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의미...
사랑해서 미워하고 사랑해서 원망하며 사랑해서 헤어지기까지 한다. 차라리 아예 아무 감정도 없었다면 아내가 부정을 저지른 듯 굳이 그것을 의식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 아내를 안으려 하기 전까지 그들 사이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을 용서한 것 같았고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믿었었다. 그러니 굳이 안으려고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자신과 서로를 속이며 버티며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진심이었다. 여전히 서로에 대해 감동하고 있었다. 서로를 간절히 바라고 또 느끼고 있었다. 그런 만큼 더욱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불신과 분노의 감정마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를 안고 싶고 느끼고 싶은 그 욕망 만큼이나 그때마다 떠올리게 될 자신의 기억이나 감정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나마 감정들마저 모두 마모되어 버린 뒤라면 원래 그런 것이거니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아내가 남들과 같고 여느 여자와 같다면 원래 그런 것이거니 대범한 척 이해하고 넘어갔을지 모른다. 어쩌면 고작해야 작은 가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아직 너무나 선명한 서로에 대한 감정이 그마저 견디지 못하게 만든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게 된 것도 아니다. 단지 사랑하는데 함께있는 것이 너무 괴로운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한다는 것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도록 괴로워진 것 뿐이다. 그래서 떨어져 있는다. 그래서 헤어진다. 사랑하기 위해서. 여전히 사랑하기 위해서. 이혼하려는 마당인데도 - 아예 남남으로 갈라서려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전보다 더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배려해준다. 더이상 부부로서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에 혼자서 넋놓고 울음을 토해내고 만다. 최소한 울 수 있을 만큼 그들은 아직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상황을 만든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외도라는 원인을 제공한 아내 정수연(송지효 분)이, 그리고 그렇게까지 되도록 아내를 방치했던 도현우(이선균 분)까 차례로 혼자서 눈물을 쏟아낸다. 아직 사랑하기 때문에 그동안의 자신의 잘못들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온다.
이혼을 두려워한 결과를 친구 최윤기(김희원 분)의 아내 은아라(예지원 분)가 보여준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했었다. 자학하듯 모든 것을 견디려 했었다. 하지만 남은 것은 너덜너덜해진 자신 뿐이었다. 사랑했던 감정도 좋았던 기억들까지 모두 말라버린 가운데 의미없는 고집으로 자신마저 상처입히며 발버둥치는 비루한 모습이었다. 그런 자신을 더욱 혐오하고 더욱 경멸하면서 그런 자신마저 견뎌야만 했었다. 아내의 부정을 처음 알았을 때 도현우가 보였던 모습 역시 다르지 않았다. 용서해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런 강요 속에 아내에 대한 사랑은 없었다. 아내를 사랑하는 자신은 없었다.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역시 아내를 사랑하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었다.
은아라가 조금만 자신의 남편에 대해 솔직했다면 지금과 같은 파국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원인은 남편 최윤기가 제공했다. 상습적으로 많은 여자들과 부정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처음 남편의 부정을 알았을 때 애써 노른 척 외면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것은 은아라 자신이었다. 남편 최윤기는 그런데도 아내는 아직 모를 것이라며 자신한 채 새로운 여자와 외도를 시작하고 있었다. 차라리 처음 사실을 알았을 때 최남편 최윤기에게 따져물었다면 어땠을까.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단단히 못박았다면 최윤기는 지금처럼 여러 여자들과 계속해서 바람을 피웠을까.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헤어지는 마당에도 그저 자신의 명의로 넘긴 건물만을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이미 부부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비로소 안주영(이상엽 분)과 권보영(보아 분)의 사이도 진전을 보인다. 사랑의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한다. 도현우, 정수연 부부를 위한 조언이기도 하다. 더 큰 사랑이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보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준다. 자존감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도현우와 정수연이 이혼하는 과정에서도 당장 서로의 가족들에게 몇 번이나 죄인이 되어 머리를 조아려야 했었다. 마치 자기가 결함있는 인간인 것 같다. 배우자의 잘못조차 자기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자기는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이 아닌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아닌가.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그 원초적인 바람이 그런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한 번에 날려보낸다. 그냥 함께 있으면 좋다.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는 계기가 권보영의 등을 떠밀어준다.
이혼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고작 살다가 헤어지는데 뭐가 이리 어렵고 복잡한 것이 많은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분노다. 하지만 헤어짐이란 그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그들의 행위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다. 한 편으로 의식이었다. 아내의 부정으로 인한 원망과 미움과 불신의 감정을 헤어짐이라는 과정이 대신해 버린다. 남남이 되었다. 더이상 부부가 아니게 되었다. 그로 인해 서로가 고통스러웠다. 대가를 치렀다. 남은 것은 더욱 선명해진 서로에 대한 간절하고 진실한 감정 뿐이었다. 너무 빠른 선택이 그나마 여지를 남겨주었다. 모든 감정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들은 한 가지 서로에 대한 감정만을 남겨 두었다. 아직 그들을 이어주는 것이 남아 있다.
굳이 억지로 용서할 필요 없다. 이해하려 할 필요 없다. 용서하지 못한 채로 내버려둔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받아들인다. 그를 전제로 서로를 위한 최선을 선택한다. 여전히 그들은 사랑한다. 사랑하기에 서로를 위한 최선으로써 헤어짐을 선택했을 뿐이다. 헤어짐이 반드시 배드엔딩인 것은 아니다. 아직 사랑하는 동안 그들 사이에는 희망이 남아 있다. 위로를 받는다. 힘겨운 외로운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