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 - 메르스 비상! 위기의 돌담병원!!!
상당히 영리하다. 확실히 이쯤에서 병원 전체가 움직일 정도의 위기가 한 번 쯤 있어주어야 했다.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그 뒤에는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는 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주인공들의 성장만을 보여주며 느슨하게 풀어진 것도 있었다. 한 번 쯤 분위기를 다잡으며 김사부(한석규 분)를 중심으로 병원의 구조를 재편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강동주(유연석 분)와 윤서정(서현진 분)의 지지부진한 관계에 변화를 주어야 했다. 애써 자신의 진심을 외면하는 윤서정에게 동기와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메르스여야 했다. 우선 첫째 병원 전체가 움직일 정도면 그만큼 치명적인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둘째 그렇다고 본말이 바뀔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피해야만 했다. 위기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하면 자칫 그리로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며 드라마 자체가 먹혀버릴 수 있다. 딱 정해진 분량 안에서 무리없이 말끔하게 끝낼 수 있을 정도가 적당하다. 그러자면 셋째 굳이 길고 복잡한 설명 없이도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널리 알려진 무언가여야 한다. 당연히 넷째 현실의 이슈와 연계되어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시청률을 위해서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그만큼 치명적이면서, 한 편으로 10퍼센트 정도의 통제 가능한 치사율을 가지면서, 현실의 이슈와도 이어진다. 과연 병원에서 다룰 수 있는 소재로 메르스보다 나은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사실 조금 뜬금없었다. 응급실을 찾은 환자 가족이 기침을 하는 모습을 보며 설마 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여기서? 하지만 메르스 의심환자를 발견하고 응급실을 폐쇄하고 의심환자들을 격리하는 장면은 별 것 없는데도 긴박감이 느껴졌다. 하긴 그래서 응급실 아닌가. 응급실로 어떤 환자가 실려올 지 누가 알겠는가. 어떤 환자는 배가 아프다고 약을 먹고는 애인과 싸웠다며 정신을 잃은 척 연기까지 하고 있었다. 부모가 일나간 사이 자기들끼리 놀다가 다쳐서 놀라 달려온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연출조차도 상당히 정교하게 이루어진다. 원래 그런 곳이 응급실이다. 그리고 그런 응급상황에서도 병원이, 의사와 간호사들이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질병이라는 비상상황과 싸우는 전사들이다.
감자기 병원에 위험한 전염병이 들이닥치며 의사들은 인간으로 돌아간다. 병이 두려워 도망치기도 하고, 병에 노출된 누군가를 인간적으로 걱정하기도 한다. 최소한 환자들과 같이 응급실에 격리된 강동주를 걱정하는 동안 윤서정은 의사라기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인간 - 그보다는 한 사람의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주치의로서 자신의 환자마저 내팽개친 채 오로지 강동주만을 걱정하며 그의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의사도 병에 걸린다. 하필 당직의가 약속으로 급히 나가고 강동주가 사흘째 당직을 서는 날 사건은 일어나고 있었다. 과로로 지친 상태에서 위험한 전염병과 만나고 심지어 맹장염으로 수술이 필요한 환자마저 눈앞에 나타난다. 응급실 밖에서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마저 느낀다.
강동주가 쓰러진 것을 보고 김사부가 응급실로 들어가려 했을 때 윤서정이 나선 것은 김사부를 위한 것이었다. 김사부가 질병관리본부의 공무원을 윽박지른 그대로 지금 병원에서 의사들을 지휘해야 할 컨트롤타워는 다름아닌 김사부 자신이었다. 김사부가 멋대로 응급실로 들어가 버리면 응급실 밖에서 의사들을 지휘할 사람이 없어진다. 역시 김사부에게 내려진 시련이며 그를 위한 기회였다. 그저 실력좋은 한 사람의 의사에서 병원의 모두를 효율적으로 움직여 긴급상황에 대처하는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앞장설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위험을 무릅쓸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강동주도 윤서정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신할 수 있지만 지금 김사부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밖에서 그저 지켜봐야 하는 무력감까지 모두 김사부가 리더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지금의 위기가 어떻게 마무리될까. 그리고 위기는 무엇을 남기게 될까. 장담은 사실 이르다. 어떻게든 결국 작가가 의도한대로 이야기는 쓰여질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도 죽지 않고, 누구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드라마의 주제가 아니다. 그냥 여러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다. 단지 이를 계기로 성장하며 바뀌어가는 주요인물들의 모습을 남긴다. 이를 통해 고조된 긴장감이 앞으로 있을 더 큰 싸움을 위해 관성처럼 이어지기 쉽다. 하나씩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한다. 그래서 계기다. 어쩌면 지금까지와 다른 느낌의 이야기가 이어지게 될지 모르겠다. 과연 그런 가운데 도인범(양세종 분)은 무엇을 보고 들으며 겪게 될지. 느끼고 깨닫게 될지.
'컨트롤타워'라는 단어가 유독 귀에 걸린다. 정확히는 메르스보다는 그 전에 있었던 '세월호'를 겨냥하는 듯하다. 하기는 두 사건 모두 본질은 같다. 책임져야 할 이들이 책임을 방기했다. 메르스때도 역시 정부는 하는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국민의 눈과 귀만을 막고 가리려 했었다. 보건소에서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는 관료주의에 찌들어 태평하기만 하다. 의사가 가장 먼저 도망친다. 응급실에는 아이들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찾아 병원까지 달려온다.
일단 재미있을 것 같은 다 우겨넣고 본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볼만한 소재는 일단 다 쓰고 본다. 조금 흩어지는 느낌도 있었지만 어찌되었거나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를 더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조금 어설프고 어색하다는 느낌조차 적절히 주어지는 상황들에 다음을 궁금해하며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일을 기다린다. 어쩌면 뻔할 수 있지만 그런 뻔한 결말조차 궁금해하며 기다리게 된다. 재미있다. 대중드라마에게 있어 이보다 더 큰 찬사는 없을 것이다. 드라마를 보게 만든다. 그 뿐이다. 봐야만 한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