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전해지지 않는 진심, 단절과 오해의 이유
깨진 거울로는 얼굴을 바로 비춰 볼 수 없다. 깨진 유리 너머로는 마찬가지로 깨지고 찢긴 모습들만 보일 뿐이다. 제대로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이유다. 자꾸만 꼬이고 일그러지고 마는 이유다. 그만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두 사람 사이에는 너무나 큰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걱정돼서다. 고마워서다. 미안해서다. 일때문에 바쁘다면서 아들 준수를 위해 끝내 정신없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준수를 봐주던 같은 유치원 엄마들을 위해 간식까지 사오고 있었다. 자신의 일로 인해 준수를 맡겨야 했던 탓에 비굴할 정도로 자신을 낮춰야만 했다. 엄마들 사이의 네트워크에서 소외되면 준수에게까지 피해가 돌아간다. 아는데, 그런데 아무리 알아도 차마 눈앞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다.
분명 아내 정수연(송지효 분)도 남편 도현우(이선균 분)와 몇 번이나 대화를 해보려 시도하고 있었다. 물론 도현우 역시 어떻게든 아내와 대화를 해보려 노력하던 중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의 그같은 시도와 노력은 서로에게 제대로 가서 닿지 못했다. 가장 첫번째 원인은 역시 아내의 외도로 인해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모두 있는대로 비틀려버린 도현우 자신이었다. 아내의 말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고, 속엣말로 있는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런 남편을 대화를 시도하면서도 정작 정수연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있다.
이만큼 자기가 힘들다. 이만큼 자기가 힘드니 제발 좀 들어주고 알아달라. 원망한다. 그리고 체념한다.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들어주기를 바랐다면 먼저 소리내어 말했어야 했다. 알아주기를 바랐다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자신이 먼저 사실을 이야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알아주었어야 했다. 말하지 않아도 먼저 들어주었어야만 했다. 자기가 피해자다. 자기만 희생자다. 본전생각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솔직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대에게는 자신을 이해할 당위가 있고 책임이 있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상대이고 자신은 그저 그 답을 채점할 뿐이다.
서로가 자기의 입장만 생각한다. 오로지 자기가 선 위치에서 상대를 대상으로만 본다.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되어지기를 바란다. 공감하기보다는 공감되어지기를 바란다. 어쩌면 서로에게 너무 오래 익숙해져 있던 때문인지 모른다. 서로에 대해 이미 많이 알고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벌써 알아버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보다 오만한 것은 없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부터가 오해의 시작인 경우가 많다. 어차피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도 서로를 완전히 알거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전제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고 솔직하지 못한 진심은 안에서 곪고 썩어 파국을 만든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바람핀 며느리를 이해한다. 자기 역시 누군가의 며느리이고 아내이고 엄마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들이키는 쓴 소주잔이 그것을 말해준다. 며느리를 위로하며 하는 구구한 이야기들은 곧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다. 뜻밖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시어머니로부터 위로받고 처음으로 정수연은 눈물을 보이고 만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위해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시어머니의 위로가 오히려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키던 정수연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자신과 외도를 한 상대남자의 아내는 잔인할 정도로 친절하게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었다. 감히 변명조차 - 아니 한 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죄인이 되어 모든 수모와 멸시를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 남편의 무심하고 가혹한 한 마디는 그녀가 애써 다잡고 있던 자신을 놓아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미 자신은 자격을 잃어 버렸다. 그에게 자신은 전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동안 자신이 악착같이 버티며 지키려 했던 그것들을 영영 되찾지 못하게 되었다. 차라리 포기하면 오히려 편해진다.
주위사람들이 문제다. 하필 조언을 구한 것이 인터넷 게시판이다. 온갖 무책임한 말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쏟아진다. 스스로 냉정해질 수 있는 틈을 주지 않는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고 입장을 정할 수 있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전혀 상관없는 남들이 하는 말이 그 빈 공간에 넘치고 있다. 그저 남자가 아니다. 그저 남편이 아니다. 개인 도현우이고, 개인 정수연의 남편이다. 자신들의 아이의 아빠고 엄마다. 결국 어떤 충고든 조언이든 거의가 자기 입장에서 자기가 하는 말들인 것이다. 거기서부터 실패하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금이 간 유리에 모래알을 던져 끝내 와장창 깨지도록 만들고 있다.
혼자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 편으로 누군가의 진실한 조언도 필요하기는 하다. 안준영(이상엽 분)이 딱 그 반대편에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삭여야만 했다. 그래도 최소한 아내와의 관계는 나름대로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정리가 된 듯하다. 하지만 혼자서 내린 결론이라 아직 원래의 정상으로 돌아가기에는 갈 길이 멀다. 티격태격 권보영(보아 분)과의 관계가 대놓고 단내를 풍긴다.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모르는 사이 자기 집에 들어온 것이 그렇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각각 이미 실패를 경험한 두 사람의 상처가 아직 서로에게 벽이 된다.
진짜 이런 것이 미덕이다. 도현우와 정수연의 사이는 한없이 심각하다. 보고 있는 자신마저 한없이 땅을 뚫고 들어갈 만큼 무겁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작 주변의 이야기는 한없이 가볍고 즐겁다. 연출까지 장난스럽다. 안준영의 집에서 결혼한 안준영이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래 확인하고 있던 도현우와 의도된 안준영의 비밀스런 모습이 상당히 스릴러적인 느낌마저 준다. 한없이 들뜨며 웃다가 다시 한없이 심각해지고 무거워진다. 도현우와 정수연 사이의 이야기에 가라앉았다가 주위의 이야기에 즐거워진다. 롤러코스터같다. 그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들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본전을 생각하면 거래같은 건 할 수 없다. 조금은 손해보고 사고 손해보며 팔아야 거래라는 것도 성립된다. 자기만 힘든 것이 아니다. 자기만 아픈 것도 아니다. 하긴 상간남의 아내는 자기가 아픈 만큼 상대도 아프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아 문제였다. 그러니까 바람을 핀 남편을 용서하면서 남편의 바람상대에게 도망칠수도 없는 가혹하고 잔인한 고통을 돌려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상대가 상처입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작 그것을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단절되는 이유다. 왜곡되는 이유다. 모든 것의 이유다.
물론 말로는 모든 것이 너무 쉽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그저 단순하기만 하다. 현실은 그보다 복잡하고 가혹하다. 남의 일처럼 자신의 이야기만을 쏟아내는 군상들의 모습이 그런 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무엇보다 진짜는 자신의 일이다. 다음주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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