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내일, 하루만... 너무나 사소하고 간절한 바람
그것은 차라리 신이다. 그래서 운명이라 부른다. 살리고 죽인다. 살게 하고 죽게 한다. 살고 싶어지게 하고 죽고 싶어지게 한다. 자기의 의지란 없이 있는대로 휘둘리고 만다. 그렇게 자신마저 잊은 채 잊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만다. 그래서 때로 사랑은 저주와도 같다.
오늘의 행복이 두렵다. 내일의 행복이 두렵다. 그래서 다시 오늘 하루를 살 수 있다. 내일을 기다리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끝날 것을 알기에 이대로 영원히 멈췄으면.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도깨비(공유 분)에게 내려진 형벌이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찾았지만 그로 인해 다가올 마지막까지 알아버렸다. 영원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이 온전히 오늘의 행복조차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차라리 일찍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는 것이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검이 뽑히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아직 온전히 죽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온전히 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도피였다. 체념이었다. 다만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이 소녀와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다. 함께 행복을 느끼고 싶다. 그래서 아무 미련도 후회도 남아있지 않기에 이제는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 마음껏 사랑하고 행복도 누렸으니 이제 죽더라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다. 더 사랑해야 한다. 더 행복해져야 한다. 그때서야 알게 될 것이다. 도깨비에게 주어진 것이 상인지, 아니면 벌이었는지.
정말 모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일 것이다. 네 탓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너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지금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거짓이라도 누군가 자신을 위로해주기를 바란다. 정확히 자신에 대해 알아주기를 바란다. 자신의 억울함을. 자신의 고통을. 자신의 절망과 체념을. 단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다. 들어주고 긍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좋다. 작은 고개짓조차 때로 큰 구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필 그것이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이라면. 도깨비가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저주가 맞을지 모르겠다. 900년동안 들어온 그 말을 가장 듣고 싶은 사람에게 들을 수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 살짝 비틀어 반전을 주는 것은 작가의 노련함일 것이다.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는 것을 맹랑한 웃음으로 바꿔준다. 한 편으로 지은탁(김고은 분)의 캐릭터와도 어울린다. 절망에 익숙한 사람은 작은 절망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절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자신부터 여유가 너무 없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상황을 피하고자 분위기가 지나치게 무거워지거나 심각해지거나 하면 전혀 엉뚱한 이야기로 흐름을 깨뜨리고는 한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잠시나마 도망치고 잊었다 스스로를 속인다.
아마 지은탁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껏 한자의 뜻을 모두 알아내어 적어놓고도 전혀 그 뜻을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다.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이 해석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도깨비를 위해서.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에.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일 터이기에. 누가 보더라도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이 없는 이후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눈치가 없다기보다 그냥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어리다기에는 그동안 겪어온 시간들이 만만치 않다.
더 사랑하라고. 지금보다 더 사랑하라고. 지금보다 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라고. 그러고 나면 그 끝은 무엇일까. 하필 유신우(김성겸 분)와 마주한 자리에서 자신에게 칼을 꽂은 옛부하의 모습을 떠올리고 만다. 소녀가 자라면 동화는 현실이 된다. 도깨비는 동화속에나 존재하는 허구다. 29살 때 지은탁이 만나게 될 그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드라마라면 당연히 있을 위기와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이제 겨우 시청자들에 드라마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차라리 같은 남자인데도 귀여울 정도다. 이렇게까지 세상물정을 모를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어수룩하고 어설플 수 있을까. 그래서 진심이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 진심을 담을 이름도 얼굴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름이 없으니 불리지 못하고, 얼굴이 없으니 기억되지 못한다. 단지 만났다는 사실만,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기억한다. 그래도 다행히 만나면 떠올리기는 한다. 너무 큰 죄를 지으면 저승차사가 된다고 한다. 과연 저승차사(이동욱 분)가 지금 도깨비와 함께 살고 서니(유인나 분)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떤 결말을 위한 것인가. 벌써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작하고 있는 부분이다. 너무 뻔하게 예상되는 그 순간을 과연 저승차사는, 그리고 도깨비와 서니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할머니(이엘 분)라는 말이 단서가 되어 줄 듯하다. 전통의 민담을 소재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도깨비가 있고 저승차사가 있다. 그러면 할머니는 누구일까. 아이들을 찾아간다. 아이들이 알아본다. 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를 다시 거두어간다. 어쩌면 신일까. 단지 자기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은 모성이었을까. 도깨비와 저승차사의 주위를 맴돌며 그들을 위해 기회를 준다. 그로 인해 도깨비는 도깨비신부 지은탁을 만났고, 저승차사도 서니와 만날 수 있었다. 이엘의 화려한 이미지가 흥미로운 반전을 만든다. 한 편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그래서 또 한 편으로 재미있다. 할머니가 준비한 기회와 미래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살고 싶어한다. 죽고 싶어한다. 그래서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전혀 죽고 싶지 않다. 말했지만 사랑이란 그렇게 마냥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서 차라리 무섭고 차라리 불안하고 차라리 죄스럽다. 사랑하지만 그저 사랑만 할 수는 없다. 어느 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연인들처럼.
때로 무심하게 엉뚱한 행동들이 절로 웃음짓게 한다. 결국 아무리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도 남자는 남자일 뿐이라. 남자는 아이일 뿐이라.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일 뿐이라. 순수한 욕망과 순수한 사랑과 어쩌면 순수한 이기에 대해서. 무엇보다 그냥 사랑이야기다. 그래서 사랑을 한다. 그래도 사랑을 한다. 항상.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