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 - 성장의 끝, 싸움을 앞둔 의사들의 전야
어쩌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와 닮았는지 모르겠다. 폭력에 대한 공포와 폭력으로 인해 억눌린 자존과 자아에 대한 보상으로 과잉된 자신을 만들어낸다. 괜히 강한 척, 용감한 척, 냉정한 척, 잔인한 척, 똑똑한 척, 난폭한 척, 사실은 여리고 약하고 부실한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서다. 혹시라도 누가 눈치챌까 잠시도 쉬지 않고 심지어 그렇게 만든 자신을 실제의 자신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래야만 한다.
김사부(한석규 분)에게 빌미를 주는 행동을 했다고 바로 주먹을 휘두르는 거대병원장 도윤완(최진호 분)의 모습으로 보아 평소 물리적 폭력이나 학대가 아주 없었다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자식의 자존감을 짓밟는다. 단지 아버지인 자신의 부속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보다 그저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만을 한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한 번도 제대로 인정받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런 절박함이 의사로서 환자를 두고 거짓말마저 서슴지 않게 한다.
그동안 도인범(양세종 분)에게서 느꼈던 자신감이나 책임감 같은 것은 모두 착각이었었다. 하긴 그러라고 가면을 쓰는 것이다. 그러라고 애써 갑옷을 두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감추고 사람들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오해하고 착각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아무리 입으로 거짓말을 해도 손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못하는 것을 잘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을 능숙하게 잘하게 만들 수는 없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노력이라는 단어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아니 아예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못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처음 해보는 것도 능숙하게 잘하기 위해서 배우고 연습하고 노력해서 익힌다. 한심한 원래의 몰골이 드러난다. 아무것도 못하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단지 병원장 도윤완의 아들 도인완이 있을 뿐이었다. 무심코 김사부가 야단치며 해준 한 마디를 떠올린다.
확실히 하나의 사건을 함께 겪고 모두가 자신이 넘치고 있었다. 이전처럼 풋내 풀풀 풍기던 어설픈 강동주(유연석 분)의 모습은 더이상 없다. 어려운 수술이지만 수술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김사부의 요구에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그러겠다 말하고 김사부는 그 장담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겠다면 하는 것이다. 하겠다 약속했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다. 못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만에 하나 실패의 가능성마저 상수로서 받아들이는 무엇보다 강한 신뢰다. 윤서정(서현진 분)과 강동주가 최선을 다해서 돕는다면 어려운 수술이지만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다. 이전까지 느끼던 난폭한 강박보다 이제는 넘치는 여유마저 느껴진다. 긴박하지만 그러나 위축되어 있지는 않다.
결국 계기였다. 돌담병원이 컨트롤타워인 김사부를 중심으로 이미 한 번 하나가 되었었다. 다시 하나가 되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위험한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도윤완이 상당한 위치에 있는 듯한 여성(김혜은 분)을 불러 김사부가 집도하게 될 신회장(주현 분)의 수술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 한다. 그리고 급박한 와중에 강동주와 윤서정은 사랑을 한다. 애써 밀어내고 애써 아닌 척 물러서다가 결국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포기하고 만다.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던 때문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너무나 적나라하게 알아버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고집이었다. 메르스가 계기였다. 역시 기대대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메르스는 단지 계기가 되어주며 한바탕 폭풍으로 스쳐지나고 만다.
아무도 모르게 떠났던 연화(서은수 분)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노숙자가 아닌 의사로서다. 레지던트 과정 도중 도망쳤다가 다시 의사가 되기 위해 일반외과의로서 돌담병원 의료팀에 합류한다. 노숙자로 병원 잡일을 돕던 시절에도 연화의 눈은 한결같이 강동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늦었다. 솔직히 아쉽다. 아직 윤서정이 마음을 열기 전, 더구나 메르스 사태에서 자기 몫을 가지고 끼어들었다면 강동주까지 세 사람 사이에 삼각관계가 꽤나 흥미로울 뻔했었다. 폐쇄된 응급실로 자청해 들어간 것은 윤서정이 아니라 연화였다. 윤서정이 솔직해지지 못하는 사이 연화가 먼저 강동주에게 다가간다. 김이 빠지고 말았다. 윤서정이 후회하며 안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때도 서현진이라면 아주 예쁜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만 같다.
과연 신회장이 비굴할 정도로 김사부에게 매달리며 그에게 수술을 받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조라는 돈이 달려있다고 했다. 죽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라 했다. 김사부가 신회장의 CT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아마 남은 얼마 안되는 분량 안에 모든 갈등과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무엇이 바로 그곳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도윤완을 무너뜨리고 다시 김사부가 바라는대로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 놓는다. 무엇일까? 대충 짐작은 가지만 역시나 너무 앞서가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전쟁이다. 이 한 번의 수술로 모든 것은 결정된다. 김사부를 비롯한 의사들의 모습이 비장하다기보다 진지하다. 냉정하다.
메르스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빨리 너무 간단하게 끝나서 약간 서운하기도 했다. 윤서정과 강동주의 관계 역시 너무 진전이 빨랐다. 기다리지 않는다. 굳이 남기려 하지 않는다. 도인범만 남았다. 성장은 모두 끝났다. 모두 한사람의 의사가 되었다. 오로지 자기 실력으로 자기의 환자를 책임져야만 한다. 그럴 수 있다는 여유마저 느껴진다. 역시 빠르지만 이쯤에서 필요하다. 숨지 않는다. 기대지 않는다. 도인범의 선택만 남았다.