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화해의 순간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다
그렇지!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면 절대 빠질 수 없다. 개자식들이다. 뭐라도 되는 양 남의 신상을 털고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온갖 폭언을 일삼는다. 그래도 된다. 그냥 인터넷이니까. 인터넷에 떠도는 그냥 텍스트니까. 자기가 직접 무언가를 하는 것은 없다. 모순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결국 상대에게 고통을 준다.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이 고통을 주어 응징한다. 정의를 실현한다.
원래 무언가를 안다고 자신하는 것부터 무지이고 오만이다. 원래 인간의 지성이란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가까웠었다. 너무 가까워서 서로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했었다. 대학시절 하필 별보기 동아리였던 것도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결혼하고 한동안 함께 별도 보고 다녔지만 언제부터인가 별보는 것도 포기했다. 멀리서 보는 별은 그저 아름답게 반짝일 뿐이지만 가까이서 보는 별까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발에 채이는 돌맹이도 짜증나고, 자꾸만 살을 스치며 지나는 나뭇가지며 풀잎도 성가시고, 벌레라도 돌아다니면 그게 그리 보기 싫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바로 지금 자기고 살고 있는 이 별의 모습인 것을.
어쩌면 평범함을 견디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아내와 같다. 다른 남편과 같다. 자기 역시 수많은 다른 아내와 남편처럼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자기가 자기가 아니게 될지도 모은다는 원초적 두려움이다. 일상에 지치고 자기 자신에 지쳐간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원래 서로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는가를. 서로에게서 어떤 것들을 바라고 있었는가를. 그리고 그를 위해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까지. 오히려 모르고 있었기에 성실했다. 아무것도 모른다 여겼기에 최선을 다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타성이 되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만이 반복되며 서로와 자신에 대해 잊어간다.
용서가 어떻고 아내의 사정이 어떻고 그런 일차원적인 내용이 아니다. 그보다 잠시 멀어져 있음으로써 더욱 절실하게 서로에 대해 느끼게 되는 것이다. 냉정해진다. 최윤기의 아내 은아라가 굳이 최윤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서 여행을 떠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던 허튼 장식들을 모두 치우고 오롯이 냉정한 진실과만 마주하려 한다.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를 이해한다. 그래서 지금 자신에게는 아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말조차 쉽게 내뱉지 못할 만큼 도현우는 신중하다. 차라리 낫다. 섣부르게 용서한다 말하고 결국에 서로의 상처를 들쑤시며 끝없이 수렁으로 빠져드는 커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아내를 여전히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마저도 무모한 만용이고 오만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고직 인터넷에 올라온 그냥 수많은 게시글 가운데 하나다. 한 번 얼굴도 본 적 없고 누군가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런 대수롭지 않은 텍스트 몇 줄에도 사람들은 쉽게 영향을 받고는 한다. 자신의 일상마저 휘둘리고 만다. 결국 이혼은 자기가 하는 것이다. 함께 사는 것도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다. 우상이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광장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우상으로 섬기며 그에 자신을 맡기고자 한다. 인간의 저열한 본능은 이런 곳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하긴 그러니 그런 자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신상을 털고 정의를 빙자한 폭력을 일삼는 이들도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싶다.
사실 너무 늦었다. 자기들만 모르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는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그러내는데 너무 서툴다. 그만큼 상처가 많다. 그 상처로 인해 스스로 움츠러들고 있었다. 진실이 진실로써 전해지지 않는다. 진실을 진실로써 받아들이지 못한다. 불행한 자신을 당연스럽게 여긴다. 그래도 조금은, 아니 한 번은 사랑해도 괜찮지 않을까. 행복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그냥 알아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데도 얼마나 열심이었는지도. 누구를 위한 것이겠는가. 자기와 아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더 쉽게 지쳤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은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보답없는 노력처럼 허무한 것도 없다. 지금 자신은 누구를 위해 이런 힘든 과정들을 견디고 있는가.
또다른 위기의 시작이다. 겨우 해결되는가 싶은 순간 두 사람이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려 한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가치가 없다. 겪을 것들을 모두 겪고 난 다음 남은 진심이 진짜 가치있는 것이다. 아직 두 사람이 견뎌야 할 시련은 더 남아 있다. 그러고서도 두 사람은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랑하기 위해서. 산이 있기에 사람은 그 산을 오른다. 위기가 있기에 그 위기를 겪고 넘어선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