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 - 이미 한 사람의 의사로써, 강동주의 자각과 성장
어째서 김사부(한석규 분)는 그토록 강동주(유연석 분)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일까. 물론 아직 미숙한 젊은이다. 기성세대로써 그런 젊은 세대를 책임감을 가지고 애정으로 지켜봐야 하는 의무 또한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강동주는 의사였다.
환자와 마주한 순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수술실에서 집도의는 한 사람 뿐이었다. 환자에 대한 모든 판단도 결정도 오로지 집도의가 내리는 것이었다. 환자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오롯이 집도의인 자신의 입과 손끝에 달려 있었다. 자신이 살리지 못하면 환자는 죽는다. 자신이 살리지 않아도 환자는 죽는다. 살리고자 하는 의지와 실력마저 받쳐준다면 어쩌면 죽을 환자도 살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순간에마저 나이와 경험을 앞세워 뒤로 물러나는 것이 가능한가. 누군가 그것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어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인류 역사에서 다 자란 자식이 여전히 부모와 함께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자체가 아주 최근에서야 나타난 예외적인 관습에 지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미 다 자란 자식들은 부모의 곁을 떠나 알아서 제 살 길을 찾아나서야만 했었다. 여전히 같은 울타리 안에 머물더라도 부모의 도움 없이 당당한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써 자기의 역할을 책임지고 해내야만 했다. 아직 아무것도 없던 가혹한 환경에서 구성원 하나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집단은 자칫 와해될 수 있었다. 그것은 부모라도 감히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자신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져야만 했다.
어째서 유연석이었는가 새삼 깨닫게 된다. 김사부의 정체가 트리플보더의 전설적인 의사 부용주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강동주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김사부로부터 배울 것이다. 부용주가 자신을 이끌어줄 것이다.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그보다는 잃었던 부모의 울타리를 되찾은 마냥 설레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순수하기만 한 존재인가. 부모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아이들은 거짓말을 한다. 혹시라도 미움받을까 서툰 거짓말로 부모를 속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아이들의 서툴고 어설픈 교활함을 닮았는지 모른다. 나름대로 못되게 머리도 굴리고 계산도 해 보지만 그래봐야 어른들이 보기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뻔한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 선한 얼구로 독한 말들을 내뱉고, 순진해 보이는 눈빛으로 추악한 욕망들을 쫓으려 한다. 그러나 진짜들에 비하면 그저 한숨부터 나오는 수준이다. 거의 대부분 주변사람들에게 읽힌다. 그만큼 야무지지 못하고 실제로 독하지도 못하다. 답답할 정도로 어눌한 타산과 이기가 그래서 드라마속 강동주를 닮은 듯하다. 드라마의 강동주가 배우 유연석을 닮았다. 의도한 것이라면 완벽하다. 강동주를 볼 때마다 느끼는 막힌 듯한 답답함은 그 때문이다.
아무튼 나이만 먹는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는 먹었는데 여전히 아이인 채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우가 세상에는 오히려 더 많다. 단지 부모가 아닌 다른 것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부모 만큼이나 크고 단단하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이다. 강동주가 처음 집착하고 있던 그것이다. 최고의 의사가 되기 위해서. 최고의 시설과 최고의 인력과 최고의 시스템이 갖춰진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의사가 되어 마음껏 자기의 환자들을 진료하기 위해서. 강동주가 바랐던 것도 의사인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엇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있어야지만 비로소 의사인 강동주는 안전해질 수 있었다. 그래야지만 의사로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김사부의 정체를 알고 강동주가 너무나 쉽게 마음을 바꾸게 된 이유였다. 강동주가 거대병원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은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자신이 바라는 최고의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목표로 한 진짜 최고의 의사가 눈앞에 있었다. 거대병원보다 더 자신을 최고의 의사로 만들어 줄 사람이 자신의 가까이에 있었다. 그래서 순수하다는 것이다. 그의 욕망과 이기는 말그대로 아이처럼 순수하기만 하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처음 윤서정(서현진 분)과 만났을 때도 그는 돌려말하지 않고 바로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김사부는 그런 강동주를 억지로 등떠밀어 위급한 환자 앞에 세운 것이었다. 그런 한가한 생각이나 하고 있기에는 강동주 자신이 벌써 의사가 되어 있었다.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이 이미 자신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 시험이기도 했다. 과연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절반은 합력이고 절반은 불합격이다. 그래서 합격이다. 수술실에서 나오면 의사가 강동주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손을 잡아줄 수 있고 잘못하면 채찍질도 해줄 수 있다. 이제는 아이로 돌아가도 좋다. 자신도 어른으로 돌아간다.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들을 손잡아 이끌며 그들의 미숙함을 가르쳐서 일깨워준다. 어른이 된다.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의 무게를 깨닫는다. 자신만이 할 수 없다. 자신 말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모두가 자신만 바라본다. 처음으로 수술도중 환자를 사망케 한 트라우마를 바로 이겨낸다. 의사로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비로소 온전히 받아들인다. 윤서정이 부러워 할 만하다. 비로소 처음으로 김사부가 강동주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오로지 의사로써 환자만을 살리려 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 순간 그는 의사가 아닌 그 무엇도 아니었었다.
한 편으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다. 의사인데도 정작 의사가 아닌 다른 것들에만 관심을 보인다. 그 다른 것들이 의사인 자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도윤완(최진호 분)이 김사부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는 이유였다. 정확히 정반대편에 있었다. 외과장 송현철(장혁진 분)이야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만일 김사부가 도윤완보다 더 힘이 셌다면 그는 기꺼이 김사부를 따르는 쪽에 섰을 것이다.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그리고 서로 다른 길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서로 다른 의미로 의사로써 최고의 자리에 오른 부용주와 도윤완이었기에 그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도윤완의 일방적인 감정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정리된다. 이름마저 버렸어도 김사부는 여전히 의사지만 병원장이 아니게 되었을 때 도윤완에게는 무엇이 남게 될까.
강동주가 김사부에게로 보내진 이유였다. 벌써 오래전부터 윤서정은 김사부의 곁에 있었다. 마치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쫓겨나 거친 세상으로 나오는 탄생의 우화와도 같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험한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 자신을 이끌어줄 누군가를 만난다. 이미 자신이 어른이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어른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언제까지나 아이인 채일수는 없다. 김사부는 차라리 강동주에게 아버지와도 같다. 그를 성장케 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난다. 도저히 구제불능인 가짜에서 진짜로 거듭난다. 시련을 거친다. 김사부의 방식은 거칠다. 주위의 도움을 받는다. 아이는 결코 혼자서 자라지 않는다. 운이 좋다. 윤서정은 또다른 운명과 마주하게 된 것 같다. 이래저래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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