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 어른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책임의 무게...

까칠부 2016. 11. 30. 02:57

확실히 작가는 대칭을 좋아한다. 마치 거울에 비친 상과 같은 것이다. 아내와 아이를 지키지 못한 가장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내와 아이에게 위해를 가한 범인을 찾아가 그에게 복수를 한다. 몇 번이나 칼로 찌르고도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 수술실까지 찾아가 의사를 인질로 잡고 그를 죽이려 한다. 그리고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아내와 딸의 목소리에 끝내 원한과 분노마저 접고 체포되기에 이른다. 과연 아버지란, 가장이란 무게는 특히 남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김사부(한석규 분) 역시 아버지였다.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는 윤서정(서현진 분)이 있었고, 마치 친아버지마냥 반항하는 강동주(유연석 분)가 있었으며, 마냥 그에게 의지하는 돌담병원의 수많은 구성원들이 있었다. 더구나 본원의 원장 도윤완(최진호 분)이 노골적으로 김사부와 돌담병원을 노리기 시작하면서 김사부에게는 자신은 물론 돌담병원까지 지켜야 하는 책임이 지워진다. 자기 혼자라면야 무슨 일을 당하든 어떤 처지로 내몰리든 전혀 상관할 것이 없었지만 그러나 병원은 아니었다. 자기만 바라보는 아직 어린 햇병아리들 역시 아니었다. 비록 도윤완에 비해 가진 것도 없도 힘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이들을 지켜야만 한다. 벌써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사부가 수술실까지 쳐들어와 인질극을 벌인 범인에게 동정심과 함께 동질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아마 드라마르 보면서도 대부분의 책임져야 할 무언가를 가진 남성이라면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자기가 그 남자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차라리 사람을 찌르고 죽일 용기가 없음을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김사부의 설득을 들으며 그래도 가장으로서 아내와 아이의 곁에서 그들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고 있었을 것이다. 원수에 대한 분노보다 오랫동은 딸을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멈춰세운다. 아버지를 구한 것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버지로서 지켜주어야 했던 그의 딸이었다.


과연 그동안 김사부가 겪어왔던 다른 젊은 의사들과는 달랐다. 당연하다. 그동안 다른 젊은 의사들에게 김사부는 실력만 좋은 아주 이상한 의사였다. 하지만 윤서정이나 강동주에게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토록 가혹하게 대해도 다시 김사부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칭찬과 인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방치하고 무시해도 아이들은 알아서 잘만 자란다. 오히려 멀리하기에 가까이 다가가려 하고, 무시하기에 더 관심을 받으려 한다. 다만 아직 김사부는 그들의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기특하고 흐뭇하기는 한데 그 이상의 더 절실한 애정이나 책임까지는 느끼지 못한다. 마치 어느날 누군가 자기 자식이라며 내민 아이를 맡게 된 젊은 아버지의 심정과 같을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랑스러운 것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사실 무심했다. 가혹하기까지 했다. 강동주와 도인범(양세종 분)의 사이가 그렇게 좋지 못한 것을 알았다면 어른으로서 먼저 나서서 두 사람 사이를 정리해주었어야 했다. 최소한 그 사실이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데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했어야만 했다. 그냥 윽박질렀다. 아무렇게나 야단치고 내쫓았다. 부모가 잘 기른 것이 아니다. 아이가 잘 자란 것이다. 다행이 바른 아이들인 탓에 아버지의 곧은 등만 보면서도 알아서 훌륭히 자라게 된다. 억울함이나 서운함보다 의사로서 자기가 상대에게서 배워하 하는 점들만을 본다. 그를 존경하고 따라야 하는 이유들만을 보게 된다. 아마 그 대상이 본원 외과장 송현철(장혁진 분)이나 원장 도윤완이었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하필 강동주의 눈앞에 김사부가 있었고 그는 김사부를 어느새 아버지로 여기기 시작한다. 스승으로 여기며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도윤완의 공세가 시작됐다. 갑작스런 사건이 그 빌미가 되었다. 우연히 윤서정의 병력에 대해 들은 것이 있었다. 수술실에서 김사부의 대처가 적절했는가의 여부와 윤서정의 병력을 알면서도 방치했는가의 부분을 집요하게 헤집으며 그를 무력화시키려 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구했지만 그것은 곧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과정이었다. 이곳에 자신이 있다. 바로 여기에 강동주 자신이 있다. 강동주가 신회장(주현 분)을 끌어들인 덕분에 어쩌면 당장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의사로서의 양심과 신념이 병원과 병원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과 충돌한다. 선택은 너무 명확하다.


반전 아닌 반전이었다. 너무 뻔한 소리를 너무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니 오히려 헛웃음만 나오고 만다. 누가 들어도 윤서정이 말하는 도윤완과의 관계는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를 배신하고 떠났다는 생부를 연상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그렇게 떠나고 오랫동안 젊었을 적 친구였던 어머니와 딸인 자신을 가까이서 돌봐 왔었고 어머니가 죽고 나서는 자기를 거둬기르기까지 하고 있었다. 아마 윤서정 자신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차마 밝힐 수 없는 진실 앞에 차라리 다른 진실을 믿어버리고 만다. 도윤완은 절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며 자신의 아버지는 따로 있다. 그런 말을 하고서도 도윤완과 윤서정을 심사하기 위해 보내온 담당자와의 대화에서도 살짝 단서가 엿보인다. 최소한 그저 오랜 친구의 딸이라는 심심한 관계는 아니다.


더이상 그저 한 사람의 의사로만 있을 수는 없다. 그저 자기 한 몸 건사하며 환자만 치료하면 되는 일개 의사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벌써부터 시작된 도윤완의 공격이 그러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아이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아닌 다른 존재를 등에 짊어진 남자의 무거운 발걸음이다. 그런 어른도 필요하다. 그저 응급실에서 환자만 열심히 치료하는 의사 말고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것들을 살피며 더 큰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 하지만 제목이 낭만닥터이니. 차라리 그런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를 따르는 세 아이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완전 반전이었다. 차라리 배신이었다. 분명 범죄쪽과 닿아 있는 사람이라 여겼었다. 그만큼 하는 말투나 태도가 밝은 곳에서 사는 사람의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편견이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을 때는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돈과 생명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군상들의 대화가 그린 듯 전형적이었다. 딱 보기에도 의도가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복잡하게 멀리 돌아가기에는 벌써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아쉽다. 이야기를 조금 덜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역시 방법이 거칠다. 거슬리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