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 - 선택의 순간, 대체 내가 왜...?
결국 답은 자기 안에 있었다. 여전히 윤서정(서현진 분)은 강동주(유연석 분)를 마음에 두고 있고, 강동주 또한 자기가 왜 의사가 되고자 했는지 초심을 완전히 잊지 않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다. 사람의 문제는 결국 사람 안에 그 답이 숨어 있다. 단지 그 답을 찾아서 끄집어내는 과정이 어려울 뿐이다. 자기를 이기고 자기를 부숴야만 한다.
어쩌면 전형적이다. 그래서 더 정교하고 절묘하다. 엘리트다. 최소한 의사로서 그동안 한 번도 실패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자기가 거둔 성공에 자기가 갇히고 만다. 자기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알고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인정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은 존재할 수 있다. 때로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넘어선 새로운 것들에 대해 전투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그것이다. 자기가 인정할 수 없다면 세상에 존재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마저 너무나 여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가 아니었을까. 어느 늙은 노부부의 아들을 끝내 살리지 못하고 그 사실을 전하면서 강동주는 계속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여기에 있는가. 자신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차라리 출세를 바란다면 더 쉽다. 출세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면 더 홀가분하다. 진심에 되면 무겁다. 자신이 의사로서 끝내 살리지 못한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이 너무 무섭다. 하필 보청기를 집에 두고 온 탓에 강동주는 노부부에게 몇 번이나 더 큰 목소리로 아들을 살리지 못한 사실을 전해야만 했었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며 강동주는 울고 있었다.
물론 처음 동기는 복수심이었다. 저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 저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누리며 더 나은 삶을 살겠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정확히 먼저 사람이 있으면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되어 간다. 솔직하다는 것은 당당하다는 뜻이다. 굳이 감추거나 속일 필요 없이 당당히 드러내도 좋을 만큼 지금의 자신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선량하다기보다는 정의롭다. 단지 다른 사람에게 맞추기보다 철저히 자신의 위치와 입장에 충실하다. 직업이 의사라면 역시 그런 본성 역시 의사인 자신에 맞춰지게 된다. 그러면 의사인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하는가.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동안 일부러 회피해 왔던 것인지 모른다. 진짜 의사가 되려 한다면 처음 자신이 의사가 되고자 결심하면서 바랐던 출세와는 한참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기로 악착같이 부여잡으려 했다. 어울리지 않게 지위와 권력에 집착하는 속물이 되려 했다. 지난 2회에서 병원장에게 난을 선물하라는 선배의 말에 그런 건 모른다며 당황하던 모습 그대로다. 항상 선택은 분명했다. 아마 돌담병원으로 오게 된 계기가 되었던 그 수술도 하필 병원장 도윤완(최진호 분)이 직접 나서서 도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난마저 팽개치고 윤서정을 수술했고, 과장이 일부러 마련한 병원장과의 만남도 환자치료로 대신했다. 단지 그런 자신이 자신에게도 낯설어서 당황하고 있을 뿐이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더 잘 속이는 법이다.
답을 알면서도 고민한다. 어떤 답을 써내야 하는지 알면서도 끝끝내 갈등한다. 자기를 향해 거짓말을 한다. 그런 자신에게 모른 척 속아주기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같은 경계에서 답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틀린 답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그곳에서 윤서정을 만났던 것이었다. 윤서정 역시 아무리 속이고 도망치려 해도 더이상 속일수도 도망칠수도 없는 당사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꺼풀 껍질이 벗겨졌을 때 드러난 속살은 한 번도 빛이라고는 보지 못한 듯 새하얗기만 하다. 그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려갈 것인가는 이제 그들의 스승이랄 수 있는 김사부의 몫이다. 그들은 과연 어떤 자신을 만들어가게 될까?
짐짓 강동주를 거부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윤서정의 드러난 맨발을 이불로 가려주는 장면에서 상당히 설렜다. 정확히 이불속에서 자신의 발을 가려주는 강동주의 행동을 느끼는 윤서정의 모습을 보면서였다. 조마조마했다. 마치 둑이 터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긴장감 같은 것일 게다. 역시 답을 알고 있다. 자신이 그 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마저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인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리는 감정이 경계를 이루며 주체할 수 없이 들끓는다. 아마 무척 간지러웠을 것이다. 딱 이 선만 넘어서면 확실해질 것 같은 기대같은 것이었을 게다. 마음은 전해지는데 전해지지 않는다.
애닲은 사람들이다. 어쩌면 김사부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알면서도 안다는 사실을 인정해서는 안된다. 인정할 수 없다는 자신의 결론과 판단에 집착한다. 아직 약하기 때문이다. 여린 속살을 있는대로 드러내기에는 그들은 아직 너무 약한 존재들이다. 아직 의사로서도 미숙하기에 자신의 미숙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만일 자기가 아니었다면. 자기가 아닌 다른 의사였다면. 자기가 지금보다 더 실력있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면. 하지만 조금 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을 가지게 된다면 의사로서 자기가 살릴 수 없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될 지 모른다. 굳이 쓸데없는 핑계로 자신을 속이며 위로할 필요 없다.
자기가 진심으로 강동주를 사랑하는가 확신이 없다. 이마저도 잠시 스쳐지나는 순간의 설렘이나 두근거림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만일 사랑이 진짜라면 결국 언젠가 끝날 사랑일지라도 그 순간들이 의미없지는 않다. 문선생이 그렇게 아무말도 못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서는 안되었다. 문선생으로부터 들었어야 했을 말들을 듣지 못한 채 그를 떠나보내고 말았다. 이제 그 말을 스스로 자기에게서 찾아 자기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다행히 강동주라는 이 어린 녀석은 말도 에두르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직설로써 자신을 두드린다. 그때까지는 의사로서 함께한다. 의사로서 함께 있을 수 있다.
한 편으로 그래서 공교롭다. 문선생을 살펴보라 말했을 때 윤서정은 의사였다. 강동주는 남자였다. 윤서정의 상처를 살피면서 강동주는 의사로서 말하고 있었다. 윤서정은 여자로서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 어느것도 완전하지 않다. 미숙한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돌담병원은 그 모태와 같다. 담금질하고 단련한다. 아직은 껍질이 완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시작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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