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진짜 위기의 시작, 몸이 마음과 이성을 거부하다
자기를 자기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체가 사실 말도 안되는 착각이다. 자기의 주인은 자신일 텐데 어떻게 자신이 주인인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머리로는 아니라 여겨도 몸이 그렇다 반응한다. 마음은 그렇다고 주장하는데 몸은 아니라며 거부한다. 하다못해 인터넷에 글을 쓸 때도 진심이 아니면 알아서 손가락이 반항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내가 뭘 쓰고 있는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버린다.
인간이란 자체가 원래 그렇게 대놓고 불합리한 존재인 것이다. 남의 일이다. 자기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남의 일을 자기 일인 양 덩달아 상처입고 덩달아 화내다가 덩달아 위로받고는 한다. 그래서 인간은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집단이란 복수이며 단수다. 우리란 그 안에 속한 하나하나이며 한 편으로 그 모두를 아우르는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너와 내가 같고 우리가 같다. 한 번 얼굴도 본 적 없는 사이인데 그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새 서로 편이 되고 서로 응원하게 된다. 우연히 아주 먼 곳에서 만나면 괜히 눈물까지 나려 한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공감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불편하다. 그래서 불만이다. 남의 가정일이다. 남의 부부 사이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남의 일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연출이 절묘하다. 하필 정수연(송지효 분)의 신상을 누군가 공개하려는 직전 조개구이집에서 권작가(보아 분)와 안준영(이상엽 분)은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의기투합하여 합석하게 된다. 이유는 남의 일에 대한 쓸데없는 오지랖과 참견이었다. 마치 자기 일인 양 자기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조언처럼 들려준다. 전혀 모르는 남이 아닌 그 순간 서로의 속내를 주고받는 너와 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너와 내가 되는 순간 우리가 된다. 인터넷도 같지 않을까.
인터넷과 대중의 속성을, 또한 인터넷과 대중이라는 관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정교하게 연출해 보여준다. 한 편으로 아내를 용서하는 도현우(이선균 분)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편으로 도현우의 입장과 상관없이 자기의 판단으로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 속에 아내 정수연의 신상을 추적하여 공개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프로그래머 부부의 도움으로 불룬패치가 있는 곳을 알고 달려가는 도현우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고 있었다. 아무 상관없이 전혀 무심하게 스쳐지나는 그 사람들이 도현우와 함께 분노하고 도현우의 입장에서 함께 용서해주던 그 사람들이었다. 어디에나 있고 또한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언어, 그리고 언어를 매개한 공감이라는 감정이다.
쓰기는 도현우가 썼지만 읽는 것은 어디까지나 수많은 네티즌 자신이었다. 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의 입장에서 도현우의 글을 읽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의 경험에만 비추어 도현우의 글을 이해하고 그에 반응하고 있었다. 공개적인 글이 공적인 대상으로서 책임을 강요당하는 이유다. 그저 개인적인 글이지만 공개적인 장소에 올라오는 순간 단순히 개인의 글로만 끝나지 않는다. 역시 인간의 사회와 관계가 가지는 또 하나 속성이기도 하다. 도현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 수많은 군상이야 말로 이 드라마의 또하나 주인공이 아니었을까. 도현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부정도 저지르는 현실의 이야기들도 그와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다.
드디어 최윤기에게도 응징의 시간이 돌아왔다. 아내 은아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최윤기의 부정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은아라가 평소 하던 말 그대로였다. 부정을 저지를 것이면 들키지 마라. 자기가 알게 하지 마라. 아내인 자신을 두려워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부정보다도 더 큰 죄다. 아내로서 남편으로부터 전혀 사랑도 존중도 받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일까. 한 편으로 그런 극한으 감정들이 아무렇지 않은 과장된 코미디로 마무리되는 것은 은아라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려는 제작진의 배려다. 오히려 시청자로 하여금 드라마와 거리를 두고 보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부터 그랬었다. 사실 굉장히 우울한 이야기다.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시청자와 드라마의 거리를 떨어뜨림으로써 타인의 이야기에 충분히 자신을 이입할 수 있도록 한다. 남의 이야기다. 철저히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거리가 딱 드라마가 요구하는 거리다. 자기 일처럼 화내고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지만 정작 자기 일은 아니다.
추레한 몰골의 부부가 사실은 꽤나 실력있는 프로그래머였다는 설정은 상당한 반전으로 다가왔다. 프로그래머라고 하면 가지는 그런 전형적인 이미지와 전혀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부부가 모두 프로그래머였다. 서로 한 마디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않던 부부가 도현우의 일로 하나가 되어 신상털이를 하던 불륜패치를 추적하는데 협력한다. 남의 일인데 그래도 계기가 되어 한 걸음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어쩌면 원수와도 같은 사이였을 테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눈물도 공유할 수 있었다. 서로 날선 대화를 주고받던 두 노년의 여성들이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묘하게 가슴찡한 느낌을 주었다.
군상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군상들과 도현우를 잇는 인터넷이라는 매게 역시 제대로 묘사하고 있었다. 권작가와 안준영의 관계는 오히려 늦다. 권작가의 괜한 심술과 안준영의 서툰 접근이 안타까운 웃음을 자아낸다. 비로소 헤어진 전처와 관계를 정리했다. 미련을 털어내고 이혼한 사실마저 공개했다. 서로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행복을 찾아나서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머리는 그렇다 말한다. 마음은 그래야 한다고 시킨다. 하지만 몸이 아니라 항변한다. 아내를 안는 순간 비로소 떠오른다. 한 편으로 그동안 너무 멀리 있었다. 아내는 실체가 아닌 단지 관념이고 대상이었다. 자기가 용서해야 하는 아내는 자기와 살을 맞대고 눈을 마주하고 일상을 함께해야 하는 현실의 존재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지만 이제부터 그들은 시작이다. 과연 그들은 다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 무거우면서 한 편으로 가볍다. 상업드라마로서의 유쾌함과 무거운 현실의 주제의식을 무리없이 하나로 녹여낸다. 도현우가 아내 정수연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며 진심을 전하는 장면에서 연기가 조금 어설펐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진짜 자기의 진심과 다른 말을 내뱉는데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였을까.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도 도현우가 정수연을 밀어낸 것과 관계가 있기를. 아쉽지만 그래도 아쉽지 않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