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사랑이란 두려움과 불안, 초조, 그리고 절망 앞에서
아마 그런 경험이 한 번 쯤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신이 두려워진다. 사랑에 빠져 전혀 다른 자신이 되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낯설고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심지어 아무리 사랑해도 지금껏 전혀 남으로 살아왔던 사람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동요는 비집고 나와 현실에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게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감정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불길한 내일을 미리 찾아가 본다. 자기 없이도 행복한 그 사람의 내일을 굳이 일부러 찾아가 눈으로 확인한다. 도깨비니까 그것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망상으로 끝내고 만다. 사랑이 시작하는 순간 끝을 걱정하고, 한창 사랑에 빠져서는 사랑한 이후를 고민한다. 괜히 미리 앞서가는 듯한 행동에 혹은 비웃고 혹은 야단도 치지만 정작 당사자는 무척 진지하다. 영원을 꿈꾸기에 영원할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다. 그런 자신을 경멸하며 체념한다. 결국 그렇게밖에 안된다.
도깨비가 아닌 그저 사랑에 빠진 평범한 인간으로 간주하고 본다. 도깨비인 이유는 그냥 남들과 하는 짓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달이 감수성이 예민하다. 예술을 사랑하는 만큼 남들보다 모든 것을 예민하고 과장되게 느끼고 받아들인다. 혼자만의 생각이 앞서서 정작 상대와는 상관없이 혼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판단하고 결론까지 내리고 만다.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남겨진 사람은 얼마나 황당할까. 그런 사람과 사랑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면 그 마음은 또 어떠할까.
괜히 도깨비신부가 아니 것이다. 그만큼이나 맹랑하다. 그만큼이나 비관적이고 자학적이다. 지은탁(김고은 분)이 도깨비 김신(공유 분) 앞에서 뻔뻔할 정도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어차피 이루어질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고작 자기를 사랑할 이유가 없다. 자기가 사랑한다고 도깨비가 자기의 사랑을 받아줄리 없다. 설사 서로 사랑해서 이루어져도 행복해질 수 있을 리 없다. 떠나갈 생각부터 한다. 언젠가 관계를 정리하고 혼자서 살아갈 생각부터 한다. 딱 어울린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은 설레고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처음으로 서로의 진심과 마주한다. 자신의 진심과 마주한다. 어쩌면 사랑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그것을 직접 느끼고 깨닫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수줍어한다. 서로 얼굴을 보는 것마저 민망해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사랑해서 떨리고 사랑해서 두렵고 사랑해서 수줍으며 사랑해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그런 순간에마저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눈을 돌리기보다 다른 이유를 찾아 나서는 것은 결국 그들이 도깨비고 도깨비신부이기 때문이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다. 저승사자 역시 전혀 예정에 없는 사랑에 벌써부터 고민하며 괴로워한다. 이름조차 없다. 물어도 대답해 줄 이름조차 하나 없다. 겨우 핸드폰이 생겨 연락은 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과연 이대로 마음끌리는대로 누군가를 사랑해도 좋은 것인가. 수많은 생을 넘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기적인가. 기적인지도 모르고 오늘의 운명에 혼자서 발버둥친다.
어디선가 한 번을 보았을 법한 모습이다. 살면서 한 번은 겪어봤음직한 바보짓들이다. 그래도 끝내 사랑을 지켜냈거나, 혹은 지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경우일까. 솔직하지도 못하고 당당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손에서 놓지도 못한다. 애매한 거리에서 끊임없이 서성이며 끝없이 방황한다. 사랑의 시작이 사랑의 끝이다. 사랑하는 순간 사랑은 끝나고 만다. 그렇다고 벌써 포기부터 한다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마저도 모두를 위한 것이라 자위한다.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하고 화가 난다.
싸움은 붙이고 흥정은 말리는 것이라 했다. 괜히 거리를 두고 있는 남자들 보면 등떠밀어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서로 그토록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서도 쿵짝이 맞는 것이 절로 응원해주고 싶게 만든다. 진짜 성별을 넘어 가장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툭탁거리면서도 항상 함께 있다. 서로 인상쓰면서도 함께 있는 모습이 어울린다. 정승차사(이동욱 분)와 도깨비의 동거가 괜힌 지은탁의 방해를 받는다.
미래를 알 수 있다. 불행한 먼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그래서 끝날 것을 안다. 결국에 끝날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랑에 빠져 버렸다. 자기가 없느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까지 보게 된다. 그녀는 여전히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랑해야 할까? 사랑을 시작해야 할까? 벌써부터 사랑을 끝낼 생각부터 한다. 그 사람을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러나 과연 그것이 최선일까.
상당히 위험한 설정이기는 하다. 아직 미성년자다. 아직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다. 얼핏 액면가로도 도깨비는 중년의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운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보다는 동화에 어울리는 것은 아직 어린 소녀일 것이다. 도깨비는 동화속에나 나오는 존재다. 어른이 되면 도깨비는 현실로 바뀐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일지도 모른다. 소녀가 여인이 되는 순간이란. 마음껏 고민하며 혼란스러워한다. 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