과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비평가의 책임이며 의무다.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취향을 넘어 보다 객관적으로 재미 그 자체를 분석해낼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쉽지 않다. 그러나 최대한 근사치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드라마 보는 것이 마냥 재미있지만 않다. 그런데도 재미있게 봐야만 한다.
아무튼 그래서 보면 드라마의 첫리뷰는 거의 어떻게 드라마를 재미있게 볼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의식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이 드라마는 어쩌면 이런 드라마일 것이다. 이런 내용일 것이고, 이런 점이 재미의 포인트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거기서부터 실패하면 답이 없는 것이다. 드라마가 나쁜 것이 아니라 내가 실패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드라마는 재미있다. 단지 그 재미의 종류와 타겟이 다를 뿐이다. 내가 재미없는 것 뿐이다.
며칠 정부터 천룡팔부2003을 보기 시작했다. 순전히 장흔 때문이다. 후궁견환전에서 보고 매료되어 찾다가 이 드라마까지 오게 되었다. 시작하기까지 무려 나흘의 시간이 걸렸다. 이제 2회다. 드라마에 적응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이제부터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렇게까지 하며 봐야 하는가 싶지만, 하지만 훨씬 어렸을 적의 장흔을 보고 싶은 욕심이 컸다. 같은 맥략이다. 재미있게 보는 것에도 스킬이 필요하다.
요즘 컨디션이 영 좋지 못하다. 기분도 많이 다운되어 있다. 하필 가장 안좋을 때 걸렸다. 도저히 다음으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런 때는 그냥 쉰다. 드라마를 보는 것도 꽤나 힘이 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