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 젊은 강동주의 외침과 김사부의 답, 어른이 필요한 이유

까칠부 2016. 11. 16. 04:39

그래서 어른이 필요하다. 물론 세상을 이 모양으로 만든 것은 바로 어른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바로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먼저 자신부터 바꾸라 말하지만 혼자서만 바뀐다고 어떻게 될 만큼 만만한 세상이 아니다. 실력부터 쌓으라 말해도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이끌어주지도 않는데 혼자서 원하는 만큼 실력을 쌓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구조화된 세상에서 독불장군이란 없다.


드라마를 보면서 필자가 다 울컥하고 있었다. 당신이 뭔데 그리 잘 아는가. 얼마나 많이 알아서 그런 말들을 내뱉는 것인가. 김사부(한석규 분)가 강동주(유연석 분)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닮았다. 강동주가 그동안 자신이 거둔 알량한 성공에 갇혀 있듯 김사부 역시 다른 많은 어른들처럼 젊은 강동주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온 자신의 경험에 기대어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고 있었다. 각자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독립된 존재일 텐데 철저히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일반화하고 유형화하여 일방적으로 정의해 버린다. 일단 결론부터 내리고 나면 더이상 상대에게 다른 여지란 남아 있지 않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의 외과장이었다. 자신에게 지시를 내리고 처분도 내릴 수 있는 상사였다. 그런데 철저히 무시하며 거부하고 있었다.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모욕만 주고 있었다. 일개 전문의인 강동주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강동주가 처음 병원장 도윤완(최진호 분)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병원장의 눈밖에 나고 병원에 남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본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애써주던 외과장이 이제는 끝이라 선언했을 때는 차라리 더이상 아무 미련없이 홀가분하게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저들의 결정이 곧 자신의 미래였다. 저들의 판단이 바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었다. 자신의 의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쓰레기라 한다면 자신은 쓰레기가 되는 것이었다. 대단한 가능성을 가진 유망주라 여긴다면 자신은 더 높은 곳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김사부가 그렇게 단정지은 이상 돌담병원에서의 자신의 미래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너무 노골적이어서 화가 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또 저 높은 곳에서 자신의 운명마저 희롱하며 마음대로 결정하고 만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겪어왔던 일들이 한순간에 터져나오고 만다. 강동주가 사직서를 쓰는 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다. 어쩌면 지극히 냉정한 판단에 의한 합리적인 체념이다.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생각했더라도 절대 인정하는 법이 없다. 자기만의 합리화를 위한 논리가 있다. 결국 주위의 설득을 받아들여 윤서정(서현진 분)의 잔류를 허락하면서도 끝끝내 강동주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려 애쓰는 모습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나마 다른 점이라면 강동주의 갑작스럽고 무례하기까지 한 질문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답을 들려주려 하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솔직하지 못한 것은 지켜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신에게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기에 아주 작은 허물도 용납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갈 곳을 잃은 강동주에게는 힘이 된다. 한창 어디로 갈 지도 모르고 방황하던 강동주에게 길을 제시해 주었던 것도 바로 김사부 - 본명 부용주였다.


조금은 뜬금없다 생각했다. 그만큼 김사부를 질타하는 강동주의 항변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전후과정이 생략되었다. 중간단계도 적당히 건너뛰었다. 하지만 이로써 김사부와 화해할 수 있는 다리가 놓여졌다. 원래 답이 명확한 문제는 풀라고 내는 것이다. 강동주로 하여금 의사로서 살아남기 위해 그토록 비굴하고 비루한 선택을 해야만 하도록 만들었던 기성세대로써 그를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기성세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말이지만 직접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자신이 들려준 답 그대로 강동주를 이끌기 위해 그의 손을 잡는다. 강동주가 먼저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때처럼. 다름아닌 김사부 - 아니 부용주가 있었기에 그는 혼란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젊다.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빠르게 다시 아문다. 어느새 벌써 자신의 답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 답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윤서정이 강동주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는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 겨우 한 걸음을 내딛었다. 자신의 열세를 인정한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분명히한다. 강동주도 김사부에게 묻고 있었다. 자신은 어떤 의사가 되고자 하는가. 김사부에게 어떤 의사냐고 물었던 것도 어쩌면 김사부에게 자신이 찾던 문제의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과 기대 때문이었다. 필요한 의사가 되라. 회차를 본다. 벌써 4회만에 주인공들은 출발선에 서고 있었다. 정신없이 몰아쳐간다.


강동주에게 들려준 답은 김사부 자신을 위한 답이기도 했었다. 신회장(주현 분)의 수술요구를 과연 의사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괜한 허세이기도 했다. 자신의 실력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다면 다른 일이 없는 이상 맡아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 순간 김사부 역시 신회장에게서 그의 배경을 보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문제인 것인가. 필요한 의사라는 것은 가치판단을 배제한 기능을 말하는 것이었다. 환자를 위해 필요하다면 의사인 자신은 존재해야만 한다. 신회장에게 내건 조건은 병원과 병원을 찾게 될 환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김사부도 조금씩 껍질을 벗는다.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울컥울컥 하면서 그 순간 매우 집중하며 보고 있었다. 젊은이가 비겁하고 비굴한 것은 젊은이의 탓이 아니다. 뒷세대가 한심하고 무력한 것은 기성세대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근엄하게 비웃으며 꾸짖는다. 현실의 우열이 단지 그것을 애써 참아내도록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인정해서가 아니다.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거스를 힘이 젊은 세대에게는 없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아쉽다. 약간 거칠었다. 필요한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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