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모두 가운데 하나, 이해를 거부당하다
아무리 단단한 쇠도 계속해서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쉽게 바스라져 버린다. 균열이 보이기 전까지 모든 건물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게만 보인다. 임계점이라 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자신조차 알지 못하던 한계를 자신도 모르게 넘어서고 말았다. 한 마디로 지친 것이다.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그저 자신이 텅 비어 버린다.
차마 떠올리는 것마저 두렵고 지겨워진다. 다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몸서리쳐질 만큼 끔찍하게 여겨진다. 노래가사에도 나온다. 사랑이란 것도 언젠가 지겨워지는 순간이 온다.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게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작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움츠러드는 자신을 느낀다. 더이상 전과 같이 힘들고 고단한 시간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자기에 대한 불신이다. 이제 자신은 전과 같이 그를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자신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남편 도현우(이선균 분)와 화해하고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이전의 시간들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또다시 일로써도 엄마로써도 아내로써도 완벽한 자신을 위해 발버둥쳐야만 한다. 없는 시간을 쪼개고, 하나밖에 없는 자신까지 나누어가며 완벽한 자신을 연기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만큼 남편과 부부로서 함께한 시간들이 끔찍하도록 두렵고 혐오스럽다. 남편도 사랑하고 아들도 사랑하지만 그러나 그 시절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힘겹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남편으로부터 돌아온 무심한 대꾸는 그같은 그녀의 불안에 더욱 불을 지피고 만다.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위로해주기를 바랐다. 다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해주기를 바랐다. 자신의 방황도 고민도 이제부터는 함께 해주기를. 모든 인간이 강하지는 않다. 모든 개인이 같은 조건 같은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니다. 남들도 그런다. 모두가 그런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 남편 도현우에게 정수연(송지효 분) 자신이란 그저 남들과 똑같은 하나에 불과하다. 유일한 특별한 개성을 지닌 하나가 아닌 여럿 가운데 하나다. 그들처럼 그렇게 자신도 견디며 참으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냥 핑계였다. 무어라도 남편에게 원망의 말을 던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정수연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다. 설사 그 원망들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만큼 지쳐있는 상태에서 여유라고는 없이 원초적으로 감정이 반응해버린 결과였는지 모른다. 결국은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알아주지 않은 것이다.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이다. 잘 지내고 있다 스스로 설득하고 납득시키고 있었지만 균열은 안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다. 숨고 쉽다. 쉬고 싶다. 남편에게 오히려 이혼서류를 남기고 정수연은 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깊은 단잠에 빠져든다.
그러니까 남편 도현우는 지금이라도 그런 아내 정수연의 사정과 처지를 알아주고 이해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부부인 것이다. 그러지 못할 것이라면 더이상 부부관계를 이어가는 의미가 없다. 각자 자기 사정이 있다.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다. 충분히 묻고 듣고 이해하고 교감한다. 오래전에는 그랬을 것이다. 아직 사랑하던 시절, 아직 부부가 되기 전 서로 사귀던 시절에는 그런 노력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제는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는 관성이 더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해하기보다 이해받고 싶어진다. 나를 이해시켜라. 나를 이해하라. 내가 이해한다는 말은 없다.
진짜 위기다. 필사적인 용기를 쥐어짜 털어놓은 이야기다. 차라리 이혼서류는 쉽다. 그것은 도망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믿고 정면으로 자신의 속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거부당한다. 정수연이 저지른 외도라는 잘못을 감안하더라도 더이상의 부부관계를 이어가기에는 그 사이에 패인 골이 너무 넓고 깊다. 잘못 이해하고 있다. 원래의 관계로 다시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일어난 사실들을 전제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착각 속에 빠져 있다. 다시 원래의 행복한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도현우의 오판이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 모르는 기회를 걷어차 버린다.
인터넷 게시물을 주소재로 사용하는 만큼 당연히 인터넷을 이용하는 개인들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누군가는 단순히 흥밋거리로, 누군가는 단지 배설의 수단으로, 누군가는 현실도피를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는 현실에서 찾지 못할 무언가를 그곳에서 찾는다. 단지 수많은 댓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참치마요'를 두고서 댓글 가운데 대립이 일어난다. 참치마요를 신성시하며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마저 나타난다. 네트워크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현실로 끌고 오기도 한다. 도현우가 올린 게시물을 둘러싼 군상들의 다양한 반응과 면면을 지켜보는 것도 한 가지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원래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기도 할까.
조금은 무리수였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외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에게 한 번 쯤 마음이 흔들려 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일정한 선을 넘지 않은 채 원래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결국 그 선을 넘는가 아닌가.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정수연의 마음의 끈은 끊어져 있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했을 때 다가갈 거리도 보이기 시작한다.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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