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금비 - 어딘가 아픈... 어른들...
아이가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딘가 아프기 때문이다. 어릴 적 어딘가에 자기의 일부를 두고 왔기 때문이다. 그 빈 자리가 시도때도 없이 시리고 아프다. 자꾸만 발목을 잡힌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금비(허정은 분)가 아픈 이유다. 금비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어릴 적 지금 이 순간이 금비에게 허락된 유일한 시간이다.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사는 모휘철(오지호 분)이나 고강희(박진희 분) 역시 아주 오래전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춘 채 그곳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흘러 몸은 자랐지만 시간이 멈췄기에 마음은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채다. 그 빈 자리를 채우고픈 욕심에 자꾸만 많은 것들이 엇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필요했다. 고강희는 솔직하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다. 별 것 아닌 것들이다.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비어 있던 그 빈 자리를 아무렇지 않은 그것들이 조금이나마 채워주고 대신해준다. 어쩌면 처음으로 기댈 수 있는 온기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누군가로부터가 아니다. 정작 모휘철은 고강희에게 그다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한다. 고강희 역시 모휘철에게 믿고 기대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다.
자신이었다. 누군가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품어 안아줄 수 있는 든든하고 따뜻한 자기 자신이었다. 하찮다고만 여겼었다.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해 줄 수 있었다. 어린 금비를 위해. 그리고 서툴고 어리숙한 모휘철과 고강희 서로를 위해서. 자기가 대단히 가치있는 존재가 된 것만 같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자격이 없다 여기기 때문이다. 감당할 자신도 책임질 자신도 없다. 그래서 쉽게 포기해 버린다.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포기해 버린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금비의 생모 유주영(오윤아 분)과 금비와의 관계를 풀어가는 열쇠도 어쩌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어려서 일찌감치 부모와 의절하고 생사조차 모른 채 혼자서 살아왔었다. 엄마는 딸이 아닌 손녀에게 모든 재산을 남기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의 재산을 노리고 엄마의 손녀인 딸을 찾아나서고 있었다. 그녀는 과연 어떻게 혼자가 되었던 것일까.
모휘철과 유주영과의 과거가 조금씩 조각들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모휘철은 유주영을 무척 사랑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동거까지 했었다. 그리고 모휘철에게 원한을 품은 차치수(이지훈 분)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고 있었다. 뜻밖에 반전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모휘철이 금비의 친아빠이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보다 더 진한 인연이 그들의 사이를 채워준다. 떠나려던 고강희마저 금비의 곁에 머물려 한다. 그들을 둘러싸고 금비의 친엄마 유주영과 모휘철의 옛친구 차치수의 욕망과 원한이 서로 얽힌다.
얼치기 사기꾼 공길호(서현철 분)와 허재경(이인혜 분)의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어차피 중심은 모휘철과 고강희와 금비다. 그들과 얽히려는 오윤아와 차치수다. 단지 아무일없이 간절한 그들 사이에 풍파를 일으킨다. 마치 중력이 지구의 물을 끌어당기 듯 가만히 있으려는 모휘철과 고강희와 금비의 일상을 흔들고 만다. 모휘철과 가장 오래 인연을 맺어 온 이들이다. 당장은 자신들을 떠나려는 모휘철을 아쉬워한다. 모휘철을 얽매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 역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이들이다.
모두는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고강희만이 아니다. 고강희의 오빠 고준필(강성진 분) 역시 자기의 사정에 쫓기며 동생 고강희에게 가혹해지고 있었다. 비로소 여유가 되었을 때 고강희를 위한 위로의 말을 들려준다. 그리고 고강희로부터 듣고 싶었던 위로의 말을 듣는다. 멀쩡한 척 꾸미고 살아가는 것 뿐이다. 아마 대부분은 그래서 몸은 어른이지만 어딘가 두고온 일부는 아이인 채로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때로 유치하고 때로 한심하며 때로 어이없는 그런 군상들의 이야기다. 다행히 그들은 위로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았다.
금비의 말이며 행동들은 되바라지고 귀엽지만 딱 거기까지다. 유쾌하게 웃으며 보기에는 드라마가 너무 어둡다. 어린아이에게 시한부란 도대체 웬말인가 말이다. 피로를 풀며 보기에는 너무 무겁다. 그래서 재미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