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 어른 김사부의 성장과 젊은 강동주의 선택

까칠부 2016. 12. 14. 03:58

상당히 짓궂다. 하지만 더 멀리 더 크고 높게 보자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양심이란 것도 한 편으로 이기일 수 있다. 양심을 거스르니 당장 마음이 불편하고 거리낌이 생긴다. 괜한 고민에 갈등도 하게 된다. 차라리 마음가는대로 양심을 쫓으면 편해질 수 있다. 더 큰 이익을 앞에 두고도 양심을 쫓은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도취될 수도 있다. 그만큼 나는 대단히 양심적인 훌륭한 의사다. 그것으로 좋은가.


그래서 과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망령처럼 뒤쫓아와 그를 붙잡게 되었던 것이었다. 과거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수술이 미뤄지고 끝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한자의 가족이 나타나 그를 비난하며 마지막 시련에 들게 했던 것이었다. 본원 외과장 송현철(장혁진 분)의 말처럼 이번 한 번만 눈 질끈 감고 도윤완(최진호 분) 원장이 시키는대로 병사로 사망진단서를 써주면 지금 눈앞에 나타난 후회스런 과거까지 모두 한꺼번에 말끔히 치워낼 수 있을지 모른다. 


양심에 솔직해진다는 것은 양심의 소리에 정직하게 반응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애써 고개돌리고 외면해왔던 그저 아프고 불편하기만 한 이야기들마저 더이상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미 잊었다 여겼던 먼 과거의 일들까지 기억과 함께 떠올라 양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때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렀으며 그럼에도 어떤 행동들을 하고 있었는지. 그런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보이고 여겨지는지. 차라리 낫다. 사과할 대상이라도 있다. 용서를 구할 대상이라도 있다. 그마저 없다면 자기는 누구에게 사과하고 누구로부터 용서받아야 하는가. 어디에도 자기가 자기를 용서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래서 쉽게 양심을 거스르고 그런 자신을 반성조차 않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잘못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동안의 자신이 이토록 비열하고 파렴치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차라리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 마지막까지 버티며 고집을 부린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일부러 그것을 증명하려 더 극단적으로 자신의 양심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오히려 더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그 반대편을 향해 내달리는 겨우마저 적지 않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여전히 부용주(한석규 분)에 집착하며 그와 그의 주변을 파괴하기 위해 애쓰는 본원 원장 도윤완처럼. 


어쩌면 도윤완에게도 강동주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까지의 잘못들을 바로잡을 기회가 한 번 쯤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여기서 인정하게 될 경우 댐이 무너지듯 밀려들게 될 후회와 죄책감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 잘못도 없었던 것처럼. 오히려 자신이 옳았다. 자신은 그렇게 했어야만 했다. 젊은 의사들마저 그래서 그렇게 자신처럼 물들이려 한다. 자신처럼 되는 젊은 의사들을 보면서 확신을 얻으려는 것이다. 자기가 아닌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송현철이 자신과 달리 병원장의 지시를 거부하는 강동주를 보며 모멸감과 분노를 느끼는 이유다. 저래서는 안된다. 강동주따위가 저렇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배신이며 반역이다.


사실 이미 전부터 결론은 내려져 있었다. 처음 도윤완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도 강동주는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도윤완으로부터 받은 사망진단서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을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랐다. 자신이 지금의 선택을 위해 포기하는 것들에 대해 듣고 위로든 칭찬이든 해주기를 바랐다. 그냥 이유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사랑하는 선배 윤서정과 김사부가 들려주고 있었다. 그보다는 채찍질이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야단이었다.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 그들로부터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 너무나 단순하고 원초적인 본능이며 욕구다. 그들을 배신하기 싫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자신의 잘못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과연 자신은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어머니가 올라온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책임마저 나눠진다. 한 편으로 미안하면서 한 편으로 마음놓인다. 그래도 어머니는 자신의 편이다.


그래서 역시 김사부는 강동주에게 아버지였다. 윤서정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로서 김사부의 성장을 위한 계기가 되고 있었다. 그동안 한 발 물러선 채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며, 무엇도 대신 짊어지려 하지 않으며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 너희들이 알아서 나에게 보이라. 하지만 이대로 도윤완에게 휘둘리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처음으로 갈등중인 강동주와 마주앉아 소줏잔을 기울이고 강동주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자기 속에 있는 모든 말들을 꺼내놓으며 강동주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다.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그리는지. 무엇을 목표하며 이유로 삼는지. 그리고 한 마디 더해준다. 방관자로서가 아닌 당사자로서의 질책이며 조언이다. 강동주가 풀어야 할 숙제다. 처음으로 강동주는 김사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과제를 받는다.


강동주를 외면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버려두고 도망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싸우기 위해서였다. 강동주와 윤서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적극적으로 나선다. 무려 십수년만에 자기 발로 거대병원까지 찾아가서 도윤완을 때리고 그에게 경고를 남긴다. 신회장(주현 분)을 찾아가 임원날짜가 정해진 사실을 알린다. 신회장이 바라던 것이다. 그리고 김사부가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패였다. 자기가 이들을 지켜야 한다. 수술만 잘하는 의사에서 젊은 의사들까지 책임지는 어른이자 리더가 된다. 이제 차라리 아집에 사로잡혀 있는 도윤완이 더 불쌍해 보일 정도다. 훨씬 커져 있었다. 거대병원에 다시 들어설 때부터. 인간의, 그릇의 크기였다.


의사로서 그래서는 안된다. 의사로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 드라마에서 말한다. 아마 작가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의사들을 취재하면서, 의료현장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 동의할 수 없게 된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평가였을 것이다. 그리고 강동주가 일찍 겪어야 했던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였다. 도윤완의 손을 잡았을 때 자신이 치러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후회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어쩔 수 없이 앞서 오고 말았다. 선택은 명확하다. 단지 인간은 그렇게 강하지도 영리하지도 못하다. 어렵게 멀리 돌아가더라도 방향만 바르다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을 수 있다.


이유를 찾는다. 계기를 동기를 찾는다. 그래야만 하는 필연과 당위를 찾아낸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은 옳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진짜 모습은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를 수 있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어른이 있어 아이들은 마음놓고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행운은 아니다. 성장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